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하나 까딱 안 하게 해주는 시니어타운, 과연 좋은가?
글 : 이지희 /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2023-09-11
몇 년 전 일본의 유료노인홈(한국의 시니어타운에 해당)인 유유노사토(ゆうゆうの里)에 견학을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시설장님이 견학을 간 우리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입주자 A는 청소와 빨래 모두 혼자 할 수 있기 때문에 저희 시설에서는 청소와 빨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입주자 B의 경우에는 청소는 혼자 할 수 있으나 세탁기 돌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세탁은 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입주자 C는 입소 시 건강하여 혼자서 가사를 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건강이 안 좋아져서 청소, 빨래 모두 혼자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모든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의 서비스 비용에 차이는 얼마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저희 시설에서는 얼마를 받고 있을까요?“
필자는 당연히 입주자 C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으므로 입주자 C가 지불하는 생활비가 가장 비싸고, 그다음 입주자 B, 입주자 A의 순으로 생활비가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그러나 시설장님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정말 의외였다.
“A, B, C 모든 입주자들의 생활비는 동일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유는 이랬다. “저희 시설에서는 자립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본인이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생활비가 동일한 것에 대해서 입주자들이 불만을 갖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과연, 한국에서 일본처럼 서비스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 불만이 폭주할지도 모르겠다.
"복지"의 진정한 의미
한국의 유료양로시설과 노인복지주택은 노인주거복지시설로 “복지”의 영역이다. 복지에서 중요한 것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도록 두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해 보니 필자가 대학생 때 일본으로 단기 연수를 가서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실습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 어르신이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는데 직원들 아무도 부축을 해주거나 화장실 문을 열어주거나 하지 않았다. 필자가 나서서 어르신의 손을 잡아드리고 화장실 문을 열어주었는데, 돌아온 피드백은 ‘어르신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도와주지 말고 기다려 주길 바란다’라는 것이었다. 잔존기능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의 한 시니어타운에서는 건강한 어르신들의 경우 식사시간에 식당으로 내려와서 줄을 서고, 식판을 직접 들고 음식을 받은 다음 식탁으로 가져가서 식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식판을 들 힘이 없어지면, 그때는 ‘다른 식당’으로 옮겨가 직원들이 갖다주는 식사를 하게 된다. 어르신들은 ‘다른 식당’으로 옮겨가서 식판을 갖다주는 서비스를 받는 것은 내가 스스로 식판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서비스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가끔 시설 견학을 하러 오는 외부인들이 어르신들이 손을 떨면서 식판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안쓰럽게 보인다고 하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1부터 10까지 모두 다 해주는 서비스를 받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혼자 시골에서 살면서 농사를 지으시는 어머니를 도시의 아파트로 모셔다가 이제 노쇠하셨으니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모든 것을 다 해드렸더니, 식사하시고 주무시고, 식사하시고 주무시고 하는 일상을 보내시다가 건강이 더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골에서는 많이 움직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왔는데, 도시에 오면서 자식들이 전부 다 해주니 오히려 인지 기능이 떨어지고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것이다.
최근 새로운 시니어타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청소, 빨래, 세탁, 운전 등등 돈을 지불하면 1부터 10까지 모두 해준다는 곳들이 많이 보인다. 물론 비용을 지불하고 내가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좋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지 않도록 필요할 때에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지희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일본 오카야마현립대학원에서 보건복지학 박사 취득 하였다. 현재 수원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의 겸임교수,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국의 대표적인 시니어타운들이 가입해 있는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의 사무국장직을 겸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