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6개월 후, 나는 왜 '유유자적' 대신 '변화'를 택했나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퇴직 6개월 후, 나는 왜 '유유자적' 대신 '변화'를 택했나

글 : 송양민 / 가천대학교 명예교수 2024-09-23

지난 2월 정년퇴직을 한 후 6개월이 지나면서 필자의 삶에 ‘작은 변곡점’이 하나 만들어졌다. 천천히 흐르는 듯하던 시간이 다시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진 아침에 강아지와 함께 들판을 산책하고, 마을도서관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읽고, 앞산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夕陽)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마음속으로 ‘1년 정도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6개월 쯤 지나니 생활 패턴을 다소 바꿔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당 잔디밭과 정원을 가꾸고, 향내 짙은 소나무 숲에서 커피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약간 단조롭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치매에 걸리기 전에, 인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 정도 남았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래서 지금 즐기는 것이 죽을 때까지 즐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변화(change)’를 찾아야 할 때라는 판단을 내렸다. 


작년부터 모시고 사는 장모님은, 초기 치매의 영향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말없이 TV를 보시다가 식사하시고, 또 TV를 보시다 주무시고 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계신다. 인지능력 향상을 위해 데이케어센터(daycare center), 노인복지관 등을 견학시켜드렸으나, “혼자 있는 게 좋다“면서 다 손사래를 치신다. 장모님과 얘기를 나눠보면, 일제 강점기 시절과 60~80년대 옛날 친구 얘기만 한 보따리 풀어 놓으신다. 옛 추억을 회상하는 게 유일한 즐거움인 듯하다. 


‘평균수명’이라는 인생의 길이는 모두에게 공평할 것이고, 치매는 고령자의 30%가 앓는 질환이다. 필자도 ‘추억 속에 묻혀 사는 삶’을 맞기 전에 좀 더 활발하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해서 젊은이들처럼 ‘큰 꿈’을 꿀 수는 없고, 인생을 함께한 아내를 즐겁게 하고, 나의 경험과 지식을 함께 나누는 일들이다. 최근 3개월간 진행한 몇 가지 워밍업(warming-up) 작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은퇴 축하 여행과 ‘외국살이’ 기획 


은퇴 후, 개인적으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벤트는 아내와 함께한 ‘은퇴 축하 여행’이었다. 이 이벤트를 위해 필자는 현역 시절 별도의 ‘은퇴 축하 통장’을 만들어 돈을 꾸준히 저축했다. 아이들 학원비를 챙길 때마다, 은퇴 축하 통장을 함께 챙겼다. 은퇴 시점까지 꽤 많은 돈을 모아,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비싼 오성급 호텔에서 자는 호사(豪奢)를 누려보았다. 


필자 부부는 결혼 당시 제주도로 3박 4일간의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 호텔가격이 얼마였는지는 생각나지 않고, 한라산을 하루 등반했던 기억은 있다. 이번에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신혼부부들이 많이 방문하는 풀빌라(pool villa) 호텔가격이 1박에 130만~300만 원씩 호가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아내에게 “우리도 한번 풀빌라에 가보자” 했는데, “하루 잘 돈이면 오성(五星) 호텔에서 3일간 쉴 수 있다”고 핀잔받았다. 


은퇴 축하를 위한 이벤트는 ‘함께 고생한 부부’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미국과 유럽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 축하 이벤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평소 별도의 통장을 만들어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글을 읽는 현역 직장인들에게도 미리 ‘은퇴 축하금’을 준비해둘 것을 권유하고 싶다. 동남아 여행을 하고도 축하금이 남아서 우리 부부는 올가을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즐긴다는 ‘한 달 해외 살이’ 기획이다. 


 자원봉사단체(NPO) 등록 


우리 은퇴자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시간과 경험’이다. 이 ‘시간과 경험’을 나누는 게 자원봉사활동이다. 봉사활동은 어떤 것이든 다 좋으나, 지속적인 활동이 되려면 비영리조직(NPO, non-profit organization)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평소 장애인복지와 국제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졌고, 먼저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나라와 전쟁을 벌인 베트남에서 활동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친구들을 중심으로 50여 명의 회원을 모아서, 얼마 전 행정안전부에 ‘일반법인’으로 국제봉사단체를 등록했다. 어느 정도 국제봉사 실적이 쌓이면 ‘사단법인’으로 변경 등록할 계획이다. ‘사단법인’ 조직이 되면 회원들이나 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을 수 있고, 돈을 낸 사람과 기업은 연말정산을 할 때 손비처리(세액공제)를 받는 장점도 있다.

 베트남 국제봉사 단체는 한국인과 결혼해서 국내에 많이 들어와 있는 베트남 여성들과 노동자를 돕고, 베트남 현지에서 교육, 보건의료 지원활동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인들의 네트워크만으로 이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으나, 더 나이 들기 전에 첫 삽을 뜨기로 했다.




‘작가’ 명함 제작과 ‘일상작업’ 복귀 


화이트칼라 은퇴자들이 명함에 쓰는 흔한 직업이 ‘작가’ 또는 ‘연구소장’이다. 필자는 ‘작가’를 선택했다. 앞으로 책을 1~2권 더 쓸 것 같고, 정년퇴직 전에 가졌던 필자의 직업과도 유사성이 있어서 작가 명함을 만들었다. 마침 한 전자회사가 할인판매를 한다는 광고를 보고, 노트북을 60만 원에 한 대 구매했다.


내친김에 새 책 목차를 만들고, 종이쪽지에 써온 메모들을 정리하기 위해 마을도서관을 찾아갔다. 일요일 휴일인데도 40여 석의 열람석이 거의 만석(滿席)이었다. 약간 놀란 것은 방문객의 30%가 중장년 아주머니와 아저씨, 고령자들이었다. 필자가 사는 용인시 양지면(도농복합지역)은 행정구역상 면(面)에 머물러있다가, 최근 인구가 2만 명에 도달하면서 주민들이 읍(邑) 승격 청원운동을 벌이는 ‘시골 동네’다.


휴일 시골 도서관에 중장년과 고령자가 이렇게 많다니! 오래전, 어떤 영화에서 주인공이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폼’을 의미하는 속어)가 없냐!”는 대사를 듣고 웃은 적이 있다. 책 읽는 고령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우리가 힘이 없지, 가오는 젊은이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들과 도서관에서 보낸 하루는 무척 즐거웠다. 원고를 마무리할 때까지 양지 시골도서관은 아마도 내 공부방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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