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어령 선생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얻은 기막힌 통찰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故이어령 선생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얻은 기막힌 통찰

글 : 이근후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2022-10-04

존경이라는 단어도 있고 사랑이라는 단어도 있다. 사람들은 이 단어를 한 통 속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존경받는 사람이면 사랑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고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존경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좀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단어 뜻을 찾아본다. 존경은 ’우러러 받듦‘ 이라고 되어 있고 사랑은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이라고 적혀있다. 이 둘을 비교한다면 같은 것이 아니다. 존경은 받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고 사랑은 받지만 존경은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차이는 그 단어가 지니는 뜻만으로도 구분이 된다.




우리 내외는 이어령 교수 댁을 찾아 병문안을 다녀왔다. 이 교수는 단정한 옷차림으로 소파에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 우리 내외를 맞이하셨다. 병마로 인한 고통이 아주 심할텐데도 불구하고 흐트러짐이 없다. 우리는 이 교수와 1시간 남짓 모처럼 좋은 대화를 나누고 왔다. 최근 작가 김지수 선생이 낸 이어령 교수와의 인터뷰를 싫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란 책이 있다. 그 책속에 나온 대화 가운데 내 눈길을 끈 부분이 있는데 이를 그대로 옮겨 적어본다. 


작가 김지수 선생이 질문했다. “문제적 인간이셨죠.” 이 날카로운 질문에 대답한 이어령 교수의 고백은 이렇다. “그래. 그래서 사는 내내 불편했지. 아이 때도 어른이 되고서도, 이상한 사람이다. 말꼬리 잡는다, 얄밉다는 소리만 들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야. 나 좋다는 사람 많지 않아. 모르는 사람은 좋다고들 하지. 나를 아는 사람들, 동료들, 제자들은 나를 다 어려워했어. 이화여대 강의실에서 강의하면 5~6백 명 좌석이 꽉꽉 차도, 스승의 날 카네이션은 다른 교수에게 주더구만. 나한테는 안 가져와. 허허.” 그의 말은 존경은 받았지만 사랑은 받지 못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나는 특별히 이 대목에 주목했다이 교수가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내 이름값이 이렇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뜻인데, 심리학에서는 이런 알아차림을 통찰(insight)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생로병사의 진리를 찾기 위해 6년 동안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으니 불교에서는 깨달음이라고 한다.




이어령 교수의 통찰이나, 부처님의 깨달음이나 넓은 의미에서는 같은 것이다. 수직적으로 비교할 문제는 아니지만 수평적으로 비교한다면 문제의 크고 작음이나 무겁고 가벼운 것이 다를 뿐 알아차림에 이르는 과정은 똑같다. 그래서 이 교수의 통찰을 나는 깊이 있게 새겨 들은 것이다. 이어령 교수님의 이런 통찰이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교직에 몸담고 있을 때였으니 우리 모두 비슷한 시기에 경험했던 상황이 아닌가 이루어 짐작된다.


같이 이화대학에서 근무한 교수 가운데 서광선 교수라고 기독교학과 교수가 계셨다. 김옥길 총장님이 그를 불러 어떤 보직에 일할 수 있는 좋은 교수를 한 사람 추천하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추천을 했더니 한 마디로 그 사람은 안돼라는 반응이라서 그 이유를 물어 보셨단다. 이유는 그 사람은 너무 똑똑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 똑똑한 것도 걸림돌이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 총장님에게 되물었단다. “총장님 저도 똑똑한데요” 이 말씀을 들은 총장님은 “그러니까, 당신도 조심해” 서광선 교수님은 이 말씀을 듣고 존경과 사랑이 어떻게 다른지 진작 통찰했을 것 같다. 그는 이어령 교수와는 달리 학생들로부터 꽃송이를 많이 선사 받는 교수로 이름나 있다. 



사전에서 설명하는 존경과 사랑의 뜻이 다르지만 나는 다른 의미에서 이 두 단어를 구분하고 싶다. 존중은 사회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가치 테두리 속에서 한 점의 흐뜨러짐이 없이 행동한다면 존경이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경우 틀에 갇혀 있으면 사랑받기 어렵다. 존경 받으려면 흐트러짐이 없어야겠고, 사랑 받을려면 흐트러짐이 있어야 한다. 이런 극과 극의 다른 성향을 지닌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두 단어가 같거나 비슷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나는 이 두 단어를 놓고 꼭 하나만 선택하라면 사랑 받고 싶다. 존경이나, 사랑이나 모두 내가 받고 싶다고 받아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받고 싶다고 한들 주는 사람이 없다면 공염불이 될 것이다.


내가 일생을 살면서 사랑 받을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빈말이 아닌 사랑 받고 싶어 “자기야”하고 불러본다. 하지만 돌아오는 쓸쓸한 메아리의 답은 사랑이 아닌 핀잔이다. 그래서 나는 볼멘소리로 얼마 전에 타개한 탁닛한 스님(1926년~2022년)이 하신 말씀 가운데 사랑은 “진정한 사랑에는 자존심이 없다. 사랑 받는다는 것은, 나를 존재 그대로 인정받는 것, 사랑하는 방법도 모른 채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할 뿐이다.”라고 스님의 말을 인용하여 강하게 나름의 주장을 펼치면서 사랑을 받고 싶은 내 마음의 애뜻함을 읍소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욕심 같아서는 한 없는 사랑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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