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노후에 얼마가 필요할까?
글 : 최인한 / 시사일본연구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2023-08-07
노후에 중산층으로 살아가려면 현역 시대에 얼마를 저축해야 할까. 고령화 시대를 맞아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는 질문이다. 일본은 전 국민 대상 공적 연금제도가 상대적으로 충실한 편이다. 고령자들 이 표준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노후에 월 30만 엔(부부 기준) 정도가 필요하다는 추산이 나와 있다. 따라서 자신이 65세부터 받을 예상 연금액과 비교해 부족한 금액은 저축이나 개인 연금, 또는 근로 기간 연장을 통해 충당해야 한다.
일본에서 샐러리맨으로 35~40년 정도 일한 뒤 퇴직한 고령자 부부의 연금 수입과 생활비 지출 현황을 소개한다. 현지 언론과 금융 기관이 제시한 중산층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도 전한다.
고령자 부부, 노후 자금 500만 엔만 있다면
사람마다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다르고, 기대하는 생활 수준이 차이가 난다. 일률적으로 노후에 어느 정도의 자금과 월 수입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그렇다 해도, 중산층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수입은 나와 있다. 공적연금만으론 조금 부족하다는 게 당사자들의 의견이다. 경제 활동을 하는 현역 시대에 저축이 필요한 이유다.
만약 노후 자금으로 500만 엔(약 4,600만원)이 있다면, 어느 수준의 생활이 가능할까. 일본에서 고령자 부부(표준 모델 기준)는 노후에 22만 엔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남편이 평균 35~40년 직장에서 일했고, 부인은 전업 주부일 경우다. 이런 부부가 노후 자금으로 500만 엔을 모은 경우를 살펴 보자.
일본 정부가 지난 2019년 필요한 노후 자금으로 ‘2000만 엔’을 제시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금융청 금융심의회에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 추산한 자금 규모였기 때문이다. 월 22만 엔의 연금을 받는 고령자 부부는 노후 생활에서 매달 5만5,000 엔 정도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노후에 30년을 살 경우 약 2000만 엔(5만5000 엔 x 12개월 x 30년)의 저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연금만으로는 충분한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노후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2,000만 엔을 저축하자는 것이다. 식량 및 원자재 등 세계적으로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고 있고, 의료 기술 발달로 평균 수명이 더 길어지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금액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부부, 연금 22만 엔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
일본 고령자들은 500만 엔 정도의 자금을 보유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500만 엔으로 어느 수준의 노후 생활이 가능할까. 요즘 일본에선 60세에 정년을 맞은 뒤 노후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보다 고용 연장제도를 이용해 65세, 70세까지 일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고령화 시대를 감안해 90세에 사망한다고 보고, 소득 없이 무직 상태의 노후 생활 기간을 70세부터 90세까지 20년으로 가정하자.
평균 수명이 길어져 노후에 가이고(노인 돌봄) 시설을 이용하는 등 예기치 않은 지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500만 엔의 저축은 손대지 말고 가급적 연금만으로 생활하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나 선배 경험자들의 조언이다. 2023년 부부 2인 기준 후생연금 평균 수령액은 22만 4,482 엔 정도. 연금 수입은 22만 엔으로 상정하고 실제 생활비를 따져 보자. 일본 총무성이 공표한 ‘가계 조사 보고’에 따르면 2022년에 70세 이상 2인 가구의 평균 생활비는 23만 7,203 엔이다. 표준 수령 연금액과 비교해 월 1~2만 엔 적자가 난다. 이 정도 금액이라면, 취미나 외식비 등 오락 부분 지출을 줄이면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월 생활비가 빠듯한 상황에서 입원 등 예기치 않은 비용 지출이 발생하면 대응하기가 곤란하다. 임시 지출이 발생할 때마다 저축한 500만 엔을 꺼내 쓰는 것은 심적으로 큰 부담이다. 70세가 넘어도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일할 곳이 있을 경우 월 몇 만 엔의 적은 수입이라도 계속 일하는 게 유리하다.
70대에도 일 할 수 있으면 일 하는 게 좋다
일반적으로 일을 계속하면 몸과 머리의 노쇠 현상이 늦춰지고 삶에 활력이 생긴다.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얻는 장점이 많다. 노후 대비의 핵심은 수입이 적더라도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것이 좋다는 게 일본 고령자들의 여러 실제 사례에서 확인된다. 500만 엔의 저축으로 노후 생활을 시작할 경우 70세 이후도 계속 일을 해서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는 있다. 다만, 취미나 사람들과의 교류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노후 생활을 보내려면 500만 엔 이상을 저축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연금, 월 30만 엔 만드는 방법은
노후에도 가능한 시점까지 일하는 게 정답이지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본인의 의지가 있다 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맞춤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또 다른 대안은 부부가 ‘월 30만 엔’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연금은 노후 수입의 기둥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 월 30만 엔 정도의 연금을 받으려면, 현역 시절에 근로자 평균 이상의 고액 연봉이 필요하다. 일 총무성의 ‘가계 조사 연보’에 따르면, 무직인 65세 이상 부부의 평균 생활비는 다음과 같다.
연령이 올라갈수록 생활비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지만, 69세까지는 가구당 월 평균 약 26만 엔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월 30만 엔의 연금을 받는다고 사치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월 30만 엔의 연금을 받기 위한 연봉은
노후에 월 30만 엔의 연금을 받으려면, 연봉이 어느 정도 돼야 할까. 근로 기간을 22세부터 60세까지 38년(456개월)로 상정해 보자.
부부 중 한쪽이 전업 주부(남편)일 경우, 전업 주부(남편)는 기초 연금만 수령할 수 있기 때문에 월 30만 엔의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일하는 사람쪽 연봉에 달려 있다. 부부의 기초연금은 최대 연 155만 5,600 엔(77만 7,800엔 x 2)이다. 월 30만 엔, 연간 360만 엔의 연금을 받으려면, 204만 4,400 엔이 부족하다. 이 금액을 후생연금으로 충당하려면, 일하는 쪽은 38년 간 연봉 1,000만 엔 가까이를 받아야 한다. 부부가 맞벌이로 2명 모두 후생연금을 납부한 경우, 연봉 1,000만 엔을 38년 동안 협력해서 벌면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조합이다.
- 남편: 500만 엔, 아내: 500만 엔
- 남편: 400만 엔, 아내: 600만 엔
- 남편: 700만 엔, 아내: 300만 엔
부부가 정규직이고 맞벌이라면 월 30만 엔의 연금은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
노후 생활 대비, 현역 시절 맞벌이가 유리하다
일본에서 노후 생활을 하는 고령자 부부가 월 30만 엔 정도의 연금을 받으려면 현역 시절에 장기간 연봉 1,000만 엔을 유지해야 한다. 외벌이 가구라면 소수 가구만 가능한 금액이다. 노후 생활을 조금 더 윤택 하게 하려면 현역 기간 중 부부 함께 최대한 길게 일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이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으며, 서강대 대학원에서 석사(국제통상, 일본 전공)를 받았다. 1988년 말 한국경제신문에 취재기자로 입사한 뒤 도쿄 특파원, 편집국 온라인총괄 부국장, 한경닷컴 이사, 한경일본경제연구소장을 지냈다. 주일 특파원과 일본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로 세 차례 일본에서 일했다. 2020년부터 시사일본어학원 등을 운영하는 시사아카데미의 일본연구소장을 맡아 각종 언론에 칼럼을 쓰고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2023년 현재, 중앙일보에 <최인한의 시사일본어>, 이코노미조선에 <최인한의 일본 탐구> 칼럼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일본 기업 재발견>, <다시 일어나는 경제 대국 일본>, <손님 모이는 가게 따로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