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부가 은퇴후 사는법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이 부부가 은퇴후 사는법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4-09-24





얼마 전 한 스터디 모임에서 만난 P씨의 이력이 특이했다. 55세에 은행원의 꽃이라는 지점장으로 퇴직한 후에 노인주간보호시설 운영자가 되어 4년째 일하고 있다는 것. 그동안 노인복지시설 운영자를 수없이 많이 만나봤지만 P씨처럼 수십 년 은행원을 하던 사람들이 노인복지 운영자로 전직한 경우는 처음 보았다. 


은행 지점장에서 노인복지시설 운영자로


더 흥미로운 건 같은 은행의 IT 부서에 근무하다가 동시에 퇴직한 남편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노인주간보호시설이 전북 진안군에 위치해 있어서 일주일에 5일은 전북 진안에서 일하고, 나머지 이틀은 서울 강동구의 집에서 생활한다는 점이다. 부부가 함께 ‘5일 근무제’와 ‘5촌 2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원래의 직업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라는 내 질문에 대해 P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은행에 다닐 때 은

퇴하신 선배들께 가끔 식사 대접하는 자리를 가졌었는데, 

그분들이 뭔지 모르게 외로워 보였어요. 

그래서 나는 나중에 좀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이왕이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다행히 남편도 같은 생각이라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전북 진안에서 노인복지사업을 하는 시누이를 만나러 왔다가 지금의 시설을 소개 받았는데, 마침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미리 따두었던 터라 용감하게 뛰어들었다고 한다.


은행 일과 노인복지사업, 기본은 같아


P씨는 은행원 생활에도 만족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소득이 높아서 좋았고, 아이들한테도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과 내는 일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매번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그걸 또 해내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실적에 대한 압박이 대단했다는 것이다. 그가 말했다. 


“물론 지금 하는 일에서도 성과는 내야 하지요. 

하지만 성과의 내용이 많이 달라요. 

행복한 성과라고나 할까, 

어르신들을 섬기는 것, 

어르신과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게 

가장 중요한 성과니까요.”


하지만 은행 일과 노인복지사업의 공통점도 많다고 했다. 둘 다‘사람을 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고객 관리와 상담을 하면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터득했고, 지금 일을 하면서도 은행에서 배운 고객 관리의 노하우를 십분 발휘한다고 했다.


“은행에서 고객 상담할 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고객도 많이 만났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이 일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더라구요. 

어르신은 물론 가족들도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식단이나 프로그램에 관한 사진과 글을 보내드리고 있어요.”




24시간 붙어 지내는 부부의 비결


이야기를 들을수록 P씨 부부의 사이가 궁금했다. 생각해 보라. 은퇴 후에 하루 세끼는커녕 두 끼만 같이 먹어도 갈등이 생기고, 이혼 상담이 갈수록 늘어나는 요즘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함께 일하고 생활하고, 그러면서도 싸우기는커녕 사이가 좋아 보이는 이 부부는 도대체 무슨 비결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P씨의 대답은 이러했다.


“사실 남편과 같은 직장을 다니면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었고,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도 해주며 도움을 주고받던 사이라서 

남편에 대해, 특히 남편의 일하는 스타일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만만했었어요. 

그러니까 이 일도 같이 시작했던거죠. 

그런데.....”


그의 말이 이어졌다.


“첫해에는 갈등이 심했어요. 정말 당황스럽더군요. 

제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센터장이 되고 

남편은 사무장의 역할을 맡아 하고 있었는데, 

일을 같이 해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더니, 

정말 이 일을 같이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수 없었던 

남편의 다른 면모가 보이는 거예요. 

하는 스타일도 그렇게나 다른지 처음 알았어요.”


하지만 이 부부는 합리적이고 지혜롭게 갈등을 해결했다. 각자가 가진 강점을 최대한 살리는 식으로 역할과 업무를 분담한 것이다. 1년쯤 지내보니 남편이 잘하는 건 전산에 관련된 일, 서류 작업, 손으로 하는 일이고, P씨가 잘하는 건 인간관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르신과 가족, 혹은 지역사회 관계 등 사람 대하는 일은 P씨가 맡고, 남편은 전산 작업, 행정 업무, 손재주를 발휘하는 일을 전담하기로 합의하면서 예전의 평화로운 관계를 되찾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P씨에게서는 작지만 한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 특유의 활기와 자부심, 광채가 느껴졌다. 특히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행복감은 나까지 전염시킬 정도였는데, 나는 그의 행복감이 일도 일이지만 삶의 균형감각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주변에서는‘5촌 2도’의 생활이 힘들지 않느냐고 의아해 하지만, 이 부부는 금요일 밤에 서울에 오면 가족과 시간 보내고, 지인들 만나고, 교회 가고, 취미활동(부부 모두 음악에 취미가 있어서 서울 집에 작은 음악실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하며 지낸다면서 서울에서 보내는 이틀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주기 때문에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부가 사는 법은 여러 모로 인상적이다. 은퇴를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창의성과 실천력뿐만 아니라 균형감 있고 인간적인 생활 리듬까지, 이들이 내뿜는 건강하고 행복한 에너지 덕분에 한여름의 무더위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뉴스레터 구독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주 1회 노후준비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 이메일
  •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보기
  • 광고성 정보 수신

    약관보기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정보변경이 가능합니다.

  • 신규 이메일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구독취소가 가능합니다.

  •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