치매를 예방하려면? "뇌를 속이세요"
글 : 이필재 / 인물 스토리텔러 2024-12-27
“치매 중 일부는 확실하게 고칠 날이 옵니다. 치매의 60~70%는 알츠하이머병이 원인이죠. 이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원인 단백질을 없애는 약이 개발됐어요. 알츠하이머 병성 치매는 30년 안에 정복될 거로 봅니다.”
30년 가까이 치매를 연구한 김희진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다른 원인에 의한 2차성 치매도 현재는 약이 없지만 언젠가 치료가 가능할 거로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한치매학회가 주는 우수논문상을 네 차례 받았고, 국제 학술지, 전문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치매, 한 마디로 어떤 병인가요?
“다른 사람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끝이 없는 병입니다. 병리가 밝혀진 건 병, 증상들의 합은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치매는 증후군에 속하죠. 기억력, 인지 능력, 계산 능력, 길 찾기 능력 등이 떨어져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가 곧 치매입니다. 원인 병은 알츠하이머를 비롯해 80여 가지나 되죠. 파킨슨 치매도 있어요.”
김 교수는 “치매는 노화와 연결돼 있는데 노화 자체는 마지막까지도 정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치매도, 뇌졸중도 결국 노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죠.”
-노화를 막기보다는 건강수명 연장에 주력해야겠군요?
“우리나라도 보건복지부가 정책을 바꿔 64.5세(2016년 기준)인 건강수명을 2025년 70.1세로 올리려 합니다. 그래도 장차 20년가량 어쩌면 그 이상 누워서 지내야 하죠(2035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여자 92세, 남자 89세). 걷지 못하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자아를 잊어버린다면 영적으로는 죽었다고도 할 수 있어요.”
-곱게 나이들어가는 게 만만치 않은 화두 같습니다. 어떻게 늙어가야 할까요?
“생물학적인 신체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마음의 나이를 설정해 보세요. 특정 나이에 세팅해 그 나이로 쭉 살겠다고 스스로 각오를 하는 거예요. 이렇게 나의 각오가 달라지면 뇌도 달라지죠. 내가 늙는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뇌는 늙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느리게 나이 드는 기억력의 비밀>도 한 줄 요약을 하면 ‘뇌는 각오하는 순간 변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뇌를 속이는 거군요?
“맞아요. 뇌를 상대로 자기 나이를 속이는 거예요.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는 시니어들 가운데는 50~60대보다 훨씬 젊게 사는 분도 있어요. 저도 지금 50대 중반인데 40대 때보다 일을 훨씬 더 많이 합니다. 나름의 각성의 결과죠.”
그는 자기 뇌를 잘 속여먹어야 치매가 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개인 차가 있겠지만, 자기 나이보다 몇 살 아래로 세팅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30대 중반에 맞춰놨습니다. 올해 84이신 저의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의 마음으로 사신대요.”
그는 30대 때 체력을 유지하는 건 아니기에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 젊었을 때보다 ‘선택과 집중’을 한다고 말했다. 사적 모임, 음주 기회를 줄이는 식이다. 김 교수는 한양대 병원 기획조정실장이고, 성동구 치매안심센터장도 맡고 있다.
-마음의 나이를 세팅할 때 고려할 요소가 뭔가요?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맞추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저는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가 많이 바빴지만 행복했어요. 저의 아버지는 중학생 때가 가장 행복했대요.”
그는 나만의 마음의 여유 공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쁘게 사느라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면 안 돼요.”
-치매에 잘 걸리는 유형이 따로 있나요?
“걱정이 많은 사람, 소심하거나 성격이 예민한 사람, 살이 잘 안 찌는 사람이죠. 타고나기를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도 상대적으로 치매에 걸리기 쉽습니다. 이런 사람은 뇌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필요하면 카운슬링 같은 도움을 받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이런 사람들이 자신이 그런 과라는 걸 잘 몰라요. 그러니 도움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죠. 뇌 건강 관리 수칙 제 1조는 자기 자신을 잘 돌아보는 겁니다.”
그는 잘 살려면 기본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업데이트를 하는 거죠. 저의 경우 의학은 너무 빨리 변하는 만큼 공부를 계속하고 다른 사람의 강의도 들으려고 노력해요. 세계의 뉴 트렌드도 살핍니다.”
-인지 능력을 유지하고 집중력을 향상하는 두뇌운동으로는 뭐가 좋나요?
“저도 실천하는 일기 쓰기입니다. 저는 30년가량 썼는데 자판을 두드리는 거보다 손으로 쓰는 게 좋아요. 손으로 쓰면 형용사를 골라 쓰기가 더 어렵죠. 이렇게 손으로 쓰면 수정을 할 때도 수정액을 사용하거나 선을 그어야 해 더 집중을 하게 돼요. 손 글씨는 힘 조절도 필요해 쓰는 동안 두뇌의 여러 부위가 활성화되죠. 손으로 쓰는 건 고도의 노동이자 뇌가 즐거워 하는 활동이에요.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요. 저는 언짢은 일이 있는 날은 그 날짜에 쓴 과거 일기를 뒤적거려요. 그러면 더 힘들었거나 안 좋았던 과거와 맞닥뜨리게 되죠. 그래서 ‘지금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하면서 안분지족(安分知足)을 하게 돼요. 일기를 못 쓰겠으면 책을 소리내어 읽거나, 신문 사설을 필사 또는 요약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몸으로 하는 운동은 어떤 게 좋나요?
“내 몸에 맞는 운동이 좋아요. 관절이 괜찮다면 걷는 운동을 강추합니다. 러닝 머신 걷기보다 밖에서 걷는 게 좋아요. 걸을 때의 환경이 변해야 뇌가 활성화되죠. 저의 경우 바빠도 운동시간을 반드시 확보해 하루 1만~1만5000보를 걸으려 노력합니다. 교통수단은 주로 버스를 이용하죠. 만일 건강 상태가 안 좋아 걷기 힘들면 스트레칭이라도 하는 게 좋아요. 수영도 좋고, 요즘은 파크골프 하는 사람도 있죠. 치매에 안 좋은 게 오래 앉아 있는 겁니다. 오랫동안 앉아서유튜브를 보거나, 뇌에 좋다는 이유로 화투를 하는 게 가장 안 좋아요. 앉아 있기보다 몸을 자주 움직여야 합니다. 과거 초등학교 시절 40분 수업하고 10분 쉬었는데 이런 습관이 뇌에도 좋아요.”
그는 ▲유산소 운동에 ▲근력 운동과 ▲밸런스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세 가지 운동의 조합은 WHO의 권고 사항이라고 귀띔했다.
“65세 이상의 경우 이 세 운동의 바람직한 비율은 유산소 운동이 2, 근력 운동과 밸런스 운동이 각각 1이죠. 근육량은 늘린다기보다 젊은 시절의 수준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에요.”
김 교수는 휠체어를 타고 왔다 걸어서 나간 환자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노작곡가는 심근경색으로 들어와 중환자실에 2개월 있다 보니 아예 못 걷게 됐다. 대소변 실수를 하는 그에게 하루 10분이라도 걸어보라고 권했다.
“지금은 두 시간짜리 교향악 연주를 서서 지휘하고, 유럽 여행도 다녀요. 한때 가족이 요양원에 보내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환자였죠. 기적이 따로 없어요.”
-휴식도 나름의 루틴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운동처럼, 나한테 맞는 휴식법을 찾아야 합니다. 멍때리는 게 맞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걷는 게 곧 휴식이죠.”
김 교수는 우리 사회의 베이비부머가 이전 세대와는 다른 뉴노년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세대와 달리 많이 배웠고, 재산도 좀 있고, 건강 관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벌 수 있으면 계속 버는 게 좋습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창출하려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제 환자 중에 전기 분야의 독보적인 기술이 있는 81세 노인이 있습니다. 계약직으로 여전히 일을 하시는데, 기억력에 자신이 없어져 일을 그만두시려 해 ‘그만두면 바로 치매 온다’고 제가 말렸어요.”
-나이가 들면 잠을 제대로 못 자는데요?
“수면의 질이 나빠지는 거죠.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뇌의 노화가 빨라집니다. 바람직하기는 잠들기 3시간 전쯤 신체 활동을 해 몸을 약간 피곤하게 하고, 밤 8시~9시엔 잠자리에 드는 게 좋아요. 깊은 잠을 자게 하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7시~10시에 나오기 때문이죠. 또 맑은 날 낮에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멜라토닌이 잘 분비돼요. 멜라토닌은 수면을 도울뿐더러 항노화, 항암, 항염증에도 관여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전에 유튜브를 보는데 이런 광 자극을 받으면 눈이 낮이라고 착각해 뇌가 멜라토닌 분비를 하지 않아요. 이렇듯 잠들기 전 환경도 중요합니다.”
그는 숙면을 취하지 못했을 땐 라이프 스타일을 분석해 보라고 권했다. 전날 무슨 활동을 했고,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운동은 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다.
내가 뭘 잘못 먹는지도 체크한다.
“식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에게 맞는 좋은 음식을 먹어야 돼요. 평소 음식을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먹으면 치매나 뇌졸중이 올 확률이 높아지죠. 음식도, 운동도 내 몸 맞춤이 필요해요. 만일 나쁜 습관이 들었으면 천천히 바꿔야 합니다. 또 깊은 잠을 자게 하는 수면제는 없어요. 얕은 잠을 오래 자게 할 뿐이죠. 수면제를 먹으면 멜라토닌 분비도 줄어들어요.”
-노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들이 뭐라고 보나요?
“첫째 경제력입니다. 재산이 있는 분이 더 건강해요. 다음으로 마음의 평안, 몸의 건강이죠. 잘 베풀고 너그러운 사람들이 건강하게 나이들어 갑니다.”
-종교에의 귀의는 도움이 되나요?
“저는 도움이 됩니다. 종교가 있으면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죠.”
-치매에 관한 잘못된 상식은 뭔가요?
“나이 든 후에 온다는 착각입니다. 유전적 치매는 20대에도 옵니다. 뇌는 스무 살까지는 성장하지만 이때부터 늙어요. 뇌 건강을 위해 생활습관의 구조 조정을 젊었을 때부터 해야 할 이유죠.”
그는 또 지나친 건강 걱정은 그 자체가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겨야 합니다. 그러나 술담배는 젊었을 때부터 자제하는 게 좋아요.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하죠.”
김 교수는 고령사회는 사회 시스템이 노년기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그럴 역량이 안 되는 거죠. 앞으로도 안 될 거예요. 그래서 저마다 독립적으로 잘 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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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 인물 스토리텔러
30여년 국내ㆍ외 저명한 인사를 인터뷰한, 우리나라 최고의 인터뷰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그 후 《중앙일보》 편집국 기자,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월간중앙》 경제 전문 기자, 《이코노미스트》《포브스코리아》 경영 전문 기자 겸 부국장,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로 일했다.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초빙교수를 지냈고, 한국잡지교육원, 한국언론재단 미디어교육원, MBC저널리즘스쿨 등에서 가르친다. 저서에 『진보적 노인』, 『운명의 한 문장』, 『CEO 브랜딩』, 『한국의 CEO는 무엇으로 사는가(공저)』, 『아홉 경영구루에게 묻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