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던 디즈니플러스 살린 <무빙>의 성공 비결은?
글 : 김봉석 / 작가 2023-10-30
한 달쯤 전,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갔다. 헤어 디자이너가 머리를 감겨주다가 물었다. 보셨나요? 나도 바로 물었다. 이름이 같아서요? 그리고 강풀 작가가 주변 사람들 이름으 로 작품 속 등장인물의 이름을 짓는다고 알려줬다. <무빙> 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은 말한다. <무빙> 의 그..... 주인공....
지난 8월 9일 디즈니플러스에서 에피소드 7개를 공개한 이후, <무빙> 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주마다 에피소드를 두 개씩 공개했고, 9월 20일 마지막 회가 나왔다. <무빙> 덕분에 디 즈니플러스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9월 약 394만명으로 8월의 269만명보다 46% 이 상 급증했다. 또한 <무빙> 은 한국, 일본, 홍콩, 대만 등에서 공개 첫 주 가장 많이 본 디즈니 플러스의 시리즈가 되었고, 최다시청시간도 기록했다. 만약 디즈니플러스가 아니라 넷플릭스 에서 공개했다면,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넘볼 수 있었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였다. 최근 디즈니플러스는 로컬 제작을 줄이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에서 디즈니플러스의 성장세가 둔화되었고,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한국 제작팀도 해체한 상황 이었다. 그런데 이 기대 이상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무빙> 의 시즌2를 만드는 것 은 거의 확실하고, 여전히 한국 영상물이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음을 증명했다. 과연 <무빙> 을 비롯한 한국의 영화와 시리즈가 디즈니플러스를 성장세로 이끌 수 있을까, 주목되는 상황이 다.
<무빙> 은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물이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세계적인 인기 를 끈 이후, 한국의 슈퍼히어로물도 가능하다는 희망 섞인 예측은 마침내 으로 현실이 되었다. 강풀 작가의 원작 웹툰 <무빙> 은 2015년 카카오웹툰에 연재된 작품이다. 강풀은 초기 웹툰 시장의 성장을 이끈 초인기 작가다. <순정만화>,<바보> <아파트>,<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웃사람> ,<26년> , 등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도 많이 있다. 하지만 웹툰의 인기에 비하 면, 영상으로 각색된 작품들은 크게 호응이 좋지 않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가 흥행과 비평 모두 좋았고, <이웃사람>과 <26년> 이 비교적 좋았던 정도다. 강풀 웹툰의 장점인 서정적이면 서 유려한 감성과 스타일이 제대로 그려지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강풀이 제 작에 참여하며 직접 시나리오를 쓴 <무빙> 은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고등학생인 김봉석은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엄마인 이미현은 봉석의 능력을 철저하게 감 춘다. 살을 찌우고, 모래주머니를 채우면서 절대 아들이 공중에 떠오르지 않게 한다. 그런데 봉석은, 전학생 희수도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상처가 심해도 바로 치 유되는 것이다. 반장인 강훈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알고 보니 봉석이 다니는 학교에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고등학생인 봉석, 희수, 강훈의 이야기로 시작된 <무빙> 은 부모의 과거로 넘어간다. 봉석의 아버지 김두식도 하늘을 나는 능력자였고, 이미현은 오감이 아주 뛰어나다. 희수의 아버지 장 주원도 치유능력자다. 그들은 모두 안기부에서 일하는 요원이었고, 위험하고 비밀을 요하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두식은 불법적인 일을 명령하는 조직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했고, 도망쳤다. 미현 역시 봉석을 데리고 도망친다. 두식과 미현의 상사였던 민용준은 그들의 행방 을 계속 쫓고 있다. <무빙> 은 초능력자를 주인공으로, 국가의 폭력에 휘둘리는 개인의 저항을 그리고 있다.
<무빙> 은 과연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물과 무엇이 다를까? 슈퍼히어로라는 소재만 본다면 같 다. 할리우드는 물론 일본, 프랑스, 독일에도 초능력자가 나오는 작품들은 많이 있다. 중요한 점은 슈퍼히어로의 존재만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가, 이다. 각 나라 의 특수한 상황과 얼마나 잘 연결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가가 중요하다. 은 슈퍼히어로 물인 동시에 성장물이고, 로맨스물이며, 사회드라마다. 온갖 장르가 다 섞여 있다. 그 점은 강 풀의 웹툰에서도 그랬다. 강풀은 좀비물을 그리면서도 로맨스를 담는다. 공포물과 액션물에서 도 생활의 감각과 일상의 정서들이 잘 배어 있다. 치밀한 완급조절과 긴장감이 충만한 스토리 텔링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면서 순수하고도 강렬한 정서로 감동을 준다. 강풀은 한국에서 손꼽 히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넷플릭스의 시리즈는 보통 한 시즌에 10화를 넘지 않는다. 성공 여부가 확실하지 않으면 8화, 6화 정도로 한 시즌을 만들기도 한다. 공개하고 반응이 별로면, 다음 시즌을 바로 캔슬한다. 기획한 시리즈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보통은 12화 정도로 제작한다. 그런데 은 무려 20화다. 강풀은 시나리오도 쓰고, 제작에 참여하면서 1시즌을 20화로 만들어냈다. 봉석 과 희수 등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황을 전개하면서, 부 모들의 사연까지 충실하게 담아내자면 10화로 끝내기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성장의 과 정을 포기하고, 지금 사건이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만을 담아낸다면 당장 보는 재미가 있겠지 만 대신 공감은 어려울 수 있다. 강풀 작가는 정공법을 택했다.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받아들 이고 함께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드라마를 펼치면서 음모와 액션이 벌어지는 어른들의 이야기 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부모들의 과거까지. 단시간에 핵심과 결과만을 보고 싶어하는 요즘 트렌드와는 다른 방향이지만 강풀의 정공법은 성공했다. 정석을 따르는 길이 가장 성공에 가 까울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무빙> 은 모든 점에서 성공했다. 대중은 의 스토리에 감탄하고, 다양한 인물들의 감정 에 공감하고, 현실에 없는 초능력 액션에 빠져든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조인성, 류승룡, 류승범, 차태현 등 검증된 배우들만이 아니라 봉석역의 이정하, 희수역의 고윤정, 강훈역의 김 도훈 등 젊은 배우들도 돋보인다. 배우들이 연기도 잘하지만,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구축된 덕이 크다. 캐릭터와 스토리를 충실하게 만들면, 작품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 을 은 다시 한번 입증했다. 동시에 한국 웹툰의 힘이 세다는 사실도 증명했다. 강풀의 완전한 승리다.
김봉석 작가
전 「시네필」, 「씨네21」, 「한겨레」 기자, 「ME」, 「ACOMICS」편집장. 저서로는 『클릭! 일본문화』(공저), 『18금의 세계』(공저)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과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좀비사전」 등이 있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J-pop 등 일본 대중 문화를 지속적으로 즐기면서, <한겨레>, <중앙일보> 등의 일간지에 TV 비평, 대중음악 비평과 영화음악 칼럼을 써오고 있다. 그리고 YES24 「채널 예스」에 만화 비평, 「씨네21」에 문화 비평 등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의 글들을 쓰고 있으며, 스릴러, 미스터리, 공포, SF 등 대중문학의 해설을 쓰고 책을 엮는 등의 출판 활동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