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죽음, 나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죽음, 나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

글 : 이필재 / 인물 스토리텔러 2024-10-28

“우리 몸은 죽음을 맞지만 우리의 의식은 지속됩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명망이 있는 과학자·의사들이 2015년 가을 미 애리조나주 투싼에 모여 한 선언의 핵심적인 내용이죠.”


‘죽음학 전도사’로 통하는 정현채 서울의대 명예교수는 “우리 의식의 활동 범위는 뇌 같은 특정한 신체 기관이나 어느 특정한 시기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게 이들 전문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물론 전 세계 과학자 수에 비하면 소수가 모여 한 선언이에요. 이들이 이 선언을 한 목적은 죽음이 임박한 임종기의 환자에게 좀 품위 있고 인간적인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정 교수는 이들의 선언은 다섯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뇌·심장기능이 정지해 생물학적으로는 사망한 상태에서 사후세계를 경험하는 근사(近死) 체험, 

▲임종 직전 어떤 환영을 보는 ‘삶의 종말 체험’, 

▲현관 센서등의 점멸, 커피 원두 향 등 고인이 보내는 메시지에 해당하는 ‘사후(死後) 통신’, 

▲고인의 영혼과 소통하는 영매(靈媒)의 존재, 

▲어린이의 전생(前生) 기억을 통한 환생(還生) 연구 등이다. 


“환생 사례는 과거엔 인도, 스리랑카 등 환생에 대한 의식이 보편화된 나라에서 조사된 게 많았지만 요즘은 기독교 국가인 미국, 영국의 사례가 많습니다.”




-죽음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밝혀졌다고 봅니까?


“란셋(The Lancet)이라는 영국의 의학저널은 창간된 지 200년이 넘습니다. 여기에 실린 한 전향적 연구는 네덜란드의 10개 병원이 공동으로 실시했는데 근사 체험을 다뤘습니다. 전향적 연구는 의무 기록을 사후적으로 뒤지는 후향적 연구와 달리 미리 계획을 세워서 하는 연구죠. 죽음에 관해선 이미 알려진 사실도 있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비과학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할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죽음의 실체죠. 죽음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멸로서 인간은 일회성 존재로서 수명이 다하면 홀연히 사라진다는 입장이죠. 다른 하나는 죽음을 통과해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다른 차원의 세계로 옮겨간다는 ‘죽음관’입니다. 거의 모든 고등 종교가 사후세계에 대해 말하지만 수십년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도 다수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교수는 사후세계로 옮겨간다는 죽음관을 갖게 되면 죽음을, 더 이상 괴롭고 끔찍한 소멸이 아니라 마지막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덧붙였다. 



-삶의 질뿐 아니라 죽음의 질도 논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죽음의 질이 어떻다고 보십니까?


“10년 전 실시한 국제 비교 조사에서 30위로 바닥권이었습니다. 1위가 영국이었는데 영국인들이 남달라서가 아니라 영국 정부가 나서서 죽음에 대한 교육 등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에요.”



-죽음의 질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 우리나라가 특히 떨어지는 게 뭔가요?


“육체적으로 극심한 고통 없이 편안히 죽음을 맞아야 하는데 진통제를 적게 쓰는 거예요. 말기암 환자조차, 중독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에 가족들이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주저합니다.”



-죽음학 연구가로서 어떤 죽음을 맞기를 권하십니까?


“당하는 죽음 말고 맞이하는 죽음입니다. 그러자면 건강할 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죽음을 외면하고, 부정하고 심지어 혐오할 게 아니라 어떤 죽음을 맞이할 건지 평소 관심을 갖고, 책도 보고 강의도 들어야죠. 그런데 현실은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다수예요. 그러니 죽음을 맞는 게 너무 힘든 거죠.”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이라고 보시나요?


“일단 통증 조절을 잘해 고통이 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연명 치료 여부 등 죽음과 관련한 의사 표시·결정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해요. 또 타인에 대한 나름의 기여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느껴야 합니다.”


서울대 의대 출신인 그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관한 연구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모교에 내과학(소화기학) 교수로 재직했다. 240여 편의 의과학 논문을 SCI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2018년 정년퇴임을 2년 앞두고 명예퇴직을 했다. 방광암 진단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이듬해 제주도로 이주했다. 앞서 2016년 작은 땅을 사서 지은 제주의 나무집에 산다. 2007년 한국죽음학회 이사를 맡았고, 죽음학 연구와 강의를 지속하고 있다. 



-병원에서 맞는 죽음도 객사(客死)라고 하셨던데, 수긍합니다. 자신이 사는 집에서 가족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으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제가 인턴을 한 1980년대만 해도 죽음이 임박한 병원 입원 환자는 종종 앰뷸런스를 타고 집에 가 임종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맞는 죽음도 객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지금은 반대로 집에 있다가도 죽음이 다가오면 응급실을 거쳐 병원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집에서 죽음을 맞으려면 무엇보다 죽음을 어떻게 맞을 건지 평소에 생각해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죽음은, 가까워졌을 때 준비하면 된다는 건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예요. 많은 죽음이 뒤통수를 치듯 닥칩니다. 준비되지 않으면 경황없이 황망한 죽음을 맞습니다.”



-죽음을 언제부터 준비해야 하나요?


“원불교의 경전은 마흔이 넘으면 죽음을 준비하라고 하는데, 저는 이를수록 좋다고 봅니다. 초등학생 때 반려동물의 죽음부터 교육하는 게 좋아요. 독일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죽음 교육을 시작하고, 고 2 윤리시간에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어떻게 할 건가’를 주제로 토론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죽음 교육을 하면 염세적이 되고 자살이 늘어날 거라고 걱정하는데 몰이해한 탓이에요. 일본의 어느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1년에 12번 죽음 교육을 했습니다. 반려동물의 죽음, 시한부 선고, 자살, 장기 이식, 죽음에 대한 공포, 사후세계 등을 다뤘죠. 이 교육 후에 교내 폭력, 집단 따돌림, 자살 등이 30%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존재라는 걸 알면 남을 함부로 해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언젠가 내가 죽는다는 걸 기억하면 살아 있는 하루 하루가 소중해지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까르페 디엠(Carpe diem)은 그래서 한 쌍의 대구(對句)입니다.”


그는 KTX를 탈 때 4가 들어가는 4A, 4B 같은 좌석을 즐겨 예매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죽을 사(死) 자 때문에 숫자 4도 기피해 비어 있을 때가 많아요.”




정 교수는 지난해 봄 저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를 냈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를 통해 전하시려 한 핵심 메시지가 뭔가요?


“이 책의 초판 표지 그림이 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는 모습입니다. 뒷표지엔 그 사람이 문으로 들어가는 그림을 실었죠. 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입니다.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죠.”

 그는 이때 이동하는 사람의 영혼은 고유한 주파수 내지는 진동수를 가진 에너지체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정보가 입력돼 있는 에너지체죠. 삶에서 얻은 지혜, 나름대로 쌓은 수양, 타인에 대한 배려, 친절과 선행이 전부 기록된다고 봅니다. 불교에선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하는데 이렇게 본다면 빈손으로 가는 건 아니죠.”



-정말 지혜도 가져간다면, 우리가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네요. 


“그렇죠. 사람은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을 합니다. 꽃길만 걸어서는 성장을 할 수가 없어요. 항구를 떠난 배도 험한 풍파를 겪어야 항해술이 발전하죠. 우리는 성장하기 위해 이 지구별에 왔습니다.”



-정 교수님 본인이 하시는 죽음 준비 중에 주변에 권하고 싶은 게 뭔가요?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죠. 사전장례식도 좋다고 봅니다. 제가 아는 정형외과 개업의는 아마추어 사진가였는데 70여 세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사진 전시회를 했어요. 일종의 사전장례식이었죠. 미국의 세계적인 완화의료 전문의 아이라 바이오크는 저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4가지 말>에서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으로 이 네 마디를 제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용서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한 삶을 꾸리는 말들이기도 하죠. 만일 만나서 용서를 구할 수 없다면 마음으로라도 용서를 구해야겠죠. 유언장,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기기증희망등록 등은 권할 때 작성해야 합니다. 저도 암 환자이지만 암 환자에게 유언장 이야기 꺼내면 ‘나더러 지금 죽으라는 소리냐’고 격하게 반응해요. 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이 작성을 하고도 가족에게 끌려다니는 사례가 많은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이 아직은 많지 않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명 치료를 받지 않으려면, 평소 가족과 대화할 때 화제로 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해 받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게 좋아요.”



-가족 뜻에 따라 본인 의사에 반해 연명 치료를 하는 건 제도가 미비한 탓 아닙니까?


“그래서 당사자의 연명의료의향이 지켜지려면, 의료진이든 가족이든 본인 의사를 무시하면 벌금을 물린다든지 처벌하도록 법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는 의료진이 환자의 병명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건 함부로 얘기한다고 멱살을 잡히는 등 폭행을 당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광암 수술을 받은 지 6년 됐다. 

“보통 5년 지나면 완치됐다고 하지만, 7~8년 후 재발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암이 생기는 이중암·삼중암도 있습니다.”   




-암 등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병으로 투병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주시죠. 


“죽음의 특징 중 하나가 예측을 불허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암은 루게릭병, 뇌졸중, 치매 등과 달리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한 병이죠. 여명(餘命)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조기 발견해 완치될 수도 있어요. 암 가족력이 없어도 요즘은 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당사자는 물론 가족도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할 필요가 있어요. 죽음 준비죠. 자신의 죽음이 가족에겐 죽음을 교육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더러 곡기를 끊기도 했지 않습니까?


“자발적인 존엄 단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안 먹어서 죽는 게 아니라 죽을 때가 되어 안 먹는 거라고 할까요? 존엄사를 포함해 우리나라 정책결정자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거 같아요. 저출생이 심각한데 출산률이 낮다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젊은 영혼이 자살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는 7년 전 죽음학 강의를 하러 갔다가 주최 측의 제안으로 청중과 함께 묘비명을 쓴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무제한 여권을 가진 시간 여행자들이다.’라고 썼습니다. 죽음에 대한 강의를 마칠 때 인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과학자이기도 한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 샤르댕이 한 말이죠. ‘우리는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지금 인간 체험을 하고 있는 영적인 존재다’. 내가 영적인 존재면 나의 이웃도, 어느 날 밥 먹다 마주친 식당 종업원도 당연히 영적인 존재죠, 그렇다면 소위 갑질을 하거나 남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거죠. 이런 인식이 공유돼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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