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넘어 뒤늦게 깨달은 외로움의 의미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오십 넘어 뒤늦게 깨달은 외로움의 의미

글 : 버들치 / 작가 2024-07-08


철이 들기 전부터 외로웠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것이 외로웠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못 배운 것이 외로웠던 것도 아니다. 또 부모님들이 화목하지 않은 것이 외로웠던 것도 아니다. 다만 ***를 때리는 아버지가 미웠고 *을 나간 어머니도 야속했다. 그래서 외로웠다.


철이 들고도 외로웠다.


짧은 배움을 뒤로하고 군대 가기 전까지 1년 정도 공장생활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 어둠을 뚫고 집을 내려가서 역시 어둠 속에 집에 올라와 고단한 몸을 누였다. 어두운 새벽에 걸었던 그 길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연옥으로 향하는 길과 같았다. 영원히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과 막막함에 나는 두렵고 외로웠다. 


나보다 더 외롭고 힘든 사람을 마주하다


철들기 전 후로 세상이 왜 이리 불공평한지 의문을 가졌지만 풀리지 않았다. 책을 읽어봐도, 철학자들의 말을 들어봐도, 또 내가 골똘히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자연 현상은 탐구와 규명이 가능한 부분이지만 인간 세상의 이치는 그렇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점차 체념으로 바뀔 무렵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두 명의 동생이 눈에 들어왔다. 결손 가정 출신으로 나 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의젓하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나보다 불평할 거리가 많은데도 불평하지 않고 살고 있는 두 동생들의 모습에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그들 앞에서 불공평을 따지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고 지적 허영이었다. 만약 내가 외롭지 않았다면 나보다 더 외롭고 힘든 사람들을 못 보았을 것이다.


운 좋게 들어간 직장 생활도 외로웠다.


대졸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나는 고립된 섬이었다. 직장생활 초반이었을 것이다. 내게 무엇이 못마땅한지 직속상관이 다 들으라며 한 마디 했다.


"너는 잘 해봐야 과장까지밖에 올라갈 수 없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 주먹에서 전달된 자극이 날카롭게 내 머리에 꽂혔다. 회사에서 나는 적자가 아닌 서자의 신분이었다. '호부 호형'을 하지 못하는 홍길동의 심정이었으니 어찌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왜 책을 읽고 돈에 대해 공부했나


취업 후 짧은 배움을 커버하고자 무작정 책을 읽었다. 책이라도 읽어 남들보다 짧은 배움을 가리고 싶었고 또 진급에 밀리지 않기 위해 자기계발에도 몰두했다. 남보다 더 오래 회사에 다니기 위해 자발적 야근도 많이 했다. 그리고 남보다 먼저 출근했다. 내가 항상 제일 먼저 출근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나와 일했다. 나름 성과도 있었고 진급도 그런대로 했다. 인정도 받았다. 또 회사에 제일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외롭지 않았다면 결코 남보다 먼저 출근하지 않았을 것이고 남이 일하는 만큼만 일했을 것이다.


결혼하고도 외로웠다.


친구와 후배에게 빚보증을 서 집을 팔아 대신 갚아주고 같이 살던 부모님을 형님댁에 떠맡겼다. 그리고 우리 네 식구는 좁고 열악한 셋방살이를 전전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후회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실수를 만회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를 막막함에 살을 에는 듯 고통스러웠고 추사 김정희의 제주도 유배 생활 못지않게 외로웠다.


돈에 쪼들리고부터 돈에 대해 공부했다. 세상 모든 불행은 조금씩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가난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부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 장군의 말이 소귀에 경 읽기로 들렸다. 돈이 무엇이고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고 공부하고 탐구했다.


그러나 약간의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고 경제가 돌아가는 이치를 터득하기란 백일 지난 아이가 걷기를 바라는 것과 같았다. 실패를 하고 잠시 중단을 하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관심을 끊지 않았다. 두렵게 그리고 신중하게 실행해보고 결과를 지켜보고 또다시 떨리는 마음으로 실행해보고... 만약 내가 외롭지 않았다면 세상을 원망만 하고 있었지 결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에서 당한 억울함, 나는 낙오자인가 


본사에서 지점으로 나와 한창 잘 나가던 때에 ****때문에 3개월 간 감독원 감사를 받았다. 전화녹음을 다 뒤지고 또 내 금융계좌도 탈탈 털었다.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다. 내가 그 사실을 알고 방조하거나 협조한 사실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감독원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증거를 인멸하고 용의주도하게 정황과 알리바이를 맞추었다고 믿었다. 이 일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면직에서부터 감봉에 이르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지점장도 나를 변호해 주지 않고 입을 굳게 닫았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자신의 무죄만을 강변할뿐. 


정직 1개월을 맞고 집에서 쉬었다. 다시 지점으로 출근했지만 영업력은 이미 고갈된 상태였다. 절해 고도에 유폐된 심정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촉망받던 인재 중 한 명이었으나 이젠 임원들의 관심 범위에서 멀어졌음을 직감했다. 억울함보다도 잠재적 인재풀에서 배제되었음이 더 외로웠다.


1~2년 동안 여러 산과 들로 쏘다녔다. 사람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인생이 뭐고, 어떻게 살아야되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유명한 철학자의 책들과 유명인사의 인생론 등을 읽어보았지만 어디 하나 위안을 얻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읽을면 읽을수록 파면 팔 수록 인생은 더욱 헷갈리고 오리무중이었다.


철학자들과 유명인사들은 인생을 말로써 멋지게 설명할 수 있지만 살아보면 다 말장난임을 알았다. 그 분들은 해설가이지 선수가 아니다. 조언을 해 줄 수 있지만 직접 인생을 뛰는 선수는 바로 나인 까닭에 정답이 있을 수 없었다. 인생에서 정답을 찾겠다는 건 주식시장에서 돈 버는 비법을 찾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건 없다.


회사에서도 인생에서도 나는 낙오자였다. 그래서 외로웠다.




세월이 흘러 깨달은 외로움의 의미 


외롭다는 생각은 중심축에서 또는 관심의 범위에서 떨어져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거리가 떨어져 있든 아니면 생각이 남들하고 떨어져 있든, 사람들은 다수에서 소외되는 것을 싫어한다. 외로움을 몹쓸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다수에 속하고 싶은 욕구는 욕구이기 이전에 본능에 가깝다. 예로부터 다수에 속해야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외로움을 싫어한다.


하지만 나중에 깨달았다. 역설적이게도 그 외로움들이 나를 성장시켰음을. 만약 내가 외롭지 않았다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했을 것이다. 물론 자신에 대한 성찰도.


외로워야 비로소 생각을 하고, 방도를 찾고, 활로를 모색한다. 외로움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극복해야 한다. 뜨겁게 부둥켜안고 스스로 위로하고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롭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하소연으로 한풀이를 하고 아니면 위안거리를 찾아 헤매는 삶을 산다. 그렇게 미지근한 삶을 살다 백기를 들고 세상에 항복해 버린다.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단순히 혼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결정과 선택을 스스로 하기 때문에 외롭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겠다는 사람이 외로운 법이다.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는 자세 때문에 외롭다. 쉽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외롭다.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외롭다.


그렇다. 외롭다는 건 남들과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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