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덤인가? 80대에 돌아보니 덤이더라
글 : 이근후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2022-08-02
덤이라는 우리 말이 있다. 뜻을 찾아 보면 '물건을 팔고 살 때, 제 값어치의 물건 외에 다른 물건을 조금 더 얹어 주고받음'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인생이 덤이라고 하니 누가 나에게 어떤 덤을 주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은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생긴 의문이다. 인생은 덤이란 말이 언젠가 누구로부터 시작했을 말인 것 같은데 그 오리지날은 모르겠다. 여하튼 '인생이 덤'이라고 말한 것을 숱하게 듣기 시작한 것은 내가 대학교에 입학 하고 나서부터이다.

의예과 때 독일어를 배웠는데 이 독일어를 가르치는 교수님이 한솔 이효상 시인이였다. 그 분과 나의 인연은 예과 시절 이루어졌지만 인연이 특별해진 것은 학교 내 동아리인 시 문학 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지도 교수로 한솔 선생을 모시게 되면서고 교외 활동에서는 경북 학생 산악연맹을 만들어 회장님으로 모셨던 것이 인연이 되어 선생님이 타개할 때까지 개인적으로 아주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 뵙는 인연이 되었다. 그 교수님으로부터 처음 인생은 덤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도 인생이 어떻게 덤이 될 수 있을까 궁금했지만 이유를 물어보지는 못했다. 내가 교수님의 '인생은 덤'이라는 말에 선뜻 동의하지 못한 이유는 순전히 의학적인 지식에 근거해서였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는 아주 희귀하고, 처절한 경쟁을 통하여 이 세상에 나왔다고 믿고 있었기에 덤이라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의학적으로 설명을 드리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런지 모르겠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부모님의 몸을 의탁하여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부터 희귀한 인연인 셈이다.
우리가 한 생명체로서 태어날 수 있는 과정을 보면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난자를 생산하여 수란관으로 내보낸다. 이 난자는 단 3일 밖에 살지 못한다. 아버지의 정자는 한 번의 부부 생활을 통하여 사정되는 정자의 양이 물경 3억5천 마리이다. 이 3억 5천 마리가 자궁 경부에서부터 난자가 있는 수란관까지 25cm의 거리를 필사적으로 뛰어 제일 먼저 도달한 정자만이 난자와 결합해 수정란이 되고, 수정란이 자라 태아가 되고, 태아가 자라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부부 생활도 한 번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생을 통하여 수 없는 부부 생활 가운데 꼭 난자와 정자가 합쳐질 수 있는 날 만이 수정란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인생은 덤'이라기 보다는 처절한 경쟁의 승리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생명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해보면 인생은 태어남 자체가 덤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저세상에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 가겠는가?"
태어나고 싶어 처절한 경쟁을 통하여 난자를 만나는 것을 보면 "누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느냐" 라는 말 또한 내게는 모순처럼 들린다. 한솔(이효상,1906~1989)선생은 교수 생활을 하다 4.19이후 참의원에 당선되어 예결 위원장도 지내신 분이고 5.16이 나자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장을 지내신 정치인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교수님은 나에게는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문학 동아리의 지도 교수이자 산악회의 회장과 같은 인연으로 일생 동안 곁에 있었으니 정치적으로 동행한 적은 없지만 문학이나 산을 통해서는 일생동안 동행한 은사님이시다.
처음 한솔 선생으로부터 '인생은 덤'이다 라는 말을 듣고 의학적으로 근거를 갖고 동의하지 않았으나 그 분은 성실한 카톨릭 신자이시고 영원을 믿는 분이라 덤이란 말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덤이라는 것을 받으면 공짜 개념이 생긴다. 우리 속담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는데 양잿물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죽음에 이룰 수밖에 없다.
한솔 선생님은 문학이나 산악에 관한 환담을 나눌때면 의뢰히 "인생은 덤이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덤으로 받은 삶을 헛되이 살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러니 세속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덤의 의미만으로는 해석 되어지지 않는 많은 부분을 선생님께서는 가르치신 것이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되돌아 보면 한솔 선생님이 말씀하신 덤의 뜻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주장한 것은 "3억 5천 마리의 처절한 경쟁이 어찌 덤이 되어 질 수 있겠는가"였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자주듣고, 나 나름 경험을 하면서 되돌아 보니 그 말씀이 인생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히 덤은 맞는것 같다. 그런 처절한 경쟁을 하도록 기회를 준 것이 바로 덤이 아니겠는가?라고 내 생각을 폭 넓게 생각해 보았다.
선생님이 하신 덤이란 말씀 끝에는 항상 그 덤을 가치있게 사용하라는 말을 붙이셨다. 우리가 덤을 얻으면 세속적으로 제일 많이 허비하는 것이 쾌락을 위한 낭비다.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은 삶을 퇴락시키고 가치 없는 삶으로 만든다. 그러니 이를 진작 알고 경계하신 말씀을 후학들에게 전해주신 것이 아닐까?라고 이해하기까지 상당한 세월이 걸렸다.
나는 초청 강연이나 글을 쓸 때도 한솔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생은 덤'이다란 말씀의 뜻을 원영하여 다른 말로 전해 주기를 즐긴다. 정말 인생은 덤이다. 덤을 가치 있게 사용한다면 그 가치 있는 결과를 통하여 또 다른 덤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세심정이 바라다 보이는 창 밖에 하얀 눈이 사락사락 내린다. 이것도 나에게는 덤이다. 어제는 볼 수 없었지만 오늘을 살았으니 이 아름다운 광경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오늘 또 하나의 덤을 지금 가슴에 품어 본다.
이근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퇴임 후 아내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하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요 저서로는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