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세션] 셰익스피어도 울고 갈 재벌 가족의 막장 상속 전쟁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석세션] 셰익스피어도 울고 갈 재벌 가족의 막장 상속 전쟁

글 : 김봉석 / 작가 2022-09-26

지난 9월 12일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은 드라마 부문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총 6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강력한 경쟁작 HBO의 <석세션>은 작품상과 각본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2018년 1시즌을 방영한 <석세션>은 2019년에 각본상과 주제가상을 받았고, 2020년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7개 부문에서 수상한 이력이 있다. 매 시즌마다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석세션>은 가상의 미디어 재벌 웨이스타 로이코를 소유한 로이 가문의 이전투구를 그린 기업, 가족 드라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건 로이는 캐나다로 이주했다가 미국에서 웨이스타 로이코를 세웠다. 가짜 뉴스와 선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비난을 받지만 시청률과 영향력으로는 단연 최고인 ATN을 비롯하여 방송국과 영화사, 테마파크와 유람선 등을 세계 곳곳에 소유한 다국적 미디어 기업이다. 로건은 영국 출신의 아내와 이혼하고, 레바논 출신의 마샤와 재혼했다.


로건의 자식은 모두 넷이다. 아들 셋과 딸 하나. 자수성가했고 불같은 성격의 로건 밑에서 성장한 자식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에 굶주려 있다. 거대한 사회적 성취를 이루었으나 성격이 나쁜 아버지의 자식들은 선대의 그림자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아버지는 자식의 성취를 대체로 사소하게 여기고, 자식은 아무리 업적을 쌓아도 아버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로건의 자식들도 전형적이다. 큰아들 코너는 사업에서 멀어져 뉴멕시코에 커다란 저택을 짓고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다. 한때 아버지 밑에서 일했지만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 둘째 아들 켄달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웨이스타의 회장이 될 예정이다. 몇 년 전 약물중독으로 요양원에 들어갔었고, 아내와 아이들과 별거를 하게 되었다. 셋째 아들 로먼은 대인관계는 뛰어나지만 개망나니다. 한때 LA의 영화사를 맡았지만 별다른 실적을 보이지 못했다. 막내딸 시브는 정치계에 뛰어들어 선거전략가로 좋은 경력을 쌓았다. 언제든 웨이스타로 돌아와 권력을 잡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로건은 80회 생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켄달에게 물려주려던 회장직을 유지한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회사에서 마샤의 지분을 강화하겠다고 말한다. 켄달은 화를 내지만 소용이 없다. 켄달은 로먼과 함께 부회장을 맡는다. 며칠 후, 로건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다행히 의식은 깨어났지만, 요양이 필요하다. 켄달은 로건이 회복하기 전에 인수, 합병 등으로 실적을 올려 회장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러나 몸이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로건은 무리해서 돌아오고, 당황한 켄달을 모욕한다. 켄달은 쿠데타를 기획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펀드를 끌어들여 적대적 인수를 하고 아버지를 몰아내려는 것이다. 1시즌의 내용이다.


2시즌은 켄달이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와, 자신이 기획했던 적대적 인수를 되돌리기 위한 과정을 그린다. 와중에 25년 전 유람선 사업부에서 일어났던 성범죄와 이주민 노동자 학대 그리고 조직적 은폐 등이 폭로되어 로이 가문은 궁지에 몰린다. 3시즌에서, 켄달은 다시 아버지와 맞선다. 하지만 반항의 결말은 짐작할 수 있다. 왜소한 자식들이 넘어서기에 로건 로이는 너무나 엄청난 거인이다. 자식들 모두가 힘을 합쳐 싸워도 될까 말까인데, 아버지의 고함 한 마디에 눈을 내리까는 자식들은 아버지와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너무 나약하고 비겁하다.


0.1%의 재벌 가족을 다룬 <석세션>은 3시즌이 방영되며 최고의 드라마로 찬사를 받았다. <석세션>은 단순하게 재벌 가족들이 벌이는 사랑과 갈등, 사건, 사고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웨이스타라는 미디어기업이 경제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지금 웨이스타는 세계 최고의 미디어 기업이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로건도, 켄달도 미래는 테크 기업의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방송과 신문 등은 저물어가고, 전통적인 미디어로 전달되던 콘텐츠는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대중을 만난다. 웨이스타의 발목을 잡는 유람선 사업부의 부패는 과거 세대의 추악한 관행이었다. 모두 알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작지만 중요한 범죄들이다. 웨이스타는 단지 가족의 권력 다툼을 넘어 미래에도 거대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정치와 돈, 미디어의 추악한 결합도 보여주면서.




<석세션>을 제작한 제시 암스트롱은 과거에 폭스뉴스와 20세기 폭스를 소유한 호주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전기영화를 기획하다 엎어진 적이 있었다. <석세션>을 보고 있으면, 머독의 영화를 준비하면서 모으고 정리했던 자료가 이번에 쓰였을 것이라고 넘겨짚게 된다. 로이의 방송국 ATN은 누가 봐도 폭스뉴스다. 1995년 시작한 폭스뉴스는 14년 연속 케이블 뉴스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미국의 뉴스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폭스뉴스는 공정함이나 객관성보다는 소수의 열광적인 지지층을 결집하는 뉴스를 만들며, 미국의 보수층 유권자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국이 되었다. <석셰션>에도 공화당 대선 출마자들이 로건에게 접근하여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석세션>이 폭스뉴스를 그대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폭스뉴스를 주도한 것은 사장 로저 에일스였고, 머독이 직접 뉴스의 방향성이나 내용에 개입하지 않았다. 로저 에일스 폭스뉴스 사장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석세션>은 실제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탐욕을 참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펼친다. 감히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오델로>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겠다. 1시즌 1회, 오프닝은 켄달이 출근하는 장면이다. 운전기사가 모는 고급 승용차 안에서, 켄달은 헤드폰으로 힙합을 듣는다. 거대 기업의 CEO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랩을 따라 부른다. 켄달은 아버지가 정해놓은 규칙과 틀을 부수고 싶다. 반항을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켄달은 항상 무너진다. 그런 아들을 보며 로건은 말한다. ‘차라리 책을 쓰지 그랬니. 스포츠카를 몰던가.’


로건은 악당이고, 그의 자식들은 모두 야비한 겁쟁이다. 엄청난 돈이 있으니 누구에게나 안하무인이고 어디서나 잘난 척을 하지만, 로건 앞에만 서면 꼬리를 말고 눈을 내린다. 켄달과 형제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아버지가 내려주는 권력을 사이에 두고 언제나 다투며 시기, 질투에 사로잡힌다. 기회만 있으면 서로 물어뜯고,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 자신이 되기를 열망한다. 켄달을 위시하여 <석세션>에 나오는 재벌들 태반은 역사 속 인물의 사건을 인용하며, 자신을 위인의 상황에 비유한다. 위대한 망상이다. 로건이 말하듯,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그래서 돈을 번 사람일 뿐이다. 세상을 바꾸거나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읽지 못하는 그들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 기업이 결국 테크 기업에 밀려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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