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은퇴한 가장이 마침내 깨달은 가족에 대한 진실
글 : 이제경 / 100세경영연구원 원장 2022-10-06
기업경영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경제신문사에서 21년 동안 기자로 활동했고, 보험사에서 임원으로 10년을 일하면서 기업이 어떻게 흥망성쇠의 길을 걷는지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 요즘 들어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는 MZ세대(20~30대)와의 의사소통이라고 한다. 즉, MZ세대의 목소리를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회사는 엄청난 성장을 구가하는 반면, 여전히 ‘꼰대’들이 리더십을 틀어쥐고 있는 조직은 쇠퇴일로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XY세대)와 MZ세대의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를 고민하던 중 문득 ‘나의 가족은 안녕한가’에 이르게 됐다. 왜냐하면 내 자녀들이 바로 MZ세대이기에, 기성세대와 MZ세대의 갈등 원인과 치유책을 찾는 게 바로 나와 자녀들 사이에 놓여 있는 갈등을 봉합하는 일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엔 자녀와의 갈등이 존재하는지 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흑자 가계재정을 유지하는 것으로 아버지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진정한 의사소통이 무엇인지도 고민해보지 못했다. 자녀보다 더 많은 인생을 살았기에 부모의 판단이 늘 옳다고 믿었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자녀는 늘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식의 가부장(家父長)적인 사고 틀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31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실업자가 되면서 자녀와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없었던 갈등이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갈등을 이제서야 알아차렸던 것이다. 가부장이 아닌데 가부장이라고 착각한 것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여전히 가부장인 줄 알고 잔소리를 했기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집(家)에서는 아버지(父)가 우두머리(長)라는 의식이 얼마나 우둔하고 미련한지를 실업자가 되고 나서야 깨우쳤다. 실업자가 된 이후 나에게 주어진 가장 값진 선물은 내가 가부장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갈등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다. 갈등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해결책이었다. 갈등은 없앨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갈등의 존재를 인식하는 게 어떻게 갈등의 해결책일까. 우선 갈등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해 보자. 갈등(葛藤)이란 단어는 칡(葛)과 등나무(藤)의 특성에서 연유했는데, 칡은 오른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성장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한쪽은 오른쪽으로 다른 한쪽은 왼쪽으로 올라가니 어떻게 되겠는가. 얽히고 설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들 나무가 죽지 않고 성장한다는 것은 곧 얽히고 설킴의 연속이다. 성장 방식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게 갈등 치유의 핵심이지 않을까. 가정에 갈등이 있는 게 당연하고, 갈등이 없다면 가족 자체가 존재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게 가정 행복의 출발점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한다고 해도 여전히 부모의 판단이 옳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가정의 불화와 갈등이 부모의 판단이 늘 옳다는 아집에서 비롯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부모의 판단이 늘 옳은 것일까. 문제 해결 능력의 근간이 되는 지식-경험-지혜를 솔직하게 비교해 보자. 부모세대보다 자녀세대의 지식이 더 우월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서 자란 자녀들의 지식 습득량은 부모 세대를 훨씬 뛰어 넘은 지 오래다. 경험은 어떤가. 초지능혁명이라 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부모세대의 경험은 아쉽게도 점차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부모의 경험이 자녀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더러 되레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유일하게 경쟁우위에 설 수 있는 무기는 지혜일 것 같다. 부모세대가 갖고 있는 지혜를 자녀들이 잘 흡수하는 게 관건이다. 내가 자녀들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지혜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모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지혜의 산물이지 아닐까 싶다.
나의 가족은 안녕한가. 100세 인생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잊지 않고 되짚어봐야할 질문이다.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
‘매경이코노미’ 편집장을 역임하기까지 21년 동안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했고, 라이나생명에서 10년 동안 전무이사로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와 최고고객책임자(CCO)로 일했다. 주경야독을 통해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경희대와 숙명여대에서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현재 ㈜에코마케팅 감사, 100세경영연구원 원장(비상임)으로 있다. 저서로는 『인생을 바꾸는 100세 달력』, 『All Ready? 행복한 은퇴를 위한 모든 것(대표저자)』, 『스타 재테크(공저)』, 『잘 나가는 기업, 경영비법은 있다(공저)』 『재테크박사』 등이 있다. 가치 있는 삶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개인의 사회책임(ISR) 지수’를 창안하기도 했다. 필자 이메일 주소: happylogin1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