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커뮤니티 활성화가 노인 생활에 끼치는 영향
글 : 김수민 2024-10-25
요즘 한국의 소위 엠지(MZ) 세대라 불리는 이삼십 대들이 농촌을 비롯한 대도시 외곽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 생활하는 모습을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다. 소규모 지방 도시들의 인구 감소율은 높은 편이지만, 이에 비해서 노인 인구의 비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점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통된 현상이다. 첨단 산업과 밀접히 연결된 구조적 인프라가 소규모 도시들에까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독일은 소규모 마을 단위 공동체의 생활 환경이 대부분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마트의 수가 많지 않은데다 문을 연 곳도 드물고, 버스 등 대중교통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또한 고즈넉한 삶을 즐기는 독일인들의 특성상 시골 마을에서 쇼핑을 할 만한 곳이 많지 않다. 배달 문화, 인터넷 쇼핑, 편의점과 같은 편의를 추구하는 문화와 소비 형태가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낙후된 시골에서도 거주할 수 있도록 이끈 것이 아니었을까.
문제점: 이 마을에 버스는 얼마나 자주 오는가?
이 시점에서 노인들의 거주 환경을 개선하고자 독일의 한 매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해 볼 수 있다.‘플랜 D(Projekt Plan D)’는 독일의 주요 신문사인 짜이트(Die Zeit) 지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독일의 낙후된 지역의 특성을 조사하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프로젝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프로젝트가 노인들의 생활 환경을 아주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조사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는 점이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질문들에 답함으로써 지역 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가령, 마을 버스의 운행이 이 지역 노인들의 삶을 충분히 만족시켜주고 있는가.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지 않거나 혹은 자식이나 손자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노인들은 병원 또는 마트에 가기 위한 외출 시 어떻게 해야할까. ‘플랜 디’는 각 지역의 노인들한테서 직접 질문을 받아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실제 사례가 바덴 뷔템베르크의 한 지역에 내에 존재한다.
대중교통 시설이 원활하지 않았던 이 지역에서는 노인들의 고충을 해결하고자 마을 근처 교회 앞에 간이 버스 정류장을 마련하고 시민들을 위한 개별적인 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이런 개별적이고 특수한 운행 방침으로 인해 교통수단은 매번 버스가 아닐 수도 있었다. 자원봉사를 나선 주민들이 자신의 자가용으로 노인들을 거주하는 집까지 태워다 주는 무료 봉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규모 공동체의 자발적인 노력의 성과
그러나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독일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해결하고 있다는 것도 생소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독일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조직이나 단체가 한국에 비교했을 때 보다 왕성하게 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선 바덴 뷔템베르크 지역의 사례는 결국 지역 내에 '시민버스(BürgerBus)'로 불리는 특별한 버스 운행을 이행하기로 결정됨으로써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했다.
노인 문제에 대한 세밀한 접근 시도
플랜 디 프로젝트의 매력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노인 복지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복지 방식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소외된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보다 확실하고 직접적인 해결책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노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겪는 생생한 체험은 ‘플랜 디’ 프로젝트의 작업 내용에 차곡차곡 수집되고 있다.
최근까지 ‘플랜 디’가 지역 노인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자 해결한 문제들은 황당하리만치 세밀하고 구체적인 사안들이다. 가령 베를린 외곽 브란덴부르크의 한 마을에서는 베이커리의 수가 적고 그것도 주말과 공휴일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를 플랜 디에 알려왔다. 베이커리의 수도 문제였지만 인적이 드문 마을인 탓에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는 논의 끝에 35세의 한 젊은 청년이 새로 베이커리를 오픈하고 개장 시간을 연장함으로써 마을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소’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플랜 디’ 프로젝트는 짜이트 신문의 인터넷 홈페이지 경로를 이용해서 이러한 세세한 문의들을 수집하는 중이다.
김수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