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로망, 저도 자연인 가능할까요?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퇴직 후 로망, 저도 자연인 가능할까요?

글 : 김용전 / 작가 2023-07-25



귀농 선배는 맞지만, 좋은 고견은 없다. 다만 만약 십여 년 전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망설이지 않고 귀농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내가 이분처럼 조기 퇴직당한 뒤 귀농을 택한 게 마흔아홉 때의 일이었고, 나 또한 아내를 두고 혼자 귀농의 길로 들어섰었기 때문이다. 이불 한 채, 냄비 두 개, 블루 스타 하나를 트렁크에 싣고 표표히 서울을 떠나던 그때를 생각하면,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만날 책상물림만 하다가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서는 사나이 가슴 속은 검 한 자루 메고 강호로 나서는 고독한 협객 못지않게 설레었었다. 따라서 한번 저질러 보라고 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나 70에 이른 지금은 그러지 못하겠다. 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살아보니 지나간 이십여 년이 재미있고 신기하기는 했지만, 몸으로 때우는 농사일이 점점 노동만 남고 재미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원생활이 아닌 귀농은 젊어서 좋은 일이지, 나이 들고 기력이 쇠하면 이렇듯 생각지 않은 현실적 고민이 닥친다. 아, 농사가 싫고 그리 힘들면 때려치우면 될 거 아니냐고? 나도 그러려고 했지만, 막상 시도해보니, 사는 터전이 팔리지도 않을뿐더러 이십 년 동안 몸에 밴 삶의 방식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쉽게 되지 않았다.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지만, 내 이웃에 올해 나이 일흔다섯, 귀농은 15년 차인데 힘들어서 도시로 컴백하려 했으나 집과 땅이 팔리지 않아 2년 넘게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형님도 있다. 살아보면 세월이 정말 금방 간다. 퇴직 직후의 감정을 삭이고 멀리 보기 바란다.




두 번째 이유는 이분의 질문 속에 ‘농사나 지으며 자연인처럼 살까’라고 생각한다는 표현 때문이다. 미루어 짐작건대 요즘 TV를 도배하는 ‘자연인 프로’의 영향을 받아서 속세의 이런저런 멍에에 얽매이지 않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마시며 자연의 품속에서 초연히 살겠다는 말 같은데, 그렇게 부러운 자연인들도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세상일이다.


사실, TV에 방영되는 ‘자연인 프로’를 볼 때마다 나는 동진(東晉) 시대의 고사전(高士傳)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이 책은 황보밀이라는 고명한 의원이 쓴 책인데 그 서문에 보면 ‘옛날부터 알려진 은사(隱士) 가운데 진정한 은사는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즉 숨어 살기로 맘먹고 철저하게 숨어 살았으면 어찌 세상 사람들이 그를 알았겠는가 하는 말이다. 고로 어디 어디에 가면 숨어 사는 고명한 은사가 있다고 소문이 난 것은 가짜 은사 즉 보여주기식 숨어 살기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탓에 자연인들이 나는 속세를 버리고 깊은 산골에서 표표히 산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 어딘지 어색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자연인 프로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십중팔구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에도 기인한다. 즉, 속세에 있는 마나님은 틈틈이 들러서 반찬이나 고기를 갖다 준다고 자랑삼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역지사지해보면 과연 아내에게도 그게 행복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연인 모두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나도 속마음은 자연인처럼 살고 싶다. 나는 다만 이분에게 자신의 여러 직분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퇴직하면 직장인의 신분은 벗어나지만, 가족의 행복을 책임지는 가장이라는 신분은 그대로이다. 당장 아내를 생각해보라.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나를 만나 결혼해서 평생 아웅다웅하면서 고생했는데 이제 퇴직하더니 취업준비생, 입시생 아이들을 다 맡기고 저 혼자 시골로 간다고? 동료니 친구니 부모 형제니 하는 속세의 인연이야 반대를 하든 말든 결정적 요인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아내나 자식의 입장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황보밀에 의하면 ‘은사(隱士)란 청렴결백한 절조를 지니고 성명(性命)을 보전하면서 부귀영달을 하찮게 여기는 싸람’이라고 했는데, 천오백 년 전의 그 시대라면 몰라도, 이 복잡한 문명 시대에는 구현하기 참으로 힘든 경지이다. 물론 이분이 그런 경지까지 이르기 위해 귀농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만은 그런 감정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느껴져서 하는 말이다. 어떻게 그 감정을 아느냐고? 바로 이십 년 전의 내가 그랬었기 때문이다.


* 직장인 고민상담 전문가 김용전 작가에게 질문이 있으신 분은 happynohoo@gmail.com 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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