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말 꼴보기 싫은 친구, 손절 할까요? 말까요?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이젠 정말 꼴보기 싫은 친구, 손절 할까요? 말까요?

글 : 조민희 / 작가 겸 칼럼니스트 2022-09-16

아까부터 자꾸 아내의 기색을 살피는 남편에게, 현정 씨가 물었습니다. 남편은 빙그레 웃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은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이지만, 현정 씨는 그쯤에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장면과 이런 대사가 낯설지 않습니다. 결혼 전, 그녀의 친정 엄마가 아직 오십대일 때, 동창 모임에 나갔다 오셔서는 핸드백을 소파에 툭 던지며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죠. ‘에이, 그놈의 동창모임 이제 나가지 말까보다!’ 좋은 기분으로 나갔다가 마음 상해서 돌아오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고, 엄마는 말했었지요. 자식 자랑, 남편 자랑 늘어놓는 친구, 여럿 앞에서 한 친구를 면박 주는 친구, 눈치 없이 아픈 부분 건드리는 친구... 예전엔 안 그러던 애들이 왜 자꾸 주책바가지에, 민폐덩어리가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그 생각이 나자 현정 씨는 마음이 더욱 착잡해졌습니다. 예전에 엄마가 하던 말을 그대로 한다는 건, 어느새 나도 그 만한 나이가 됐다는 뜻이겠지요. 오늘 만난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마도 지금쯤 식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정이 걔, 전엔 안 그러더니 변했더라.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비면 어째? 그렇게 옹졸한 애가 아니었는데...


맞습니다. 예전의 현정 씨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옹졸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오늘 그렇게 속 좁은 언행을 했을까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오늘 모임에서 대화의 선을 넘은 사람이 현정 씨 하나 뿐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다들 조금씩 아슬아슬한 발언들을 쏟아냈었지요. 아직 독신인 친구 앞에서, 시집 안 간 노처녀 시누이가 골치라고 험담을 한다든지, 미술 전공한 친구 앞에서, 요즘은 공부 못하는 애들이 미대가는 거 아닌가보더라고 말한다든지... 너나 없이,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 하는 기능이 예전 같지 않았지요. 어쩌면 너무 오랜만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대화의 감을 잃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코로나 때문에 못 만나다 거의 2년 만에 마주앉고 보니 반가운 마음은 2배였지만 대화는 예전처럼 잘 굴러가지 않았던 겁니다. 게다가 못 만나고 그리워만 하던 2년간 흐릿하게 잊고 있었던 서로의 단점들이 갑자기 눈에 보였던 겁니다. 그래, 저 친구는 원래 저렇게 식탐이 있어. 쟤는 매번 저렇게 지나치게 명품으로 감고 나오고, 얘는 또 음흉하게 자기 얘긴 절대 안 하지. 그리고 쟤, 미연이는....




현정 씨는 유독 친구 미연에게서 나오는 말들이 듣기 불편했습니다. 공부 잘하고, 예쁘고 야무진 딸을 둔 그녀는 딸 자랑을 넘어, ‘딸 부심(자부심)’이 넘치는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현정 씨가 첫째에 이어 둘째도 아들을 낳았을 때 미연은 시중에 떠도는 지겨운 농담을 굳이 들려주었습니다. 딸 둘 아들 하나는 금메달, 딸 둘은 은메달, 딸 아들은 동메달, 아들 둘은 목메달이라 하더라고 말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잘난 아들은 나랏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진 백수 아들은 내 아들이라는 더욱 듣기 싫은 소리까지... 웃자고 하는 말이니 그때마다 같이 웃긴 했지만, 현정 씨는 갈수록 속이 편치 않았습니다. 애들이 자라 중고생이 되면서, 미연의 딸은 우등생의 길을 가고, 현정 씨의 아들들은 그 근처도 넘볼 수 없는 평범의 길로 들어서자 현정 씨의 불편한 속은 더욱 불편해졌습니다. 잘난 아들은 나라에 바치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에게 빼앗긴 뒤 허탈한 웃음을 웃을 줄 알았는데, 이러다 백수 아들을 캥거루처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가 되려나 싶으니 그 농담이 더 이상 농담으로 여겨지지 않았지요. 그나마 몇 년 못 만나는 사이에 다 잊고 있다가 이번 만남에서 그 불편한 느낌을 다시 받은 겁니다. 그런 속도 모르고, 미연은 특유의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위태로운 농담을 이어갔습니다. 아직 결혼 안 한 친구 선혜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독신인 친구에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현정 씨의 귀에는 어쩐지 아들만 키우는 그녀를 에둘러 겨냥한, 딸 가진 엄마의 말로 들렸습니다. 어째서 남자는 다 구제불능의 존재냐고, 그러는 너는 좋은 신랑 만나 지금껏 잘 살아오지 않았냐고 한 마디 해주고 싶은 걸 꾹 참는데, 미연은 그 속도 모르고 이런 말까지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남자아이를 둘이나 키우고 있는 현정 씨는 그 말도 들어넘기기가 불편했는데, 마침 다른 친구 유정이가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미연은 물러서지 않았지요.




거기까진 거슬려도 참았습니다. 요즘 세태가 그렇기는 하니까요. 그런데 미연의 바로 다음 발언은 콕 집어 현정 씨를 타겟으로 날아왔습니다.




그 역시 미연 특유의 시니컬한 농담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현정 씨에겐 당나귀의 허리를 부러뜨리는 지푸라기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녀는 미연에게 말했습니다. 




입을 뗄 때는 농담으로 받아치려던 것인데, 말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현정 씨의 목소리는 본인의 귀에도 노여움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요. 미연은 당황한 표정이었습니다. 마음 여린 선혜가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아무 말이나 더듬더듬 중얼거렸지만 그 친구가 하는 말은 현정 씨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미연의 놀란 표정을 보니 이상한 쾌감이 느껴져 현정 씨는 나머지 말도 다 해버렸지요.




그런 가시 돋힌 말들을 쏟아내며, 현정 씨는 스스로에게 놀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청산유수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던가? 미리 원고를 써온 사람 같네. 그러나 조목조목 따지는 말투와 달리 그녀의 가슴 속은 파도가 일렁거리고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어색해졌고 친구들은 화제를 돌리려고 이 말 저 말 꺼냈지만, 그런 얘기들은 그녀의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지요. 결국 그 모임은 예정보다 이른 시각에 파했습니다. 무슨 말로 인사를 나눴는지도 지금 현정씨는 기억이 안 납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내려야 할 역이 멀지 않았던 것만 기억이 납니다. 그제야 현정 씨는 오늘 있었던 일을 이성적으로 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쏟아낸 날 선 말들이 고스란히 떠오르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내가 왜 안 하던 짓을 했지? 웃고 넘어가면 되는 농담이었는데...’ 그러나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일로 미연과의 사이가 어색해지더라도, 언젠가 한번은 쏟아냈어야 할 말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깟 동창모임이 뭐라고 내가 불편한 심기를 감추며 친구의 나쁜 농담에 매번 웃어주어야 한단 말인가? 모임이 뭐라고...!


사실 그 모임은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모임은 아닙니다. 지난 이십 칠년 간 현정 씨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믿음직했던 모임이 바로 그 모임이었으니까요. 현정 씨와 미연, 유정, 선혜는 고등학교 동창들입니다. 선혜와는 고교시절부터 이미 절친이었고, 미연과 유정은 같은 대학 진학 이후 더욱 가까워졌지요. 스무 살 때부터 넷은 자주 어울렸고, 연애와 직장생활, 결혼과 출산을 서로 지켜본 사이입니다. 생일마다 가장 먼저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친구들이고, 아플 때는 좋은 병원을 알아봐주거나 함께 기도를 해주는 친구들이니, 현정 씨는 누구에게든 그 친구들을 자랑하곤 했습니다. 평생 힘이 되는 친구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번 일로 그녀의 마음은 착잡해졌습니다. 우리가 과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이가 맞을까?



확실히, 스물 몇 살 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서로 챙기고, 힘이 되어주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마음이 통했습니다. 서로에게 쉽게 짜증을 내거나 툭탁거리곤 했지만, 돌아서면 곧 풀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편안한 친구관계가 세월과 함께 조금씩 변해갔던 겁니다. 고만고만하던 여대생들이, 각자의 인생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새 그 위치나 방향이 제각각이 되었습니다. 아들 엄마인 현정의 위치에서 보는 세상과, 딸 엄마인 미연의 위치에서 보는 세상이 다르듯, 독신의 캐리어우먼인 선혜가 달려가는 방향과 고부갈등으로 위장병을 앓는 전업주부 유정이 바라보는 방향이 엇갈렸지요. 그런 차이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녀들은 언제부턴가 말을 조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미연이가 거친 농담으로 자극해도 그 누구도 맞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거리는 멀어져갈지언정 표면적인 부딪힘은 절대 없었지요. 어쩌면 현정 씨는 그 괴리감을 지우기 위해 더욱 열심히 미사여구를 남발했는지도 모릅니다. 너희들을 응원한다, 이해한다, 부럽다, 멋지다...


현정 씨는 이제야 좀 알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런 식의 관계에 꽤나 지쳐 있었던 겁니다. 친구가 좌충우돌 룰을 어긴다면, 나만 애써 충돌을 피해 다닐 필요는 없다 싶었던 겁니다. 그러다 모임이 깨지면 어쩌나 싶지만, 한편 생각으로는 깨지면 깨지는 거지 싶기도 합니다. 사실 그렇게 아름답고 훈훈하기만 한 모임도 아닙니다. 친구의 궂은 일을 걱정하다가도 내 식구한테 아주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 친구 일은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어쩌다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수선을 떨며 축하메시지를 보내지만, 돌아서면 자신의 처지가 비교되어 혼자 씁쓸해하지요. 동창모임에 다녀오면 현정 씨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남편의 말이 결국 무슨 뜻일까요? 친구의 궂은 일에 내 안전을 다행스러워하고, 친구의 좋은 일에 내 초라한 일상을 짜증스러워한다는 뜻 아닐까요? ‘그깟 동창 모임 이제 그만 나갈까?’ 라는 현정 씨의 혼잣말은 100프로 농담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전의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을 느낄 수 없다면 굳이 그 친구들을 꽤나 자주, 그것도 모임을 통해 만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렇게 두부 모 자르듯 명쾌한 결론을 낼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날 밤 현정 씨는 일부러 엄마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엄마와의 카톡방에 오늘 일을 슬며시 비쳤지요. 엄마라면, 미주알고주알 얘기하지 않아도 딸의 기분을 이해해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현정 씨는 마치 응석을 부리듯, 예전에 엄마가 하던 그 말을 해버렸습니다.




엄마는 한동안 답장이 없습니다. 하긴, 무슨 말을 할까요? 오십을 바라보는 딸에게, 친구랑 싸웠냐고 꼬치꼬치 묻기도 뭣하지요. 괜한 소리를 해서 엄마의 잠자리만 심란하게 한 것 같아 후회가 되었습니다. 현정 씨는 얼른, 이불 덮고 쌔근쌔근 잠든 아기의 이모티콘을 날려 보냈습니다.




현정 씨는 대답 없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식탁등을 껐습니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작은 아이와, 공부한다고 아직 책상에 앉아 졸고 있는 큰아이를 한 번씩 들여다보고, 그녀 자신도 잠들 준비를 했지요.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예감 때문에, 그녀는 더욱 철저히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문단속, 가스단속, 휴대폰 단속..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전화기에 반짝 빛을 내며 새로운 메시지를 알립니다. 아, 엄마...




그 동안 엄마는 딸에게 보낼 장문의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던 겁니다. 느리고 투박한 손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은 글이 이제야 딸의 휴대폰에 도착했습니다. 현정 씨는 엄마의 메시지를 얼른 읽어 내려간 뒤, 천천히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아, 엄마...


엄마의 메시지는 딸에게 이런 얘길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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