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왕 빌 그로스, 그는 왜 박수 칠 때 떠나지 못했나?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채권왕 빌 그로스, 그는 왜 박수 칠 때 떠나지 못했나?

글 : 박덕건 / THE SAGE INVESTOR 편집장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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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투자자는 많다. 대부분 주식 투자자다. 그런데 채권을 전문으로 하면서도 전설적 투자자의 반열에 오른 거의 유일한 인물이 빌 그로스다. 지금은 명성이 많이 퇴색했지만 그가 대표하던 자산운용사 핌코(Pimco)는 한때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자산운용사였다. 


빌 그로스 이야기라고 했을 때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채권 투자로 어떻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지? 둘째는 그렇게 잘 나가던 회사를 왜 갑자기 관두었지?


우선 첫째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가 채권왕이라고 해서 단순한 채권 거래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보면 그가 좋은 수익률을 올린 것은 오히려 채권을 기반으로 한 선물·옵션이나 파생상품 거래 때문이었다. 요컨대 따박따박 이자 따먹기보다는 다이나믹한 변동성 게임이 그의 주특기였고, 몇 번의 굵직한 베팅에서 그는 대승을 거뒀다.




물론 처음 출발은 채권 거래였다. 본래 빌 그로스는 ‘퍼시픽 뮤추얼’이라는 보험회사에 들어갔는데 채권 담당부서에 배치되었다. 전환사채에 관한 졸업논문을 썼다는 게 채용에서 점수를 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는 일은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때가 되면 보유 채권에 붙어 있는 쿠폰을 오려내어 이자를 달라고 우편으로 보내는 일이 주업무였다. 장래 채권왕이 될 운명이었던 이 남자는 곧 흥미를 잃고 주식 담당 부서로 옮기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곧 전환점이 찾아왔다. 하워드 레이코프라는 사람이 그의 상관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그 시초가 됐다. 하워드 레이코프는 채권을 사고팔면서 포트폴리오를 개선하면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그는 그로스에게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팔았다. 그로스와 그의 상관은 마침내 그 아이디어를 실행해 보기로 했다. 


그들은 퍼시픽 뮤추얼 산하에 퍼시픽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컴퍼니(PacificInvestment Management Company)를 만들었고, 이게 그 뒤에 우리가 아는 핌코가 되었다. 핌코의 성공에는 운도 따랐다. 70년대는 인플레 때문에 채권을 그냥 들고 있기만 해서는 매년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때였기 때문이다. 핌코는 첫해에는 손실을 냈지만 70년대를 무사히 견뎌냈고, 80년대 초에는 고금리가 끝나는 시점을 정확히 예측했다. 


이 책은 아쉽게도 핌코가 초창기에 했던 수많은 베팅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는다. 이 책에 실려 있는 핌코의 투자 사례 대부분은 2008년 금융위기 무렵부터 그 이후가 대부분이다. 


빌 그로스가 채권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2002년 포춘의 기사 때문이다. 대체로 채권 거래가 오늘날과 같은 역동적인 시장이 된 것은 그의 공으로 보는 게 중론이다. 


왕의 몰락


어쨌든 그렇게 잘 나가던 그는 2014년 돌연 핌코를 떠났다. 당시 양적완화가 실시되면서 인플레가 올 거라는 쪽에 핌코가 베팅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는 이야기가 있던 터라 나는 그저 한 번 삐끗하면 바로 잘라버리는 미국의 기업문화가 무섭다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실상 이 사태에는 그 이상의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로스가 왜 갑자기 회사를 떠났는가를 밝히는 게 지은이의 주된 관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은이는 그로스의 마지막 핌코 시절 몇 년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아마 그것이 미국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의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은이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그로스 퇴사는 총기를 잃은, 연로한 국왕의 끝없는 변덕과 막무가내에 진절머리가 난 부하들이 일으킨 쿠데타의 결과였다. 그로스는 본래부터 사교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랬던 인물이 나이를 먹어가자 그 도가 점점 더 심해졌다. 후계자라고 영입한 모하메드 엘-에리언과 마찰을 빚다가 그를 쫓아낸 것도 그저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늙은이의 노망처럼 보일 뿐이다. 책에는 그로스에 관한 온갖 뒷담화가 가득한데 이를 보면 환갑을 넘긴 후 그의 주변에는 온통 적만 있을 뿐 친구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심지어 그는 퇴직을 전후해 두 번째 아내와도 이혼했고, 재산 분할을 놓고 무자비한 법정 다툼을 벌였다.


이 책에서 무슨 투자의 비결 같은 것을 찾으려고 했다가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런 쪽으로는 별로 영양가 있는 이야기가 없다. 오히려 이 책은 마치 “리어왕” 같은 인생 비극처럼 읽힌다. 리어왕이나 채권왕이나 본래 위세가 당당하던 왕들일수록 뒤가 좋지 않은 그런 경우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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