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가 어때서, 기술 배우기 딱 좋은 나이인데
글 : 버들치 / 작가 2023-07-24
아무도 날 찾지 않는다.
요즘 공사 현장을 체험하며 또는 기능을 배우고 익히면서 느낀 점은 50대와 기능은 정말 최상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와 처지가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내 처지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의 밥벌이 방법은 크게 지식으로 벌어 먹는 방법과 몸으로 벌어 먹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지식으로 밥 벌어 먹는 부류로는 금융. 서비스업 종사자와 공무원 등이 있을 수 있겠고, 몸으로 밥벌이 하는 부류로는 운전과 같은 기능직과 건설현장의 근로자 등이 있을 수 있겠다.
지식으로 밥벌이 하는 일은 겉으로는 폼 나고 근사하지만 스트레스가 큰 편이다. 지식의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또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은 금방 진부화되어 새로운 지식을 쫓아가기 바쁘다. 그리고 새로운 금융지식으로 무장한 후배 직원들이 뒤쫓아오고 내가 30년 동안 익힌 금융지식은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타까운 것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도 40대 중반을 넘기면 급격히 고꾸라진다. 이래저래 더 이상 얄팍한 지식으로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음을 요즘 실감한다.
밖에서 들려오는 먼저 퇴직한 동료, 후배, 선배들의 얘길 들으면 더욱 의기소침해진다. 누군 ○○ 주공 아파트를 판 돈으로 원룸 임대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고, 또 누군 주택관리사에 합격해서 아파트 소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내가 차린 부동산중개업소를 봐주고 있다는 사람,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실장으로 있는 사람, 전업투자자로 변신한 사람, 경비로 취직한 사람 등등. 때론 눈물겹기도 하고 또 때론 안쓰럽기도 하다. 다들 얄팍한 지식으로 먹고 사는 것에만 골몰할 뿐 기능인으로 제2의 인생의 인생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질 않는 것 같다. 위 사례에 내가 부러워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인생 2모작에 대해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사례를 들었지만 기능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몸으로 하는 벌이치고 어디 폼 나는 직업이 있던가? 명함을 하나 내 밀 수 있는 직장을 원하지 김 씨나 김기사로 통하는 기능공을 원하지는 않더라. 그러나 기능은 50대인 나에게는 마치 구원과도 같은 새로운 신천지였다. 그동안 여러 기능들을 탐색해 본 바로는 기능이야말로 50대에 배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50대 기능인? 어떤 조합이길래...
나는 몸으로 먹고사는 직업이 가장 정직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업이나 프로 스포츠는 가장 잘 하는 몇몇 사람이 돈의 대부분을 가져간다. 그러나 몸으로 하는 기능은 숙련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어느 정도는 공평하다. 즉, 몇몇이 독차지하지 않고 골고루 가져가는 편이다. 그래서 좋다.
50대에 기능을 배우면 좋은 점들
1. 기능은 불평등을 완화시켜 준다.
→ 숙련공과 비숙련공 사이에 지식 산업처럼 현격한 임금 격차가 없다.
2. 기능은 오래 하면 는다. 사람에 따라 다소 늦은 사람이 있지만 어쨌든 오래 하면 는다. 최소한 데모도(보조)에서 장인은 아니더라도 기능공 정도는 된다.
→ 그러나 지식 산업은 오래 하면 늘기는커녕 퇴물이 된다.
3. 건설업 기능인의 경우 대부분 아침 일찍 시작해서 저녁 늦게 끝난다. 토요일도 못 쉰다. 공휴일에 일하는 경우도 있다.
→ 이 또한 장점이다. 50대가 되면 집에서 별로 찾지 않는다. 자식도 아내도... 씁쓸하지만 일에 전념할 수 있다.
4. 일당이 쏠쏠하다. 웬만하면 월 300만 원 ~ 500만 원 이상은 가져갈 수 있다.
→ 자식들 다 키워 놓고 이 정도면 꽤 만족할 만한 액수다.
5. (몸을 혹사하지 않을 정도면) 몸이 건강해진다.
→ 그동안 소화 불량으로 고생한 나도 요즘 소화가 잘 되는 것도 같다.
6. 50대는 끈기 있게 잘 배운다. 즉, 젊은이들과 경쟁에서 유리하다.
→ 젊은이들은 건설 현장에 별로 없다. 연애하기에 바쁘고 돈벌이가 돼도 힘든 일을 별로 안 좋아한다.
7. 현장에 나가보면 다 나와 같은 50대 안팎이 대부분이다. 동질감을 팍팍 느낀다.
→ 기존 직장에서 얻은 계급장은 필요없다. 나보다 나이 많고 적음에 따라 형님 또는 동생이다.
8. 고단하게 일한 후 밥을 달게 먹고, 잠도 깊게 잘 수 있다.
→ 요즘 새벽에 잠이 깨는 일이 많은데 노동 후에는 잠을 쉽게 이루고 깊게 자는 편이다.
50대가 기능 습득에 어려운 점
쪽팔림과 두려움? 50대에 기능인의 길을 가려고 할 때 가로막는 여러 가지 생각과 저항들이 있다. 나름 이해되고 또 그럴듯하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핑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 너무 늦었다는 생각.
- 배움에는 늦음은 없다. 다만 쪽팔리는 것을 그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이 아닐까?
2. 체력이 달린다.
- 50대에 젊은이의 체력을 생각했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다. 기능인이 꼭 씨름 선수처럼 큰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근육이 적응하는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 그 때 까지는 육체적으로 힘들다. 체력 운운하는 것은 하기 싫음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3. 아직 배고프지 않다.
- 배가 슬슬 고파오면 늦다. 배고프기 전에 배워 놓으라. 배고프면 기능을 배울 여유가 없다. 당장 돈벌이가 필요하지, (돈벌이가 안 되는) 기능을 습득할 여유가 없다.
4. 이 나이에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 직장 생활할 때의 계급장을 떼야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언제까지 나이 타령을 하고 있을 것인가?
5. 놀고먹는 게 최고다.
- 쉽게 살겠다고 생각하면 인생 끝이다. 우리 육체는 일을 하도록 진화되어 왔고 또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6. 건물 하나 가지고 따박따박 월세 받는 게 최고다.
- 건물을 가지고 있지 않고 또 살 여유도 없으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없다.
7.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짓겠다.
- 시골에 가서 농사를 한 번 지어보라. 그런 소리 다신 안 할 것이다. 농사 일 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더 어렵다. 남이 하는 건 쉬워 보인다.
8. 먹고 살 만하다.
- 일용잡부라면 호구지책으로 일을 하겠지만 기능인 중에 먹고 살 만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일하면서 충만하게 사는 사람은 있지만 놀면서 폼 나게 사는 사람 못 봤다.
9. 기능을 배우고 싶어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 당신이라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당신의 시간을 할애하며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가? 기능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훔치는 것이다.
10. 기능을 익혀도 별로 써 주지 않는다.
- 당연하다. 당신이 고용주라면 같은 비용으로 50대를 쓰겠는가 아니면 팔팔한 20-30대를 쓰겠는가? 기능이 원숙해질 때까지 돈을 덜 받던가 더 오래 일하던가 해야 한다.
무엇이든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은 낯설고 또 불안하다. 그러나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신입 시절을 생각해 보라. 군에 입대할 당시의 암담하고 끔찍했던 그때를 생각해 보라. 낯섦과 불안이 아직까지 남아 있던가?
버들치 작가
증권회사에서 33년 근무 후 퇴직하여 현재 기능인으로 인생 2 막을 살고 있다. 1965년에 태어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세 가지 운으로 위태롭게 살아왔다. 첫 번째 운은 짧은 학력으로 증권회사에 입사한 것이고, 두 번째 운은 33년간 한 회사를 다닌 것이고, 세 번째 운은 퇴직 후에도 소일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퇴직을 앞두고 주경야독으로 기술을 배웠으며 그 경험에 대해 네이버 '부동산 스터디' 카페에서 버들치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썼다. 그 결과물로 '버들치의 인생2막'(2023)이라는 책을 발간 했다. 단순하고 평온한 삶을 추구해 왔으며 앞으로 그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