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10억 만들기, 나는 어떻게 시작했나
글 : 신파람 / 공학박사, 객원교수 2024-11-01
자고 일어났더니 부자가 되어 있다는 소설이나 드라마가 있습니다. 제가 어쩌면 그 경우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은퇴준비용 연금 계좌를 열어보았더니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요즘 10억원이 있다고 부자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국민연금, 자가 주택 외의 금융자산이 그 정도이면, 은퇴 후의 생활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저는 27년 전부터 아무 생각 없이 매달 급여의 일부를 자동 이체하여 미국의 주식 펀드와 ETF에 투자하였더니, 어느 날 계좌가 10억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미국에서 401(k) 제도를 만나다
저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국내 대학을 졸업한 후, 중산층 정도 되는 부모님의 뒷받침으로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녀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직장인이셔서 여유가 많지는 않았지만, 처음 1년 유학의 학비와 생활비는 지원해 주셨고, 그 다음부터는 거의 제가 해결했습니다. 다행히 연구 조교 (RA)를 할 수 있어서 등록금은 면제받았고, 월 1,000달러 정도의 생활비를 학교에서 받아서 어느 정도 생활은 할 수 있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1996년부터 미국의 스타트업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원에서 RA 급여를 받았기 때문에 미국의 세금 제도에 대해서 어느정도 익숙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직장에 들어가 보니 세금 말고도 401(k) 라는 은퇴 연금 제도가 있어 처음에 당황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입을 안 했다가, 입사 다음 해인 1997년 초에 가입하였고, 그 해 4월에 최초 납입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급여 명세서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138.08, 당시의 환율 (약 900원)로 12만원 정도를 401(k)에 납입했다고 찍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2주마다 급여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당시 저의 2주 급여가 $2,761.64였고, 그것의 5%를 401(k)에 납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꾸준히 납입하고, 납입한 돈으로 투자를 하면 27년 후에 10억원이 생길 거라고는 정말로 상상도 못 했습니다.
여기서 401(k)제도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 우리나라의 연금저축과 개인형 퇴직연금 (IRP)제도와 비슷합니다. 근로자가 설정한 금액을 꾸준히 납입하여, 은퇴 시점에 목돈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제도입니다. 특히 미국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법정 퇴직금 (또는 퇴직연금) 제도가 없기에, 직장인으로서는 401k에 적립하고 수익을 올려서 모으는 돈이 유일한 은퇴 자금이 됩니다. {편집자주 : 401(k) 제도는 우리나라에 DC형 퇴직연금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의 DC형 제도의 경우 회사가 납입하지만 401(k)는 개인이 납입을 한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개인형 퇴직연금 제도(IRP)에 가까움}
근로자가 회사에 401(k) 가입을 신청하면, 회사는 운영사 (증권사)와 계약하여 근로자의 401(k) 계좌를 만들어 줍니다. 근로자는 급여의 얼마를 납입할 지 결정하여 회사에 알려주고, 회사는 마치 세금을 원천 징수하듯 근로자의 급여에서 그 금액을 미리 공제하여 증권사의 계좌로 직접 납입해 줍니다. 따라서 근로자는 그 납입금을 받아 보지도 못합니다. 즉 401(k)에 납입하는 돈은 소득세를 원천 징수하기 전의 돈, 다른 말로 세전 급여 (pre-tax wage)에서 나갑니다.
세전 급여라는 것이 중요한데, 401(k)에 납입한 금액은 근로자의 소득에서 공제가 됩니다. 즉 근로자의 세전 급여가 $100,000인데 $10,000를 401(k) 계좌에 납입하면, $10,000은 근로자의 소득에서 제외되어 소득금액은 $90,000으로 낮아집니다.
세제 혜택 때문에 가입했지만 진짜 혜택은 따로 있었다
우리나라도 연금저축 계좌와 개인형 퇴직연금 (IRP) 계좌에 납입한 금액은 이와 유사하게 세제 혜택을 주는데, 우리나라는 세액공제인 반면 미국의 401(k)는 소득공제입니다. 즉 401(k)는 소득금액 자체를 낮춰주는 반면, 우리나라는 납부할 세액을 먼저 계산한 후 세액을 낮춰주는 방식입니다. 고연봉자에게는 소득공제가 훨씬 더 유리합니다.
물론 1년에 공제할 수 있는 한도가 있습니다. 제가 401(k)에 처음 가입했던 1997년에는 납입금의 $9,500까지 소득에서 공제할 수 있었는데, 이 후 점차 늘어서 2024년은 $23,000 입니다. 우리나라의 연금저축과 IRP 납입금의 세액공제 대상 한도는 900만원이라, 미국이 더 많은 공제 혜택을 줍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직장인들도 그렇지만, 저도 처음에는 이 소득공제 혜택 때문에 401(k)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401(k), 그리고 우리나라의 연금저축 및 IRP 제도의 진짜 혜택은 납입한 돈이 불어날 때 있습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납입한 돈이 수익을 내면, 그 수익에 대한 세금은 그 해에 내지 않고, 그 계좌에서 인출하는 연도에 세금을 냅니다. 이것을 과세이연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연금 계좌의 진짜 혜택입니다.
과세가 이연되면, 수익금 전부가 재투자됩니다. 세금으로 빠져나가야 했을 돈도 재투자 됩니다. 수익에 대해 또 수익이 생겨서 돈이 불어나는 속도가 빠릅니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세금으로 내야 할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나중에 세금을 낼 때 이자를 붙여서 내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더 낮은 세율을 적용해 줍니다. 이렇게 고마운 제도가 어디 또 있을까요?
예금은 이제 그만, 투자에 눈뜬 이의 계좌는 어떻게 달라졌나
401(k) 계좌 안에서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예금, 펀드 등의 상품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 가입 시에는 어느 상품에 투자할 지 몰라서 수 년 동안 예금에 넣어 두었습니다.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고, 은퇴 후의 자금이니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수익이 얼마 안 나오는 예금에 넣어 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선택이었습니다.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한 젊은 시절이 가장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기회인데, 그 기회를 놓친 겁니다. 하지만 닷컴 버블 붕괴와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때 미국 주식 시장이 폭락하면서 주식 계좌가 반토막이 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투자도 새옹지마인 것 같습니다.
그 후 직장을 옮기면서 401(k)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는 상품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2007년부터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하였습니다. 투자라고 해 봤자 납입금을 어느 상품에 어떤 비율로 투자하는 지 한 번만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급여에서 자동으로 그 상품에 정기적으로 투자가 되니, 신경 쓸 것이 전혀 없습니다. 회사 업무가 바빠서 들여다보지도 못했습니다.
오래 전에 시작한 계좌라서 그 당시의 기록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 때에는 매달 종이에 인쇄된 계좌 보고서를 우편으로 받아 보았는데, 한 동안 그것들을 모아 두었다가 언젠가 이사가면서 다 버렸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보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급여 명세서 등 지금도 가지고 있는 서류와, 제가 엑셀로 기록해 둔 데이터에 의하면, 1996년부터 2013년까지 두 개의 401(k) 계좌에 납입한 금액은 $120,000 정도 됩니다. 그 당시 환율로 1억3천만원이 조금 넘습니다.
2013년에 우리나라 회사로 이직하면서 영주 귀국을 했는데, 그때부터는 401(k) 계좌에 납입할 자격이 안 됩니다. 다만 이미 납입한 돈의 운용은 할 수 있습니다. 그 계좌들의 현재 평가액은 약 $645,000, 현재 환율로 8억6천만원 정도 됩니다. 원화로 계산 시, 납입 원금의 6배가 넘는 금액이 계좌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래 사진들이 제 계좌들의 화면 캡쳐입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연금저축, IRP, ISA 계좌를 개설하여 10년 동안 총 1억3천만원 정도를 납입하였고, 그 계좌들의 현재 평가액은 2억5천만원 정도 됩니다. 전부 합산하면, 미국과 우리나라의 연금 계좌에 11억원에 가까운 펀드와 ETF 상품이 들어 있습니다.
투자를 모르던 직장인, 연금 부자되기까지
소액이라도 꾸준히 그리고 오랫동안 펀드와 ETF 상품에 투자하면, 은퇴할 때는 누구나 연금 부자가 됩니다. 제가 그 경험자입니다. 하지만 단기간에는 안 됩니다. 충분히 검증된 투자 상품을 꾸준히 매수하고, 절대로 팔지 않는 것이 노후 준비의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회에서는 401(k) 계좌에 얼마씩 얼마 동안 납입하였는지, 그리고 어떤 금융 상품에 투자했는지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신파람 공학박사, 객원교수
전자공학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여 초등학교 때 디지털 시계를 제작하였고, 컴퓨터 설계와 기계어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깨우쳤다.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스템 반도체 전문가로 미국의 스타트업 회사 및 대기업인 마이크론,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한 후, 현재는 국내 대학의 객원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미국과 국내 연금 계좌에 저축하고 투자하여 10억원의 연금을 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직접 체득한 투자, 연금, 세금, 건강보험 관련 노하우와 지식 정보를 “신파람”이라는 필명으로 네이버 카페에 게재하여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은퇴 준비는 30년 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취지의 "신파람의 은퇴준비 오지랖" 이라는 블로그와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