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정신과 의사가 생각해 본 여행의 의미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80대 정신과 의사가 생각해 본 여행의 의미

글 : 이근후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2022-11-02

이해인 수녀님의 여행길에서 라는 시가 있다. 첫 소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삶은 늘 찾으면서 떠나고 찾으면서 끝나지' 쉽지만 간결하고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여행이라고 하면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님'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모르긴 하지만 그 여정이 바로 여행이 아닐까 싶다.




나는 어릴 때 여행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5분 거리면 갈 수 있고 교실에서 공부하다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에 가고, 그리고 공부가 끝나면 5분 거리의 집으로 되돌아 온 것이 내 어릴적 여행 동선의 전부다. 내가 외국에 나가 본 것은 1970년대 중반 일본 동경에서 열린 학회가 처음이다. 그때만 해도 외국에 나가기가 아주 힘든 시기였다. 절차도 복잡하고 외화를 아끼느라 정부에서도 확실한 이유가 아니면 그냥 여행은 여권을 내주지 않았다. 여행하면 생각나는 몇 사람이 있다. 철학자 칸트(Kant, 1724~1804)는 자기 집과 동네 골목길을 하루에 여덟 번 정도는 여행 말고는 멀리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많은 후학들은 그를 우주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으로 활발한 여행을 다닌 여행가라고 주장을 한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면 꼭 발로 걸어야 여행이 아닌것 같다.


 내가 아는 지인 가운데 한 분은 아내가 루프스라는 희귀한 질병을 앓고 병세가 악화되었는데 이분의 소망은 죽기 전에 가고 싶은 곳을 두루 여행하는 것이 소망이다. 직장에서 잘 나가던 내 지인은 아내의 청을 받아들여 사직을 하고 여행을 떠났다. 여행도 오지만 찾아다니는 그런 탐험 같은 여행이다. 한 두 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부부를 보면 환자인 아내는 건강한 모습이고 함께 갔던 남편은 오히려 환자처럼 보인다. 이런 여행을 틈만 나면 다녀 왔으니 세계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다. 그동안 심장이식 수술도 받는 등 고비가 있어서 주치의들은 오지 여행이 환자에게 무리라고 극구 말렸다. 주치의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나도 의사로서 권고하지는 않았으나 다녀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분이 병세가 좋아진 이유를 나 혼자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환자 본인의 간절하고 간절한 소망과 순애보 같은 남편의 내조가 치유의 핵심 에너지가 된 것이 아닌가 그런 상상을 해 보았다.




여행에 관한 한 내가 후회하는 일도 하나 있다. 나는 1982년을 시작으로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까지 매년 네팔을 찾았다. 목적은 등반에 있었으나 차츰 의료봉사로 바꾸고 또 내가 퇴직한 이후에는 작은 의료봉사와 문화 교류에 힘썻다. 이러는 동안 나는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를 여러 번 방문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돈독한 불자이시라 이 룸비니를 비롯한 부처님의 족적을 찾아 여행을 하신다면 참 행복할 것이라는 상상을 했으나 그땐 이미 연세가 많고 건강이 여의치 않은지라 여행을 권하지 못했다. 대신 내가 룸비니를 갈 때마다 룸비니를 상징할 수 있는 향이나, 염주 같은 것을 사다 드리면 많이 좋아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연세가 많고 건강이 좀 여의치 않더라도 잘 돌보면서 내 지인처럼 모시고 가셨드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후회다. 나는 의사로서 의학적인 측면만 내세워 여행을 만류했으나 그 순애보 같은 내 지인처럼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함께 룸비니를 다녀 왔다면 내 지인의 부인처럼 치유되는 결과도 혹시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다. 


이해인의 시처럼 '우리의 삶은 늘 찾으면서 떠나고 찾으면서 끝나지' 라는 말이 더욱 실감 난다. 어머니와 함께 늘 찾으면서 떠나고 늘 찾으면서 끝났다면 지금의 나의 후회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롤랑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왕복차표를 발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 번 떠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라고. 그러니 떠나자. 그 곳이 어디든. 인생의 여행은 편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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