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 중앙은행장의 회고
글 : 박덕건 / THE SAGE INVESTOR 편집장 2023-06-13
이 책은 폴 볼커의 회고록이다. 볼커는 우리가 중앙은행장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역대 최고 중앙은행장이라고 하면 볼커와 함께 앨런 그린스펀이 경쟁했겠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린스펀의 명성에 금이 가면서 볼커 쪽으로 균형이 기울었다. 더구나 최근 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면서 그를 언급하는 경우는 더욱 많아졌다.
1980년대 초반 고금리로 인플레이션을 그야말로 때려잡은 것은 그의 영원한 업적이다. 당시 연준이 올린 기준금리는 최고치가 20%였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연상시키는 수준이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실업률이 치솟는 등 미국인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 그 원망이 맨 먼저 볼커에게로 향한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볼커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금리를 유지했고, 인플레이션의 뿌리를 뽑아버렸다. 그가 중앙은행 이야기만 나오면 소환되는 이유다.
그런데 그의 책을 읽어보니 그가 관여한 대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물론 90세가 넘게 장수했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만큼 그가 관여한 다른 사건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들어오는 사건이 바로 달러의 금 태환 정지, 소위 닉슨 쇼크다.
1971년의 사건이니 약간 기억을 되살려 드리자면 2차대전 이후 국제통화시스템은 금과 달러를 중심으로 한 고정환율제였다. 1온스는 35달러이고, 각국 통화는 달러에 페그하며 다른 통화는 언제든지 지정되어 있는 환율로 미국이 금과 바꿔준다는 것이 이 시스템의 핵심이다. 이 방식은 1944년 미국의 브레튼우즈에서 각국 대표가 합의했기 때문에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불렸다. 이 체제는 미국이 압도적인 금 보유량을 갖고 있던 초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미국의 금 보유량이 줄어들자 과연 미국이 금 태환을 보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의문은 공연한 걱정이 아니었다. 마침내 닉슨은 1971년 8월에 기습적으로 금 태환을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닉슨 쇼크는 시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된 사건이었다. 그 이전까지 사람들은 화폐의 가치가 변동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했다. 가치가 안정된 화폐야말로 번영의 토대라고 믿었던 것이다.
요즘은 통화에 관해 어느 국가가 ① 자율적인 통화·재정정책, ② 자유로운 자본 이동, ③ 안정적 환율,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현재의 중국처럼 2번을 포기하든지, 유로 도입 이후의 유럽처럼 1번을 포기하든지, 대부분의 국가처럼 3번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까지는 아직 그런 인식이 없었다. 볼커 세대에게는 환율을 지킨다는 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그걸 버린다는 것은 애초에 상상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하다하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야 ‘방법이 없다’며 나자빠진 결과가 바로 닉슨 쇼크였다는 이야기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종말을 향해 달릴 때 그는 40대 초반으로 미국 재무부의 통화담당 차관이었다. 통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를 가지고 고민하던 미국 정부 담당자였던 것이다. 책을 보면 금 보유량이 줄어들고 시스템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커진 건 하루이틀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그를 포함한 대부분의 정부 관료는 어떻게든 기존의 체제를 지키려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짜내며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흐름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가 인생에서 겪었던 2대 사건을 닉슨 쇼크와 인플레이션 퇴치라고 한다면 공교롭게도 두 사건 모두 화폐 가치와 관련된 사건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볼커는 뒤의 사건에서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앞의 사건에서는 철저히 실패했다.
카터와 레이건
회고록의 재미는 대사건의 이면에서 벌어진 뒷이야기에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런 면에서는 영양가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필자의 진지한 성격을 반영하듯 놀랄 만한 폭로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딱 하나 필자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레이건과 카터를 비교한 부분이 그중 흥미롭다. 카터는 볼커를 연준의장에 임명했지만 “존경스럽게도 카터 대통령이... 통화긴축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고, 카터가 퇴임 이후 낚시 여행에서 고금리가 그의 선거 패배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씁쓸한 웃음을 지었을 뿐이라면서 자신이 카터의 열렬한 숭배자라고 볼커는 서술했다.
반면 레이건은 백악관에서 회의를 하자고 해서 갔더니 정작 자신은 어딘가 불편한 기색으로 앉아 있고, 대신 비서실장이 “대통령께서는 대선 전에 금리를 인상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서 자신을 당황하게 했다는 에피소드를 적어놓았다. 웃기는 것은 당시 볼커가 이미 더 이상 금리를 인상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다.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로 보수주의의 영웅인 레이건도 선거 앞에서는 마음이 쫄아서 누군가의 회고록에 나올 망동을 저질렀으니 볼커가 입만 열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출처: THE SAGE INVESTOR 74호
박덕건 THE SAGE INVESTOR 편집장
<월간중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