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임원에서 시니어 인턴으로 변신했더니 벌어진 일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잘 나가는 임원에서 시니어 인턴으로 변신했더니 벌어진 일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3-10-18

 2015년에 개봉했던 영화 <인턴>을 보셨는지 모르겠다. 70세의 인턴, 밴 휘테커(로버트 드니로)가 30대 CEO인 줄스 오스틴(앤 헤서웨이)의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가서 겪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영화 말이다. 돌이켜 보니 그 영화를 볼 당시만 해도 현역에 있을 때여서 그랬는지, 70세의 인턴보다는 30대 여성 CEO의 이야기가 더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겉보기에는 잘나가는 사업가지만 일 때문에 가족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미안함, 죄책감, 그리고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기 인생에 대한 회의감으로 괴로워하는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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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지금 나의 관심은? 당연히 70세 인턴이다. 대기업 부사장으로 일하다가 은퇴했고 부인과 사별한 밴 휘테커는 골프, 화초 가꾸기, 중국어 배우기 등에 도전하지만 어느 것에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다가 시니어 인턴 선발프로그램을 통해 일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인턴으로서의 그의 모습과 활동에 대해서 영화는 긍정적인 면을 많이 부각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모습, CEO를 포함한 젊은 직원들에게 업무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 조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진심으로 상담해주는 내용이 그러하다.


현실 세계의 '시니어 인턴'을 만나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얼마 전에,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A씨를 직접 만났기 때문이다. A씨와의 대화는 영화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나도 모르게 A씨를 영화 속의 밴 휘테커와 비교하고 있었는데, 이런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A씨가 말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과는 많이 다르죠.”


  ‘어떤 점이 다른가?’라는 나의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영화에 나오는 시니어 인턴의 모습이나 여러 상황들이 너무 완벽하지 않나요? 현실에도 그런 인턴, 그런 회사가 존재할까요? 그리고 인턴으로 일하는 게 그렇게 훈훈하기만 할까요?”

  

 하기야 로버트 드니로처럼 잘 생기고 멋있는 데다가 공감 능력까지 뛰어난 시니어 인턴도 드물겠지만, 무엇보다 시니어 인턴에게 그렇게 호의적이고 친절한 회사나 CEO, 동료를 만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A씨가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게 된 배경은 영화와 유사한 면이 있었다. 그도 밴 휘테커처럼 한때는 꽤 잘나가는 회사 임원이었고, 그래서 은퇴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낙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은퇴자 생활이 6개월도 지나기 전에 일대 혼란이 왔다고 한다. 친구 만나는 것도 꺼려질 정도로 돈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심해졌고, 더 심각한 건 그동안 힘들게 쌓아 올린 자신감과 자존감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루 24시간이 그렇게 길고 지루할 줄은 미처 몰랐고, 자신이 그렇게 무력해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한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잔소리를 해대면서 가족 간의 불화만 심해졌다. 


  결국 A씨는 돈도 돈이지만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자신을 받아줄 만한 직장을 탐색한 끝에 사회적 기업 쪽의 일자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고 한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인턴으로 채용될 수 있었는데,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업무 경력, 외국 현장에서 일해본 경험 등을 인정받은 덕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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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인턴이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들 


  A씨는 시니어 인턴으로서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직장 현실은 전보다 훨씬 냉혹해요. 그러다 보니 예전의 회사 생활보다 열 배는 더 신경이 쓰여요. 외모나 옷차림만 해도 그래요. 피어싱이나 문신하고 출근하는 젊은 직원들에 비해 너무 겉돌지 않으려면 어떤 차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죠. 염색도 자주 해야 하고... 살면서 이렇게 외모에 신경 써본 적이 있나 싶어요.”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는 일도 힘들다고 했다. 시니어 인턴이라는 위치 자체가 애매하다 보니까 직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로 대화하고 친근감을 표시해야 하는지에 대해 헷갈린다고 한다. 특히 점심시간이나 회식 시간이 제일 괴롭다. 혼자 먹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번번이 점심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회식도 참석해야 하는지, 참석한다면 언제 빠져나와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직원들과의 관계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이 이 회사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 월급의 가치를 하고 있는가에 관한 고민이다. A씨가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기획이나 데이터 분석, 네크워크 활용 등인데, 인턴으로서 그런 능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업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든 점도 걸림돌이다. A씨는 파워포인트 작성이나 엑셀 이용한 업무 정도는 처리할 수 있지만 최근의 디지털 환경을 따라가기 힘들고, 스마트폰 다루는 능력도 부족하다는 걸 실감한다고 했다. 젊은 직원들에게 일일이 가르쳐달라고 할 수도 없으므로 혼자 애써 공부하며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A씨의 말을 들을수록 요즘처럼 변화 속도가 빠른 세상에서 시니어 인턴으로 일한다는 게 간단치 않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A씨의 표정은 밝았다.


  “그래도 종합해보면 긍정적인 면이 더 많아요. 염색 같은 거 할 때마다, 내가 젊은 사람들과 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반문해 보죠. 아마 10년은 더 나이 들어 보였겠죠. 일도 그래요. 전이라면 부하 직원한테 시키면 끝났을 자잘한 일 하느라고 끙끙대는 내가 한심할 때도 있지만 그 덕에 새로운 기술도 배우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배우니까... 이 나이에 이렇게 나를 가꾸고 긴장하면서 사는 것, 새로운 걸 익히면서 성장하는 것 그 자체가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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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일터의 모습을 엿보다 


  8년 전에 <인턴> 영화를 봤을 때만 해도 머지않은 미래에 있을 법한 이야기네,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이 영화야말로 100세 시대 일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청년층과 시니어가 힘을 합쳐서 생산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성과를 내는, 젊은이와 시니어 양쪽이 모두 성장하는 미래의 직장 모습 말이다.    


  린다 그래튼 등이 지적했듯이 100세 시대에는 어떤 일을 하는데 최고의 성과를 내는 ‘전성기’의 개념이 점점 사라질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시니어들이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기술, 통찰력, 네트워크, 지혜, 전략 등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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