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글 : 박창영 / '씨네프레소(영화 속 인생 상담소)' 저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2024-10-14
인간의 시간은 직선적입니다. 과거를 뒤로 하고 미래로 나아가죠.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여행물을 즐기는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결정을 바로잡는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하기 위해서요. 오늘은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시간여행을 통해 가고야 마는 인물들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순환적 시간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을 엿보면서 직선적 타임라인 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이 과연 불행하기만 한 것인지 돌아보겠습니다.
(*감상 가능한 OTT 정보는 9월 30일 기준으로, 추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
나비효과
비겁하게 외면한 순간이 가져온 결과
에반(애쉬튼 커처)은 소년이 겪기엔 가혹한 사건들을 경험하며 자란 남성입니다. 그는 소중한 친구들이 폭력에 노출됐을 때 지켜주지 못했죠. 과거를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무난하게 살아가던 에반은 자신의 친구들이 여전히 옛 기억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느 날 그는 본인의 일기장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는 통로를 발견합니다. 옛 사건 현장으로 돌아가, 그 순간을 바로잡을 기회를 갖게 되는데요. 하나의 과오를 고칠 때마다 자신의 삶 전체가 바뀌는 경험을 하죠. 여기엔 긍정적 변화뿐만 아니라 나쁜 변화도 수반됩니다. 잘못된 부분을 하나 고치고 나면 또 다른 부정적 결과가 발생하는 건데요. 에반은 옛 실수를 모두 올바르게 하고 싶어 시간을 되돌리길 반복합니다.
이 영화엔 뚜렷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건 주인공이 바꾸려고 하는 옛 순간들이 가진 공통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요. 그가 간절히 바꾸고자 했던 과거들은 대부분 자신이 비겁하게 외면했던 장면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잠깐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 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는 건 결국 자신에게 부정적 미래를 안겨줄 수 있다는 이야기죠.
<나비효과>를 볼 수 있는 OTT: 넷플릭스, U+모바일tv
어바웃 타임
모태솔로 벗어나고 싶어 시간여행을 한 남자
팀(도널 글리슨)은 21살이 된 뒤 시간여행을 하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원래 모태솔로였던 남자였는데요. 시간여행을 통해 애인을 한 번 만들어보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인연이 되기 위해선 언제 만나는지가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든 그가 연애 고수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팀은 시간여행을 거듭하던 중 중요한 진실을 직면하게 됩니다. 과거의 결정 중 단 하나만 바꿔도 자기 인생의 많은 요소가 변해버린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자녀가 있는 시간여행자가 출산 전의 어떤 결정을 변경한다면, 자기가 원래 낳았던 아이와 다른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경쾌한 분위기의 영화이지만 메시지가 없지 않습니다. 우리가 시간여행 능력을 갖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그 여행을 멈출 수밖에 없단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주변과 맺는 관계에 있는데요. 숱한 시간여행을 통해 한 사람이 끝내 행복해졌다면, 아마 그 시점에 그는 가족, 친구, 반려동물과의 관계에 만족할 가능성이 높겠죠. 그렇다면 한 번의 시간여행으로 그들이 더 이상 내 옆에 존재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주변의 존재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시간여행을 꿈꿀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바웃 타임>을 볼 수 있는 OTT: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웨이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멀티버스 여행하던 그녀가 발견한 철부지 남편의 장점
이민자 여성 에블린(양자경)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된 지금의 삶을 ‘꿈의 실현’이라고 평가하는 건 주저됩니다. 코인 세탁소 사장인 그녀는 매일 손님들의 자질구레한 민원을 처리해주는 데 피로를 느끼고요. 남편은 무게감 없이 촐싹대고, 딸은 엄마의 뜻과 정반대의 길로만 걸어갑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 없이 살아가던 에블린은 어느 날 세상엔 멀티버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자신이 다른 우주 속에선 특급 식당의 요리사, 인기 연예인 등 보다 멋진 버전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역시나 현생에선 잘못된 선택만을 해왔다’고 한탄하는 것도 잠시. 에블린은 모든 버전의 자기 삶에 공통적으로 묻어 있는 건 ‘후회와 아쉬움’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재미있는 건 다중우주를 여행하던 도중 그녀가 찾은 남편의 장점이에요. 세계 최약체인 줄만 알았던 남편에게 확실한 강점이 있었던 것이죠. 그건 바로 무엇을 하든 쉽게 후회하는 아내 옆에서 언제나 다정한 모습으로 삶의 균질성을 유지하게 해준 남편의 ‘꾸준함’이었습니다. 친절하다는 것은 어떤 우주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볼 수 있는 OTT: 웨이브, 왓챠, 네이버 시리즈온, U+모바일tv
박창영 '씨네프레소(영화 속 인생 상담소)' 저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14년부터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일해 왔다. 매경닷컴에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OTT 영화를 리뷰하는 코너 '씨네프레소'를 연재하고 있으며 동명의 책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