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드디어 국민연금을 다 내고서 든 생각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60세, 드디어 국민연금을 다 내고서 든 생각

글 : 버들치 / 작가 2024-12-24


'국민연금 예비 수급자를 위한 사전 안내서'를 받았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을 내느라 고생이 많았다. 내년부터는 안 내도 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다.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어린애마냥(?) 좋아하기에는 애매한 사안이다. 더 이상 안 내도 된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와 별개로 "내 나이가 벌써?"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어느덧 60이 되었다는 탄식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60 기념(?)으로 아내가 직접 그린 팝아트 초상화도 받았다. 실물보다 나은 부분도 있고 못 한 부분도 있고. 그러나 (심각해 보이는) 실물보다 부드럽게 보인다는 게 첫째의 평이다. 맞는 것 같다. 사무실에 갖다 놓아야겠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송강 정철의 훈민가 중 일부다. 나도 늙는 것이 서러운 것일까? 드디어(?) 육십이 되었다. 60을 맞는 감회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가식적인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진실은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삶으로 표현되고 증명하는 것이다. 시간의 빠르기를 나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20대 때는 20km 속도로 가고 60대 때는 60km의 속도로 간다고 한다. 물리학 이론에 어긋나는 말이지만 이상하게 나도 그렇게 느껴진다. 육십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봄] 청년기 1964년 ~1984년 (0세 ~ 20세) 


다행히 엇나가거나 삐뚤어지지 않았다.


스무 살까지의 청년기를 회상해 보면 생명이 움트는 봄하고는 확연히 멀었던 것 같다. 막막함과 고독이 안으로 침잠했던 시기다. 꿈도 절망도, 낙관도 비관도, 행복도 불행도, 도전도 좌절도 그 어느 것도 아닌 중간 지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모든 게 유보된 상태였다. 어느 소설에 나온 문구인지 기억은 없지만 젊음은 축복이 아닌 형벌과도 같았다.


청년 시절은 배우고 익히는 시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 또래의 동네 친구들은 담배를 배우고, 술을 배우고, 노는 걸 배웠다. 그리고 세 가지 특기(적성)를 살려 일찌감치 동네를 떠났다. 나도 이 세 가지를 배우는 데 좋은(?) 환경이었지만 제대로 못 배웠다. 숫기가 없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덕분(?)이다. 젊은 시절을 회상해 보면 뭐 배운 게 있고 제대로 한 것이 있나 싶지만 고민과 방황도 배우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위로해 본다. 나에게 청년 시절은 엇나가거나 삐뚤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시기였다. 뒤돌아 보니 천만다행이었다.



 [여름] 장년기 1985년~2004년 (21세 ~ 40세) 


아내와 사랑한 것 빼고 기억하고 싶은 건 없다


여름은 생명이 성장하는 시기이다. 논에 물을 대고, 김을 매고, 뙤약볕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시기다. 누구의 인생이든 여름은 뜨겁고 다이내믹하고 가장 왕성한 시기다. 나도 군대 갔다 오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고, IMF 사태를 맞고, 일을 벌이고 수습하며 한창 일했던 시기다. 당연히 시행착오가 많았다. 주변을 의식하고, 직장 동료와 경쟁하고,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앞서나가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마음은 여유가 없고 생활은 각박했다. 그러나 그땐 몰랐다.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고 고개를 저을 것 같다. 아내와 사랑한 것 빼고는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장년은 열심히 일하는 시기다. 그러나 열심히 일했음에도 결혼한 해에 IMF 사태가 터졌다. 회사도 나도 위태로웠다. 회사는 천문학적인 자본 잠식 상태였으나 최종현 회장의 결단(자본 출자와 증자)으로 풍전등화 같던 회사가 다시 살아났다. 최○○ 회장은 별로이지만 그의 부친인 최종현 회장은 존경할 만한 분이다.  나 역시 적지 않은 돈을 말아먹었다. 쫄딱 망했다는 표현이 맞다. 우정을 쌓는다고 빚보증 서주고, 재테크 한답시고 주식, 경매에 몰입한 끝에 패가망신했다.


내가 돈을 말아먹은 원인은 남을 믿었고 나를 믿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믿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 후 자기 계발에 열을 올렸다. 소소한 성과도 있었지만, 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상관의 안색을 살피고 심기를 헤아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걸 잘해야 출세 가도에 들어설 수 있다. 아부는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란 것도 알았다. 그러나 회사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놈은 일 잘하는 놈도, 타고난 놈도 아닌 운 좋은 놈이었다. '놈놈놈' 중에 내가 제일 하수였다.



 [가을] 중년기 2005년~2024년 (41세 ~ 60세)


아프니까 중년이다.


가을은 열매를 맺는 결실의 계절이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개념이 어느 정도 통하는 시기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이 시기에 가셨다. 이른 것도, 늦은 것도 아니지만 두 분의 임종을 보고 비로소 내 인생도 꺾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고통과 상처를 내기도 하지만 체념을 통한 평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짧은 학력임에도 불구하고 임원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잘 안 풀렸다. 임원이 뭐 별거는 아니지만 멋있어 보였다. 나도 속물이다. 임원은 못 했어도 약간의 재물을 모아 아쉬움을 퉁칠 수 있었다. 몸도 쇠하는 시기다. 여기저기 아프고 결리고 시리다. 병원 응급실에 몇 번 갔다. 두 번 모두 아내와 동행했다. 갔다 와서 깨달은 건 이젠 몸을 막 굴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조심해서 살아야 할 시점이다.


중년은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시기다. 퇴직할 때의 직책과 직급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 결정된다. 누군 임원으로 퇴직하면 평생 임원이고 누군 부장으로 퇴직하면 평생 부장으로 대접받는다. 인생 2막을 꺼리는 이유는 직급이 형편없이 강등되기 때문이다. 김 이사, 김 부장에서 하루아침에 김 기사나 김 씨로 추락하는데 마음 편할 리 없다. 중년 막판까지 잘 풀리는 사람은 열에 하나 정도다. 그동안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니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몸과 마음 모두 급격히 상실감을 맛보는 시기다. 그 상실감은 로빈슨 크루소의 고독과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청년의 아픔이 엄살이라면 중년의 아픔은 글자 그대로 고통이다.



 [겨울] 노년기 2025년 ~ 2045년? (61세 ~ 80세?) 


찬란한 저녁놀이 있음을 기대해 본다.


겨울은 동면하거나 쉬는 시기이다. 농한기라고 하지만 마냥 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장하고 장작을 패고 볕섬을 만들고 새끼를 꼬아 월동 준비를 한다. 친구들도 하나둘 은퇴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은퇴해서 시골(?)로 내려간 친구도 있고, 직장과 전원주택을 오고 가는 친구도 있다.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준비한다고 하지만 막연한 게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이다. 4~5년간 일하다 그 이후부터는 도시를 떠도는 낭인으로 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전원주택도 좋고 5도 2촌도 좋지만 주소지는 서울에 둘 생각이다. 노년은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저물어가는 시기지만 찬란한 저녁놀이 있음을 기대해 본다.



인생은 싸움터고, 사는 건 싸우는 것이다.


내 인생 사계절을 회상해 보면 하나하나가 싸움터였다. 어떤 때는 쫄아서 도망치기도 했고, 어떤 때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고 날뛰기도 했다. 청년 시절은 이 세상이 싸움터란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린 시기다. 장년 때는 아무 준비 없이 싸움에 임했다가 큰 상처를 입었다. 중년은 작은 싸움에서 몇 번 승리를 거둬 기고만장했다. 그러다 방심한 틈에 불의의 일격을 맞고 기절했다. 

노년은 아직 미지의 세계다. 싸움이 끝난 것일까? 아닐까? 아니면 유보된 것일까? 이때부터는 져주는 싸움일까? 잘 모르겠다. 살아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은 크고 작은 싸움이 치러지는 곳이다. 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하지만 싸움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관심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자매끼리 싸운다. 부모가 죽으면 유산을 가지고 싸운다. 학생 때는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며(?) 싸운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면 지위와 승진을 두고 동료들과 싸운다. 잠깐의 평화는 이해관계가 같은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큰 싸움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다. 예전엔 피를 뿌리고 한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결국 싸움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준비가 허술하면 당한다.

뉴스레터 구독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주 1회 노후준비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 이메일
  •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보기
  • 광고성 정보 수신

    약관보기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정보변경이 가능합니다.

  • 신규 이메일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구독취소가 가능합니다.

  •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