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은퇴 후?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3-12-11

external_image


다음소프트의 송길영 부사장은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해본 결과에 의하면 요즘 6, 70대 사람 들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난 안 늙었어. 친구들만 늙었지.” 


맞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친구들이 늙어가는 것이 눈에 보이고 마음이 짠해지고 안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늙은 것은 보지 못하고 늙어가는 친구들을 걱정하는 것이 웃기지만 말이다. 


실상을 말하자면 막연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이 젊다. 가끔 정체성이 혼란스러울 정도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하고 싶은 것도, 즐기고 싶은 것도 많으며 공감 능력도 점점 더 좋아지고 아직 꿈도 남아 있는 그런 사람인데, 겉모습은 영 다르 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주름을 펴는 성형 수술을 하고 나타나서 철학자가 된 듯한 말투로 이렇게 말하던 친구의 마 음도 이해된다.


 “마음은 이렇게 젊은데 얼굴은 그렇지 않으니까 너무 혼란스러운 거야. 그래서 얼굴과 마음 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서…….” 


문제는 이 젊은 마음을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송길영 부사장의 말마따나 ‘사랑하 고 사랑받는 욕망의 주체’로 인정받아 마땅한 나의 욕망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드럼 같은 악기를 배우거나 성악을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 이 부쩍 늘어났다. 친구 하나는 보컬 레슨을 받으면서 내친김에 이탈리아어까지 배우기 시작 했다. 예순 살이 되자마자 오래전부터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병든 아내를 간병하고 사별하는 힘든 과정을 잘 견뎌낸 지인도 있다(그림을 가르치던 여성과 얼마 전에 결혼하면서 친구들의 열띤 축하를 받았다). 


external_image


그동안 돈 벌고 가족을 부양하고 집안일을 하고 자식 키우는 것을 전공으로 삼았던 친구들 이나 지인들이 나 몰래 한꺼번에 ‘아티스트’로 변모하기로 약속이라도 했나 싶었다. 이참에 나 도 속이라도 시원하게 타악기라도 배워볼까 하고 잠깐 망설였지만 그나마 주제 파악을 하고 얼른 포기했다. 


그 대신 나는 JTBC에서 방영한 <팬텀싱어> 에 출연했던 뮤지컬 배우, 성악가 등으로 구성된 팀의 팬카페에 가입했다. 누군가의 팬이 되고 보니 요즘 주변의 중장년들이 왜 그렇게 트로트 가수들에게 푹 빠져 지내는지, 몸과 마음이 아프고 슬픈 사람들에게 음악이 주는 위로와 치유 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두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비록 대상은 다를지언정 누군가를 좋 아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알 것 같고 모종의 동료애마저 느끼는 바다. 


덕분에 그동안 사느라 바빠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음악에 대한 열정도 되살아나는 느 낌이다.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 바람직한 일이다. 팬카페라는 공간도 신기했다.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있는 것도 그렇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글과 활동을 보는 재미도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다. 가끔 아슬 아슬한 욕망을 내뿜다가도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태도도 인상적이고, 자신들의 아픈 이야기 를 솔직하게 내비치면서 서로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모습에 울컥한 적도 여러 번이다. 


누군가 요즘 사는 것이 재미없거나 지루하거나 매사에 의욕이 없다고 호소한다면 젊은 아티 스트를 응원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뭔가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고, 삶이 확장되는 느낌 이다. 음악 하는 사람들의 ‘그들만이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고, 그들의 열정과 노 력하는 자세를 보면서 나도 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불 태우기도 한다.


누군가의 팬이 되는 건 은퇴자에게 더 어울린다. 우선 충분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지 않은가. 현역 때라면 종종거리며 살기 바빠서 설령 누군가에게 관심이 있다 해도 연주나 인터 뷰 동영상을 찾아보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가끔 공연장에 간 적은 있지만 충분히 마음을 쏟으면서 즐기지 못했고 문화적으로 암흑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빡빡한 삶을 살았다. 사실 은 암흑기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충분하다. 뭐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 


젊은 마음을 팬심으로 표현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위험 부담도 없고 안전하지 않은가. 전 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가수를 보며 ‘꺅’ 소리를 지르거나 행복한 얼굴에 홍조 띤 모습을 보면 ‘주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저건 아무래도…… 뭔가 안 어울리는데?’라며 입을 삐죽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external_image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할 때 또는 뭔가에 몰입할 때 빛이 나는 법인데, 그 대상이 나에게 기쁨과 활기를 주면서도 복잡하게 얽힐 일 없 는 아티스트이니 이 얼마나 안전한가. 남편이나 자식처럼 끊임없이 뭘 요구하면서 귀찮게 하 지도 않고 엉뚱하게 나를 괴롭히지도 않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좋아하는 대상을 지나치게 가까이 두거나 소유할 수 없다는 점도 장점 중의 장점이다. 이 나이쯤 되니 누군가를 소유하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고 결국엔 쓸쓸해지고 마는 그 런 일인지 잘 안다. 적당히 거리를 두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도. 내가 좋아하면 그뿐. 그 대상에게 나를 좋아해달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해서 앞으로도 기왕이면 앞날이 창창한 ‘젊은’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응원하려고 한다. 음악 회나 공연장을 찾아다니면서 그가 성장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고 음악을 애호하는 멋진 문 화인으로 늙어갈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사회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최근에 가수 임 영웅에게 유산을 상속하고 싶다고 말하는 어르신들이 하도 많아 ‘국민상속남’이라는 애칭까지 얻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앞으로 거대한 중장년 팬덤의 힘이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 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해 보았다.


뉴스레터 구독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주 1회 노후준비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 이름
  • 이메일
  •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보기
  • 광고성 정보 수신

    약관보기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정보변경이 가능합니다.

  • 신규 이메일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구독취소가 가능합니다.

  •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