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2천평에 농사 짓겠다는 남편 좀 말려주세요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농지 2천평에 농사 짓겠다는 남편 좀 말려주세요

글 : 김용전 / 작가 2023-12-28

몇 년 전 KBS 1TV의 ‘아침마당 목요특강’에 강사로 나간 적이 있다. 강의 제목은 ‘인생 2막을 다시 쓴다’였는데 회사 임원에서 갑자기 퇴출당하고 귀농 한 뒤에 작가가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설파했다. 당시 강의 끝 에 질문을 받았는데 그 내용이 ‘남편이 30년 다닌 직장을 정년 퇴임하고 시골 로 가려 하는데 굳이 2천 평 정도의 농지를 매입해서 농사를 짓겠다고 한다. 나는 힘들다고 반대인데 남편이 극구 우겨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는 것이었다. 질문자는 나이 50 후반인 부인이었는데, 나는 망설 이지 않고 즉각 ‘노’라고 답했다. 그러자 질문한 당사자는 반색했지만, 곁에 앉 은 남편은 이해가 안 된다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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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비슷한 고민 – 농사를 하나 마나? 한다면 무슨 농사를 짓나, 농사로 얼마를 벌 수 있나 - 등을 물어보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나는 왜 농사를 지 으려 하는지를 먼저 분명히 하라고 조언한다. 이 ‘왜’는 간단하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생계형 농사이며 다른 하나는 체험형 농사인데, 전자는 농사 를 통해서 그야말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고 후자는 돈 상관없이 ‘나도 한 번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라는 것이다. 이 ‘왜‘가 왜 중요한가 하니 ’왜‘를 분명히 해야 농사짓는 문제에 대한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KBS 강의 때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질문자의 남편은 아주 좋은 직장에 다녔 고 게다가 무려 30년을 근속한 뒤 60에 정년 퇴임하는 거라고 했으니, 모아 놓은 재산은 제쳐놓고 연금만 따져도 소위 ‘먹고 살 걱정’은 없을 것으로 보였 다. 결론은 생계형 농사가 아니라 체험형 농사를 원하는 건데 그렇다면 굳이 2천 평씩이나 되는 큰 규모로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다. ‘까짓거 2천 평쯤이 야’라고 쉽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나 그건 그야말로 무지하니까 용감한 것이며 체험형 농사를 2백 평 넘어 짓는 건 사서 고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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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당시 단호하게 ‘노’라고 답한 결정적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남편 이 아니라 아내가 질문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질문해서 ‘노’라고 했다니 언뜻 수긍이 어렵겠지만, 설명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요즘은 부부 나이 50이 넘어 가면 대부분 아내가 주도권을 장악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그래도 남편이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 앞 에서, 그것도 공개 방송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아내가 나서서 던졌다는 건 그 부부의 주도권이 완전히 아내에게 넘어가 있다는 뜻이다. 그게 농사와 무슨 상관이냐고? 실제로 농사를 지어보면 크게 상관이 있다. 그 이유는 직장을 다 닐 때와 농사를 지을 때 부부의 생활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인데, 전자는 가정과 직장이 엄격히 분리되어 있지만, 후자는 정반대로 두 가지가 공존한다. 즉 시 골로 가면 부부가 24시간 같이 붙어 있으면서 같이 일하게 된다. 이게 낭만적 으로 생각하면 알콩달콩 지상 최대의 행복 같지만, 막상 농사를 지어보면 날마 다 의견 차이가 심해 전쟁을 치르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차피 농사 는 둘 다 초보이기 때문이며 남녀의 속성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즉 남성은 대 부분 큰소리부터 치는데 여성은 잔걱정부터 한다. 예를 들면, 아내가 ‘오늘 파 종하지 않으면 내일은 비가 와서 파종 못 하고 농사 망칠 것’이라고 할 때 남 편은 ‘비는 무슨 비, 그런 걱정은 허덜덜 말어’ 이런 식이다. 그런데 다음날 비 가 안 왔다고 해서 남편이 아내를 달리 추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에 하나 비가 오면 어떻게 될까? 아내는 ‘그거 봐라. 내가 뭐라고 했냐?’부터 시작해서 심하면 ‘당신 하는 일이 맨날 그렇지. 왜 내 말을 안 들어?’까지 나간다. 직장 인일 때는 남편이 하는 일을 아내가 관여하지 않지만, 둘이 같이 농사지을 때 는 감 놔라 배 놔라, 일일이 관여를 하며 아내가 주도권을 전면 장악하고 있을 경우는 관여를 넘어 거의 감독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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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노동해서 몸이 힘들면 화도 더 잘 나기 때문에, 때로는 그 다툼이 칼로 물 베기가 아니라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만큼이나 격렬할 때도 많다. 그래서 그 질문을 받는 순간 그 부부의 주도권 에 대한 현실이 한눈에 파악되면서 만약 2천 평 농사를 짓는다면 나중은 몰라 도 귀농 초기 부부의 삶이 어떨지 눈에 선해서 단호하게 ‘노’라고 한 것이다. 물론, 배가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선장은 분명 남편이어서 둘이 다툴 일이 별로 없다면 2천 평 아니라 2만 평이라도 농사지으면 된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부부가 24시간 같이 붙어 생활하는 건 언뜻 보기에 아름답지만, 속으로는 의외의 구속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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