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랑 햄버거 먹으러 같이 가요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할머니랑 햄버거 먹으러 같이 가요

글 : 김웅철 / 지방자치TV 대표이사,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2024-02-14

일본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수백만의 관객을 사로잡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대 흥행은 애초 제작진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영화 제작사인 도에이(東映) 측은 주 관객층이 만화 슬램덩크의 팬인 30~40대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10대에서 5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에서 영화를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녀의 차이도 거의 없었습니다.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은 관객층의 확대가 영화 슬램덩크가 대히트한 이유라고제작사 측은 분석합니다.


얼마 전 일본의 소비 트렌드 리서치회사 ‘하쿠호도(博報堂) 생활종합연구소(하쿠호도 총연)’가 통신 가라오케 회사 ‘조이사운드(JOYSOUND)’와 함께 지난2012년부터 2020년까지 11년간 노래방에서 불린 애창곡 추이를 분석해 봤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2012년만 해도 10대에서 60대까지 전 연령층에서 불린 애창곡의 수는 4곡에불과했는데 2016년 이후 점점 많아져 2022년에는 20곡이나 됐다고 합니다.전 연령층에서 사랑받은 노래가 10년간 5배나 늘어난 것입니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시니어의 애창곡 장르가 젊은 층과 비슷한 패턴으로 변하고 있고,동시에 젊은 층도 과거의 인기곡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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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연령에 따른 가치관이나 기호의 차이가 점점 축소되는, 소멸해 가는현상을 일본에서는 ‘소령화(消齡化)’라는 부릅니다. ‘하쿠호도 총연’이 ‘고령화’(高齡化)에 빗대어 만든 조어입니다.


하쿠호도 총연은 사람들의 의식주 등 일상의 모습을 장기적으로 추적, 관찰하는 ‘생활 정점’(生活定點) 조사라는 것을 하고 있는데, 최근 내놓은 연구보고서에서 “지난 30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가치관이나 기호의 연령별차이가 갈수록 작아지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쿠호도측은 “경제적 양극화라는 양적인 면에서의 차이가 엄연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의식과 의욕’이라는 질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그 차이가 갈수록 줄어들고있다”며 “그 차이의 소멸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닌 앞으로도 계속될 커다란조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새로운 사회 현상을 ‘소령화’로 명명했습니다.


하쿠호도 총연은 “소령화 현상으로 인해 지금까지 마케팅의 전제로 여겨졌던생활자의 데모그래픽(인구적) 속성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비즈니스 영역뿐 아니라 개인의 삶의 방식과 인간관계, 나아가 일본 사회의 구조에도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하쿠호도 총연은 어떤 근거로 ‘소령화 사회’의 등장을 예견하는 걸까요.


하쿠호도는 1992년부터 2년에 한 번씩 생활 행동, 소비 태도, 가치관 등 다각적인 질문으로부터 사람들(20~69세)의 의식이나 욕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관찰하는 ‘생활 정점’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의 조사에서 비교 가능한 366개 항목을 분석해 본 결과,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벌어지는 항목은 7개인데 반해 차이가 줄어드는 항목은 70개로 10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에 저항감을 느낀다’는 질문 항목에92년 조사에서는 60대의 85.2%가 ‘저항을 느낀다’라고 했고, 20대에서도50.3%가 ‘그렇다’고 했는데, 2022년 조사에서는 60대의 저항감은 26.6%로 줄었고, 20대는 14.7%만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여성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에대한 인식에서 60대나 20대나 큰 차이가 나지 않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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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를 좋아한다’는 응답에서도 소령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2002년 60대는 19.2%, 20대는 59.8%로 차이가 컸지만 2022년 조사에서는 60대의 햄버거선호도는 50%로 상승했고, 20대(69%)와의 차이가 크게 감소했습니다.(2002년부터 조사 시작)


‘미래의 대비하기보다 지금을 즐기고 싶다’는 항목에 대해 30년 전에는20~30대의 절반 정도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50~60대는 30%를 밑돌았습니다.하지만 지금은 20~60대가 40% 전후로 수렴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소령화 현상은 왜 일어날까. 하쿠호도는 능력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기호와관심의 변화, 이 3가지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분석합니다.


휴대폰 등 생활의 인프라가 좋아지고, 장수화로 시니어들이 체력과 능력 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고(능력의 변화), 가족관, 결혼관, 일에 관한 생각등 가치관의 변화로 ‘~를 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이 줄었으며(가치관의변화), 두 가지 변화의 영향으로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지가 많아지고 나이에얽매이지 않고 ‘~를 하고 싶다’가 가능해지면서 세대 간에 ‘기호의 교집합’이늘어난 것이 원인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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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호도는 소령화의 실제 예로 20~69세 남녀가 한 의류점 시착실에서 찍은사진을 보여주는 데요, 착용한 복장만으로는 소비자의 나이를 분간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현지 언론들은 이런 소령화 현상과 관련해 20~60대 사이에서는 가치관과 소비지향에 대한 차이가 사라지고 일본 사회는 세대를 초월하는 커다란 덩어리가 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또 나이와 성별로 구분되던 기존 시장의 정석이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요즘 ‘연령’을 대신하는 새로운 척도로서 가치관과 기호의 동일 집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연령과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사회의 등장이, 저출산 고령화라는 과제를 안고있는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있습니다. 세대간 ‘차이’에 집중하지 말고 세대를 뛰어넘는 ‘같음’에 주목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은 물론이고 저출산 고령화의 새로운 해법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령화는 저출산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주목해 볼 만한 현상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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