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주차장 대여 서비스서 고령자 해법 찾는다
글 : 김웅철 / 지방자치TV 대표이사,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2024-02-20
“생각지도 못했던 용돈이 생기는 것도 좋지만, 응원하러 온 한신(阪神) 타이거스의 팬들과 만나 얘기하는 일이 더 즐겁습니다.”
일본 효고현(兵庫県) 니시노미야시(西宮市)에 살고 있는 올해 87세의 구로이와(黒岩 優·가명)씨. 구로이와씨의 집은 일본 고교야구의 꿈의 구장이자 일본 유명 프로야구단 한신 타이거즈의 홈구장인 ‘고시엔(甲子園) 야구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6년 전 뇌경색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구로이와씨는 발병 직후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했다. 일본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건수는 1998년 60만 명으로 최다였다가 이후 점차 감소해 2022년 현재 연간 44만8476명가량이다. 당시 신문에는 고령의 운전자들이 일으킨 교통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가족들의 강한 권유도 있어 면허 반납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애차(愛車)와도 결별했다. 이후 차 없는 구로이와씨의 이동 수단은 전동자전거로 대체되었고, 비록 쇼핑 이동 시간이 예전보다 늘었지만 사고 위험만큼은 크게 줄어 본인도 가족도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단독주택에 살던 그는 집 현관 앞 빈 주차 공간에 항상 마음이 쓰였다. 애차가 자리 잡고 있던 주차장이 텅 비어 있는 게 눈에 걸렸다. 그러던 중 우연히 주차장 공유 서비스를 알게 됐다. ‘아킷파(akippa)’라는 주차장 공유 서비스는 앱을 통해 주차장 검색과 예약, 결제까지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아킷파 서비스의 특징은 주차장 물건을 자체 보유한 것이 아니라, 사용되지 않고 있는 개인들의 빈 주차장을 등록받아 필요로 하는 고객에게 연결해 준다는 점이다. 구로이와씨도 아킷파에 주차장 대여 등록을 하고, 이후 고객들은 아킷파를 통해 구로이와씨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다.
빈 주차장 통해 얻는 금전적·관계적 즐거움
구로이와씨의 집은 고시엔구장과 가까운 곳에 있다 보니, 프로야구 경기가 있는 날은 하루 1100엔(약 1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고시엔대회가 있는 시기 등 수입이 많을 때는 월 4만 엔까지 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구로이와씨의 즐거움은 용돈보다는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그의 주차장을 이용하는 고객은 한신 타이거즈 팬이 많다. 구로이와씨도 한신 타이거즈 팬인데, 이용자들과 야구 응원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고 한다.
창업 10년째인 아킷파의 이용 회원은 현재 340만 명, 확보한 개인들의 주차장 수도 4만 거점을 돌파했다. 이용 편의를 위해 365일 24시간 전화로 고객 응대 체제를 갖추고있다. 수익 중 사용료의 50% 정도를 주차장 주인에게 배분한다. 빈 주차장 대여자 중에는 운전면허를 반납한 고령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아킷파 측은 전한다.
지자체 범죄율 감소에도 기여
빈 주차장의 공유 활용은 부수입을 얻는 고령자뿐만 아니라 빈집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도 매력적인 서비스다.
일본 총무성의 주택토지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빈집은 848만8600호(2018년 기준)로 전체 주택의 13.6%에 달한다. 장기 방치된 주택 등 ‘악성 빈집’도 전국에 350만 호나된다. 지자체는 빈집이 단순히 유휴 부동산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빈집이 범죄 현장 등으로 이용되는 등 방범 문제가 더 골치 아픈 문제다. 지자체가 빈 주차장 비즈니스를 빈집 대책의 하나로 적극 활용하고 나선 이유다. 빈집 전체가 아니라도 일부 주차장 공간만이라도 외부 주차장으로 활용돼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면 방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지자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오사카시 이쿠노(生野)구에는 6000호나 되는 빈집이 있는데, 치안 대책의 하나로 이쿠노 구청 주도로 빈 주차장 공유 서비스 등록을 독려하고 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역의 빈집 주인들을 모아 주차장 공유 서비스 현장 투어를 실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김웅철 지방자치TV 대표이사,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同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를 받고 상명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 대학 연구원, 매일경제신문 도쿄특파원과 국제부장, 매경비즈 대표, 매일경제TV 국장, 경제tv EBC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법》의 저자로, ‘노인대국 일본’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과 책을 쓰면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초고령사회의 모습과 해법에 대해 연구했다. 《복잡계 경제학》, 《대공황 2.0》, 《2014년 일본파산》, 《똑똑하게 화내는 기술》 《아직도 상사인줄 아는 남편, 그런 꼴 못보는 아내》등 다수의 일본 서적을 번역했고, 《연금밖에 없다던 김부장은 어떻게 노후 걱정이 없어졌을까》, 《일본어 회화 무작정 따라하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