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구직자의 면접, 이렇게 떨릴 줄이야...
글 : 버들치 / 작가 2023-08-31
2019년 5월 타워○○○ 설비기사 면접 : 기술직 첫 근무 제안을 받다
오늘 아침에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타워○○○란다. 헉! 어제 낸 이력서에 대한 반응이 온 모양이다. 오늘 10시에서 11시 사이에 면접을 보러 오란다. 으음... 경력 3년이 필수 조건이라고 했지만 경험 삼아 그냥 들이밀었는데...
도곡동 타워○○○에 도착하여 외부인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6층에 도착해서 사무실을 찾아가니 팀장이 나를 반긴다. 인상이 대단히 좋은 분이다. 단둘이 앉아 팀장이 하는 얘길 들었다. 가끔 질문도 하고 맞장구도 춰주고...
애초에 대리 직급을 뽑으려고 했는데 마땅한 지원자가 없어서 그냥 경력이 없는 사람을 뽑기로 한 모양이다. 얘기를 다 들어보니 대략 짐작이 간다. 젊은 애들은 조금 있다 나가는 경우가 많으니 차라리 나이가 좀 많더라도 진득하니 있을 수 있는 사람을 뽑는 모양이다. 그런데 기사와 대리 월급 차이가 달랑 5만 원이란다. 기사 월급이 260만 원이니 그럼 내 월급은 255만 원인 셈이다. 으음... 그럼 뭐 하러 경력을 쌓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국가에서 정한 최저임금을 맞추다 보니 기사 월급이 250만 원이 된 모양이다. 기사 월급이 워낙 박봉이다 보니 오름폭이 커진 것이다. 그러나 대리 임금은 법에서 정한 최저선을 이미 넘어섰으니 굳이 올릴 이유가 없었다. 용역업체 입장에서 기사 월급을 올려줘 이익이 줄어든 마당에 대리와 그 이상의 직급자들의 임금을 올려 수익이 더 줄어드는 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 직급 임금으로 밑 직급 월급을 주고 있는 셈이다. 으음... 조삼모사는 아니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다.
근무 방법을 물어보니 2명이 4교대로 일한다고 한다. '주주당비'라고 외우란다. 첫째 날 8시간 주간 근무, 둘째 날 8시간 주간 근무, 셋째 날 올 데이 당직 근무, 넷째 날은 비번으로 쉬는 날이다. 성수동에 있는 친구는 3교대인데 그곳과 월급은 비슷한데 근무조건은 더 좋은 셈이다.
팀장 과장 대리 주임 기사 이렇게 계급이 나누어지는 모양이다. 팀장 1명, 과장 1명, 일반 직원 8명, 영선 직원 2 명해서 총 12명이다. 팀장, 과장, 영선 직원은 주간 근무만 하고 나머지 8명이 두 팀으로 나누어 4교대 근무를 한다.
그 외 설비가 하는 일에 대해 1시간 정도 설명을 해주신다. 16년 된 건물이라 이제 손볼 곳이 많다고 한다. 입주민 시설은 제외하고 공용 시설만 담당한다. 급수관, 배수관, 하수관, 급. 냉탕, 환기, 정화조 등을 관리한다. 보일러는 수서 쪽에서 지역난방으로 들어와 제외된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하는 일이 더 많다고 한다. 분수대와 수영장 등의 관리도 해야 한다고 한다. 일반 빌딩보다 하는 일이 많다고 엄살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기에...
얘기를 계속 들어보니 나를 뽑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언제부터 나올 수 있냐고 한다. 으음...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질문이다. 1주일 정도 시간을 달라고 하니까 그럼 23일부터 나올 수 있냐고 재촉한다. 알았다고 했다.
1시간 넘게 팀장님과 얘기하고 나오니 머리가 뽀개질(?) 것 같다. 당시 나는 증권회사에서 계약직으로근무하고 있었다. 이참에 이직을 해 볼까 하면서도 걱정과 불안이 덮쳐온다. 하기야 180도 환경이 바뀌니 그도 그럴 것이다. 돌아오면서 친구에게 얘기하니 한 놈은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직장을 옮겨 기반을 다지라고 한다. 으음... 옳은 지적이다. 다른 한 놈은 경험이 전혀 없는 너를 뽑는 것으로 봐서 구인난이 심한 시장이니 급할 거 없다면서 현 직장을 다닐 수 있을 때까지 다니라고 한다. 으음... 어느 정도 올바른 진단이다.
저녁에 아내가 들어와 고민을 얘기하니 단방에 정리해준다. 급할 거 없다. 타워○○○가 다른 곳보다 더 힘든 것 같다. 당신 어깨도 성하지 않다(회전근개 파열) 그러니 일단 어깨 치료부터 끝내라. 구인 시장 정보를 들어보니 설비라는 직종이 사람 구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월급이 비슷한 구인 광고가 많이 있더라. 최소 1년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으음...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니, 내가 듣고 싶었던 얘기였을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일심동체인가 보다.
2020년 6월 적○○ 면접 : 면접 하드 트레이닝을 하다
1층에 들어서니 경비 한 분이 안내를 해준다. 내가 지원한 게 경비 분야다. 나도 합격하면 이런 일을 하겠지. 1층에 대기실이 있다. 체온 체크를 하고 신분을 확인한다. 2시 10분인데 4명 정도가 왔다. 뒤이어 다시 4명이 왔다. 아마도 2팀으로 나누어서 집단 면접을 보는 모양이다. 다들 내 또래인 것 같다.
편안하게 보자. 경력이 없어 가점도 제대로 못 챙기는데 합격을 바라는 건 언감생심 아닌가? 블라인드 채용이라 면접관에게 나이, 학교, 출신지 등을 말하면 안 된다며 주의를 준다. 대기실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기다리면서 주변에 붙은 홍보물을 살펴보니 적○○가 하는 일이 열거돼 있다. 혈액사업, 의료사업, 교육사업, 남북 교류 사업, 국제사업, 국내 사업 등이다.
2시 30분에 면접이 시작됐다. 면접관이 4명이다. 경비 하나 뽑는데 뭐 이리 유난을 떨까 생각해보지만 급여가 생각보다 빵빵하다. 학자금도 나온다고 한다. 암튼, 준 공무원 집단이라 절차가 깐깐하다.
지원 동기, 경비의 임무, 민원인 대처 요령, 회사와 가정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등에 대해 물어봤다. 대략 30분 정도 걸렸다. 얼굴은 경직돼 있고,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혀가 꼬이면서 질물에 대해 간결하게 답변하지 못 하고 버벅댄 것 같다. 으음... 미치겠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먼저 실례하겠습니다"하고 나오고 싶었다. 내가 면접관이라도 나 같은 직원은 뽑지 않을 것 같다. 젠장, 면접을 다 마치고 나오니 면접관이 물어본 질문에 대한 더 좋은 대답이 떠오른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하면 잘 된 일이다. 적○○ 본사가 생각보다 멀다.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또 생각보다 조직이 빡빡한 것 같다.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야 하는 부담도 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직장(증권회사 계약직)도 그럭저럭 다닐 만하다. 그래 틈틈이 알바도 하면서 좀 더 다니자.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한편으로는 좋은 경험이었다. 진짜 면접 다운 면접을 봤다. 다음 면접을 준비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2021년 6월 코레일○○ 공무직 면접 : 젊은이들과 경쟁하다
대전 ○○인재 개발원에 도착해서 주변을 살펴보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으음... 하기야 요즘 취업 문이 바늘구멍 아닌가?
실내체육관으로 이동하여 체력검증 시험을 치렀다. 10kg 자루 가슴에 안고 앉았다 일어나기 40회(20점), 윗몸 일으키기 33회(14점), 15kg 자루 메고 25m 왕복 달리기 14.6초(2점)다. 20점 커트라인에 36점이다. 왕복 달리기가 의외로 다크호스다. 아마도 맨 마지막 시험이라 두 개 종목에서 힘을 빼서 그러지 싶다. 핑계지만 운동화를 안 가져가서 바닥이 미끄러웠다. 왕복달리기, 윗몸일으키기, 앉았다 일어나기 순으로 하는 것이 체력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체력 검증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 한해 2차 면접이 진행된다.
면접실에 들어서니 면접관이 4명이다. 전동문이 나갔을 때 조치에 대해 물어본다. 또 안전 관리에 있어 고객, 동료, 자신의 관점에서 야기해 달란다. 화재가 났을 때의 대처 요령에 대해서도 물었다. 직원들 간에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대처 요령과 자신보다 나이 어린 직원이 들어왔을 경우 어떻게 처신하겠냐고 묻는다. 마지막 질문은 이런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쁘지 않은 면접이었다.
2021년 11월 ○○아파트 관리사무소 면접 : 열악한 환경, 감내해야 할까?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니 주변에 관리 사무소가 안 보인다. 전화를 하니 길가 말고 안쪽으로 들어오란다. 버스정류장에 후문이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정문이 보인다. 정문 초소 위에 관리 사무소가 하나 있다. 썰렁한 사무실에 소장님 한 분이 맞아준다. 지금 영선으로 근무하시는 분이 70대 고령이라 후임자를 뽑고 있는 듯하다. 좀 있다 선임자 한 분이 들어오셔서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말씀해 주신다. 조경 일도 해야 하는 모양이다. 200 세대 아파트라 크지는 않지만 나무 베기와 낙엽을 리어카로 치우는 일도 있단다. 페인트칠도 필요하면 하고 가끔 주민들이 요청하는 일도 하는 모양이다. 주차관리는 경비원이 한다고 한다. 가끔 차를 밀어달라고 하는 주민이 있는 모양이다.
온 김에 기계실도 한 번 가보라고 해서 가보았는데 문을 여는 순간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낡고 누추한 공간이 나온다. 직원을 위한 별도의 공간은 없고 기계실을 그냥 사무실로 쓰고 있다. 대분이 그렇겠지만 시설이 너무 날고 철거를 위해 방치된 건물 같다.
월급이 217만 원. 상여금은 없고 휴가비, 설, 추석 각각 100,000원의 특별 급여가 나온다. 좀 짜다. 출. 퇴근 시간도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다. 9시와 6시 모두 러시아워 아닌가? 6시에 면접을 끝내고 전철을 이용해서 시간을 재보니 헉! 50분 이상이 걸린다. 아파트가 경사로 맨 밑에 위치하고 있어 지하철을 타려면 엄청 올라와야 한다. 감내하기엔 좀 많은 시간이다. 왜 구인 공고가 매일 올라오는지 알겠다. 젊은이들은 안 올 것 같다. 경비하시는 분, 전기하시는 분 모두 60~70대 이상이다. 60대 은퇴자가 시골로 귀촌했는데 막상 와보니 한참 막내인 상황과 비슷하다.
일이야 힘들어도 상관없는데 시설 및 분위기가 나 같은 젊은이(?)가 오기엔 너무도 열악하다. 내 나이가 60대를 넘어서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근무 제안은 받았으나 결국 가지 않기로 했다.
2023년 현재 일하고 있는 곳에 이르기까지 면접을 10번 이상 보았다. 면접은 여러 번 할수록 요령이 생기는 것 같다. 경력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지원해서 연습을 해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면접을 여러 군데 해 보면 내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곳을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력이 없으니 좋은 처우를 바라는 것도 적절치 않다. 나의 경우 기간직(12개월 미만의 단기 계약직)으로 경력을 쌓아가며 장기로 근무할 수 있는 곳을 탐색해 나갔는데, 그 방법도 나쁘지 않다.
버들치 작가
증권회사에서 33년 근무 후 퇴직하여 현재 기능인으로 인생 2 막을 살고 있다. 1965년에 태어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세 가지 운으로 위태롭게 살아왔다. 첫 번째 운은 짧은 학력으로 증권회사에 입사한 것이고, 두 번째 운은 33년간 한 회사를 다닌 것이고, 세 번째 운은 퇴직 후에도 소일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퇴직을 앞두고 주경야독으로 기술을 배웠으며 그 경험에 대해 네이버 '부동산 스터디' 카페에서 버들치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썼다. 그 결과물로 '버들치의 인생2막'(2023)이라는 책을 발간 했다. 단순하고 평온한 삶을 추구해 왔으며 앞으로 그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