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준비 50대, 굴삭기와 지게차, 버스 운전 차례로 해보니
글 : 버들치 / 작가 2023-06-12
도배, 타일, 미장 일을 현장에서 배우다 보니 아파트 공사 현장이나 기타 건설 현장을 지나다닐 때가 많았다. 굴삭기 운전의 달인들이 곳곳에 보였다.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다 중장비 운전에 대한 로망(?)이 나도 모르게 생기고 말았다. 보통의 운전은 핸들을 가지고 하는데 굴삭기 운전은 왼쪽과 오른쪽 레버를 각각 당기고 올리고, 좌로 젖히고 우로 젖히면서 운전하는 게 너무도 신기했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영화 마징가 제트를 운전하는 쇠돌이가 된 기분을 나도 느끼고 싶었다. 실행에 옮겼다. 중장비 학원을 등록해 버렸다.
중장비 학원에서 지게차(위)와 굴삭기(아래) 실습 중인 모습
중장비 학원은 김포에 있는 학원이었다. 2016년 10월부터 다녔는데 집에서 학원까지 2시긴 정도 걸렸다. 지금 생각하면 미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거리다. 그 거리의 아득함을 밀어낸 것은 중장비 운전에 대한 로망 때문이다. 아마 모든 남자들의 로망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중장비 운전은 재미있었다.
굴삭기 운전과 지게차 운전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필기와 실기를 거쳐야 한다. 필기는 내연기관에 대해 배운다. 처음엔 좀 어렵다고 느끼지만 자주 수업을 들으면 익숙해진다. 필기는 굴삭기와 지게차가 동일하다. 즉, 필기에 합격하면 굴삭기와 지게차 실기를 모두 볼 수 있다.
중장비 학원 내 비치된 내연기관 모형
굴삭기 실기는 두 번 보는데 첫 번째 실기는 S자 코스를 전진해 가서 후진해 돌아오는 코스다. 그리 어렵지 않다. 첫 번째 실기에 합격하면 두 번째 실기로 넘어가는데 구덩이를 파는 시험이다. 정해진 크기의 구덩이를 파서 반대편 구덩이에 부리는 작업이다. 자기 마음대로 파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구역과 정해진 높이로 버킷에 흙을 담아 옮겨야 한다. 어려운 작업은 아니지만 학원에서 실습할 때 굴삭기 한 대를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연습을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이 많지 않다. 50% 정도가 떨어진다.
지게차 운전 실기는 정해진 코스를 정해진 시간 내에 안전하게 돌아오는 시험이다. 지게차에 짐(팔레트라고 한다)을 싣고 출발해서 여러 코스를 돌아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짐을 내려놓으면 끝난다. 많은 분들이 자동차 운전을 해 봤기 때문에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데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지게차 운전은 사설 학원에서 1시간에 9만 원 수업료를 내고 배웠다. 1 시간이면 족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2 시간이면 이젠 됐다 싶었는데 역시 아니었다. 3시간 배워 실기에 합격했다. 내 운동 신경이 보통임을 알았다.
중장비 학원에서 굴삭기 실습 중인 모습
굴삭기 운전으로 먹고 살기에는 지게차 운전에 비해서 거쳐야 할 과정이 만만치 않다. 경험과 경력이 없는 초보자를 써줄 공사 현장은 아무 데고 없다. 숙련공은 1시간이면 끝낼 것을 초보자는 하루 종일 붙들고 씨름할 텐데 이런 초보자를 뽑아줄 공사장 반장은 없을 것이다. 방법은 오야(기능인) 밑으로 들어가 몇 년 간 시다(보조) 노릇을 해야 한다. 오야가 작업하는 걸 지켜보고 짬이 날 때 운전대를 넘겨주면 감지덕지하며 배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팔팔한 젊은 친구들도 많은데 50대 아저씨를 쓰겠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굴삭기 운전은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닌 게 확실했다. 그에 비해 지게차 운전은 취업이 굴삭기보다는 쉽다. 지게차 운전의 질이 사람에 따라 크게 차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게차 운전은 기능인의 공급도 많고 취업도 굴삭기 보다 훨씬 쉽다. 그러나 쉬운 만큼 굴삭기의 월급에 훨씬 못 미친다.
대형면허를 땄던 노원의 버스 운전 학원
현실적으로 중장비보다는 버스 운전이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관광버스와 시내버스 운전을 하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존경스러웠다. 10m가 되는 버스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특히 후진하여 주차할 때는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나도 그 전율을 느껴보고 싶었다. 대형면허는 노원구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학원에서 자비로 배웠다. 버스 운전은 중장비 운전처럼 국비 지원 대상이 아니다. 2017년 2월 대형면허를 취득했다.
학원버스 운전기사의 애환은 이런 것
2020년 3월부터 8월까지 방이동 소재 영어학원에서 스쿨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다. 방이역 주변에 학원들이 밀집해 있다. 낮엔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야간에 운전을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직업을 탐색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프리랜서 자격으로 도전해 본 것이다.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 별도로 신고하지 않았다. 근무 시간 이후의 아르바이트이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다.
영어학원 운전 대기 상황
요즘은 학원에서 운전기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소규모 학원은 차를 사고 운전기사를 뽑고 또 그 둘(차와 사람)을 관리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용역회사(벤처 기업 또는 스타트업)에서 차와 기사를 빌려 쓴다. 필요할 때만 쓰고 아니면 계약을 해지하면 되니까 학원 입장에서 편리하다.
내게 배정된 학원은 송파구 방이동 소재 영어학원이었다. 5시 30분부터 수업이 시작된다. 동네에 사는 학생들을 집 앞까지 가서 태워서 학원에 내려주고 다시 수업이 끝나면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는 일이다. 요일별로, 시간대 별로 태우고 내려주는 학생들이 바뀐다. 학원이 소규모라 학생이 많지 않지만 한 번 운행할 때마다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5,6명 정도 실어 나른다. 시간표는 5시 30분, 6시, 6시 30분, 7시 등으로 나누어 있기 때문에 등원 때 3~4번 차량을 운행하고 수업이 끝나면 역시 3~4번 운행한다. 등원이 끝나고 첫 하원 시간까지 휴식 시간 또는 대기 시간이다. 대략 1시간 30분 내외의 시간이다. 이때 저녁을 먹거나 볼일을 본다. 대략 10시 30분 정도면 수업이 모두 끝나고 퇴근한다. 하루에 6시간 근무하는 것으로 계약하고 일했다. 한 달 월급이 150만 원이었다. 일하는 기간에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몇 번 학원 수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일하지 못한 기간만큼 일당을 못 받는다. 7,8월이 되자 학원이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영난으로 스쿨버스 운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가 왔다. 코로나 19로 인한 실직을 몸소 체험한 셈이다.
영어학원 운전 시절 비오던 어느 날
스쿨버스 운전기사들의 애환은 다음과 같다. 교통 신호를 위반하거나 주차 위반을 했을 경우는 처음 1회는 학원에서 처리해 주지만 그 이상은 개인이 내야 한다. 일하다 잠시 대기하는 시간에 주차할 곳이 따로 없다. 알아서 길 옆에 주정차를 해야 한다. 그래서 잠시도 차를 비울 수가 없다. 주변 CCVT 위치를 봐가며 적당한 지점에 주차해서 대기한다. 춥거나 더워도 비좁은 차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차 안에서 까먹었다. 세차와 간단한 점검 등은 기사가 해야 한다.
비 오는 날은 교통지옥이다. 학부모들이 차를 가지고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가기 때문에 학원차와 학부모 차가 뒤엉켜 학원 주변은 주차장이나 다름없다. 비 오는 날은 등원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하원도 시간도 더 길어진다. 그러면 퇴근 시간도 늦어진다. 기분 나쁘지만 어쩔 수 없다. 학생들 수업 시간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차가 밀리면 신호 위반을 할 때도 있고 과속도 때론 필요했다. 또 비 오는 날이면 온 신경이 곤두서기 때문에 몹시 피곤했다.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하고 중앙선을 넘어오기도 한다. 몇 번의 위험한 순간이 이어지자, 예상했던 것보다 위험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글에서는 건물 시설 관리와 같은, 좀더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가 가능한 기능을 배운 이야기를 다루려 한다.
버들치 작가
증권회사에서 33년 근무 후 퇴직하여 현재 기능인으로 인생 2 막을 살고 있다. 1965년에 태어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세 가지 운으로 위태롭게 살아왔다. 첫 번째 운은 짧은 학력으로 증권회사에 입사한 것이고, 두 번째 운은 33년간 한 회사를 다닌 것이고, 세 번째 운은 퇴직 후에도 소일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퇴직을 앞두고 주경야독으로 기술을 배웠으며 그 경험에 대해 네이버 '부동산 스터디' 카페에서 버들치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썼다. 그 결과물로 '버들치의 인생2막'(2023)이라는 책을 발간 했다. 단순하고 평온한 삶을 추구해 왔으며 앞으로 그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