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말, 너무 위험해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말, 너무 위험해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2-11-16

연구원에 다니던 시절, 남다른 통찰력과 설득력으로 동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A씨를 십여 년 만에 만났다. 그는 50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 현재 역이민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중이며, 그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3개월 동안 서울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A씨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는 듯이 말했다.


“이번에 보니까 집값 비싸지 않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 더 행복해 보이던데요.” 내가 말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그 이유가 뭘까요?”


A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우선 걸을 데가 많기도 하고 또 교통도 불편해서 많이 걷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저절로 건강해지고...., 무엇보다 그런 동네일수록 가까운 곳에 친한 사람이 많아서 외롭지도 않은 것 같았어요. 건강과 친구가 있으니 행복할 수밖에요.”




*아래 날짜를 클릭하시면 해당 기사로 연결됩니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어디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한가?’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한가?’ 라는 문제에 대해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지난 주에 나온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미국 NBC 뉴스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뉴스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과정 중인 라이언 드와이어 등의 ‘연 소득 12만 3천 달러(1억 6200만원) 이하의 사람들이 1만 달러를 받으면 그 돈을 받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행복감을 느낀다’는 실험 연구 결과가 소개되었다(2022년 11월 11일 조선일보).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에 대해 하버드대 소속 행동과학자인 애니아 야로세비치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거저 얻는 돈과 행복도의 상관관계에 대한 실험들이 계속 있지만 그 결과는 일정치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돈이 행복감에 마이너스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논문도 있다. 보즈 등이 2006년에 <사이언스>에 발표한 ‘돈의 심리학적 영향력’이라는 논문은 아홉 개의 실험을 통해 돈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였다. 이들이 돈이 행복감에 마이너스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돈이 개인주의를 부추기고 ‘자기 충족감’을 가져다주며, 공동체적 동기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에겐 친구가 많지 않고, 인간관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충족감이 나쁘다는 건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 자기 충족감 자체는 매우 좋은 것이다. 하지만 자기 충족감이 지나치게 높으면 남들한테 도움을 구하거나 남에게 의존하는 일이 줄어든다. 돈도 마찬가지. 돈이 많은 사람은 자기가 소중하게 추구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돈으로 다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큼 친구나 가족에 대한 기대가 적은 편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면서 혼자 놀고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게 되고, 지인들과도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난 너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라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보니 ‘너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라는 말은 엄청 위험한 말이다. 이 세상에 너 없이 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친구 없이 행복하기도 힘든 일이다. 일전에 상당한 부자로 알려져 있는 지인이 자기는 친구가 없어서 외롭고 행복하지 못하다는 하소연을 들었을 때, 기쁨을 나눌 친구 하나 없다면 돈과 성공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한 적도 있다. <나는 걷는다>라는 책으로 유명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예순이 되기 전, 올리비에는 30년간의 기자 생활을 끝내기 직전에 심각한 정도의 우울감에 빠졌고, 모든 걸 끝내버리자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우울감의 원인은 아내와 어머니의 죽음, 직장에서의 해고 등이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사라질 날짜까지 잡고 죽음을 준비하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먼 곳에서 살고 있던 조카가 전화를 걸어왔다.


“삼촌, 저랑 마르크랑 마갈리, 다 같이 삼촌 댁에서 연말을 보내고 싶은데, 우리 재워주실 수 있으세요?”


어찌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이 전화 한 통이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조카의 전화를 받은 후의 심정에 대해 올리비에는 이렇게 썼다.


“전화를 끊고 나자, 어둠은 한층 물러나 있었다. 난 아직도 무언가에 쓸모가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난 폐허처럼 엉망이 된 아파트의 가련한 꼬락서니를 돌아보았다. 이런 창고에서 그 아이들을 맞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밤을 새워가며 흙더미를 치우고, 벽을 새로 바르고, 도배하고, 장판을 깔았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내 작은 숙소는 제법 보여줄 만한 상태가 되었고, 자살 충동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2년이 지난 후에야, 그저 지나가는 농담처럼 조카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조카의 전화 한 통이 본의 아니게 자신을 삶에 붙들어두었노라고.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해서 ‘너 없인 살 수 없어.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며 징징대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에 한껏 몰입하고 즐기면서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필요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서로 연결되고 싶어하는 존재이다. 혼자서도 잘 노는 나도 신기한 경험을 할 때가 많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하얘졌던 머릿속에 다시 불이 켜지는 느낌, 대단히 중요한 대화를 나누거나 굉장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냥 누구랑 만나 차 한잔 마시면서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멈추었던 머릿속 태엽이 다시 돌아가고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그런 경험 말이다.


역시 인간은 누군가를 만나 뭔가를 나누며 살아야 행복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도 ‘너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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