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관점에서 시골을 바라보면 프로불편러가 된다
글 : 김용전 / 작가 2024-02-05
문화충격의 4단계
캐나다의 인류학자 오베르크(K. Oberg)는 한 곳(나라나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간 이주민이 두 곳의 이질적 문화로 인해 겪는 갈등을 문화충격 (Culture Shock)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는데 네 단계를 거쳐 충격을 소화해 나간다고 설명했다. 상술하면, 새로운 문화를 낭만적으로 생각하며 좋아하는 밀월의 1단계, 새로운 문화를 비판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위기 또는 불안의 2 단계,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지고 안정되는 회복의 3단계, 새로운 문화를 인정 하고 존중하며 자신도 그 일원이 되는 적응의 4단계이다. 귀촌을 꿈꾸거나 귀 촌한 사람들도 대부분 이 4단계를 밟아 나가는데, 처음 귀촌하면 이거저거 다 빼고 깨끗하고 조용한 환경과 사람 냄새 나는 시골살이에 ‘바로 이 맛이야’를 외치며 낭만에 젖어 든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략 1~2년이 지나 면 그 아름답던 자연 풍광도 시들해지면서 점점 사람 냄새 난다던 시골 문화 에 대해서 비판적 자세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오베르크가 지적한 이런 문화충격 2단계, 스트레스받고 불편한 시간을 줄이려면 특이한 시골 문화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오늘은 한 가지만 먼저 이야기하겠다.
'피드백이 없다'
귀촌 생활 20여 년이 넘었지만, 필자가 아직도 완벽히 소화(?)하지 못한 시골 문화 중에 가장 큰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피드백이 없다’는 것이다. 즉 기획은 존재하나 그 일이 최초 계획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지 또는 기대한 수익은 나고 있는지 등 과정과 결과에 관한 확인과 평가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옆 마을에 관의 지원을 받아 비싼 돈 들여 지은 황토 사우나가 있는데 지을 때는 요란했지만 지금은 몇 년째 무용지물로 방치되어 있다. 뭔가 시공이 잘못되어서 찜질방 기능이 원활치 않다 보니 주민들이 아예 외면해버리는 건데, 문제는 이에 대해서 그 누구도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또 다른 마을에는 십여 년 전 개구리 양식을 한다고 청년들을 동원해서 어마어마하게 큰 하우스를 짓고 산에 펜스까지 다쳤으나 그때뿐 지금 개구리는 온데간데 없고 하우스는 땅 주인이 다른 용도로 사용하며 요란하던 설명회와 고소득에 대한 기대는 감감무소식이고 이 역시 누가 기획했으며 무엇이 잘못되어서 실패했는지에 대한 피드백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귀촌 초기 vs 현재
귀촌 초기 나는 이런 일들이 이해되지 않아서 그 마을에 갈 때마다 ‘많은 돈 들여 사업을 추진해 놓고 이게 어떻게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하느냐?’고 여러 번 물어봤지만, 마을 주민들은 남녀노소를 불 문하고 ‘아 그런 걸 왜 물어? 당신 마을이나 잘 혀!’하고는 만사태평이다. 만약 일반 기업에서 이런 식으로 일한다면 그 책임자는 벌써 쫓겨났을 것이다. 기업이라는 존재 차체가 적은 비용으로 고효율을 내기 위해서 얼마나 절치부심하는가? 어떤 신사업이든 필사적으로 손익분기를 넘겨야 하는 절절한 경험을 한 사람에게는 이런 식으로 일하는 건 그야말로 ‘망하는 지름길’이다. 물론 세월이 흘러 적응 단계에 들어선 나도 지금은 ‘시골 공사가 다 그렇지 뭐’하고 태평하게 여긴다. 아니 태평이 아니라 어떤 사업을 추진할 때 아예 에누리를 둔다. 예전에 농촌 관광이 한참 유행했는데, 그때 난리를 치면서 숙소 만들고 트랙터를 구해서 관람차 만들고 했으나 지금, 숙소는 비어 있고 트랙터는 녹이 슨 채로 운동장에 방치되어 있지만, 이제는 나도 그러려니 한다.
마을 사업, 기업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왜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까? 필자가 보기에는 자금과 주인 의식의 문제다. 즉 피 같은 내 돈 들여서 내 생계가 걸린 문제로 사업을 한다면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관의 지원금으로 실패해도 책임질 위험이 없는 마을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니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 여기에서 독자들이 꼭 명심해야 할 중요한 점은 이런 시골 문화의 비합리성을 지적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걸 알고, 혹시나 귀촌해 들어간 마을에서 이런 상황을 접했을 때 도시적으로 또는 기업적으로 생각해서 겉으로 비판에 열을 올리거나 속으로 불편한 마음을 지니지 말라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시골 마을은 기업이 아니다. 물론 결과가 확실하게 나오면 금상첨화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왜냐면 각자의 생업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 때문에 실패했는지가 불분명하며 설령 원인과 책임을 따져본들 누구를 어디로 좌천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론은, 성과가 없어도 뭔가 해보려고 시도했던 그 자체에 의미를 두면 된다. 어떤 사업을 한다고 주민이 모여서 회의하고 일하며 같이 웃고 울며 밥 먹고 술 먹고 화합을 도모했다면 일단 그걸로 족한 것이고 그래서 시골 사업이 어설퍼도 도시보다 훨씬 평화로운 것이다.
김용전 작가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이후 동 대학 경영대 최고 경영자 과정을 밟았으며, 보성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주)재능교육 창업 멤버로 참여, 17년간 일했다. 조선일보 및 서울교육 편집위원으로 일한 경력도 있다. 오랜 직장 경험을 바탕으로 <토사구팽 당하라>(2006), <회사에서 당신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법>(2007),<남자는 남자를 모른다>(2008), <직장 신공>(2012),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2014)등 다양한 저서를 통해 직장생활의 노하우를 담아왔으며, KBS의 '아침마당', ‘스펀지’를 비롯해 다수의 방송에서 강사로 출연했다. 현재는 헤럴드 경제 신문에 ‘직장신공’이라는 고정칼럼을 쓰고 있고, KBS 1라디오의 '성공예감 김방희'에서 '성공학 개론'을 맡아 고정 출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