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매버릭] "나의 시대는 언젠가 끝나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글 : 김봉석 / 작가 2022-07-26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탑 건’ 아카데미에 들어간 피트 ‘매버릭’ 미첼 대위는 최고의 실력을 지녔지만, 소소한 말썽을 계속 일으킨다. 영화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천재적이지만 조직, 동료와 불화하는 천방지축 캐릭터다. 보통 상업영화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지만 제멋대로인 캐릭터가 우정 그리고 집단의 중요함을 결국 깨닫고 함께 목표를 이루는 결말로 끝난다. 1986년에 개봉한 <탑건>이 대단한 화제작은 아니었다. <탑건>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였다.
그럼에도 <탑건>을 지금도 기억할 이유는 많다. 80년대의 스타이면서. 지금도 최고의 스타로 남아 있는 배우가 톰 크루즈 말고 누가 있을까. 연기파 배우들은 여전하지만 스타로서는 톰 크루즈가 유일하다. 당시 최신 전투기인 F-14기를 몰면서 하늘을 날아 전투를 벌이는 <탑건>의 액션 장면은 밀리터리 마니아와 많은 남자 관객을 열광시켰다. <탑건>의 감독은 <크림슨 타이드>, <스파이 게임>, <트루 로맨스> 등의 걸작을 만든 토니 스코트다. CF를 연출했던 경력의 토니 스코트는 감각적으로 멋진 영상을 잘 만드는 감독이었다. 매버릭과 찰리가 데이트를 할 때, 베를린의 달콤한 <테이크 마이 브레스 어웨이>가 흐르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22년, 매버릭은 해군의 전설적인 현역 파일럿이다. 실제 전투에서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시킨 파일럿. 동기들은 사령관이 되고, 제독이 되었지만 별을 달지 않고 여전히 현역이다. 마하 10에 도전하는 테스트 파일럿 매버릭은 명령에 불복하다가 군복을 벗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기회가 남았다.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젊은 파일럿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탑 건’ 아카데미의 교관으로 돌아간다.
지난 6월 22일 미국과 한국에서 개봉한 <탑건>의 속편 <탑건:매버릭>은 전 세계에서 12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렸고, 한국에서는 600만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다. 흥행이 보장되는 톰 크루즈가 출연하는 액션영화이며, 유명한 오리지널이 있으니 성공은 당연하지만, 이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탑건:매버릭>은 무엇보다 톰 크루즈의 영화다. <로스트 라이언즈>, <작전명 발키리>, <나잇 앤 데이> 등에서 주춤했던 톰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직접 스턴트 연기까지 해내면서 다시 최고 액션 스타 자리에 올라섰다. 환갑의 나이에도 톰 크루즈는 청년 못지않은 몸과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탑건:매버릭>에서는 직접 전투기를 조종하여 촬영했다. 아무것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배우들이 촬영한 후,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하여 엄청난 액션 장면을 만들어내는 특수효과가 주류가 되었음에도, 톰 크루즈는 여전히 올드 스타일의 액션을 고수하고 있다. 톰 크루즈가 지금 찬사를 받는 이유다.
20, 30대의 파일럿들과 매버릭이 해변에서 함께 공놀이를 하는 장면이 있다. 젊은 배우들은 이 장면을 찍기 전에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한다. 톰 크루즈의 몸과 비교가 될 것이기에, 엄청 근력 운동을 하고 식사 조절을 하면서 몸만들기에 주력한 것이다. 톰 크루즈의 몸을 보면서, 몸을 쓰는 액션 연기를 보면서 가장 큰 쾌감과 동질감을 얻는 것은, 40대 이후의 장년층이다. 반드시 톰 크루즈 같은 몸을 가질 필요는 없다. 60의 나이에도 20, 30대 청년들과 몸으로 겨룰 수 있는 정도의 체력이 가능하다는 것을 ‘대표’ 선수가 보여주면 되니까. 일종의 대리욕망이다. <탑건:매버릭>의 대성공은 무엇보다 40, 50대의 추억과 욕망을 소환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탑건:매버릭>을 보면서 추억에 사로잡히는 것은 부정적이라 할 수 없다. 60의 나이에 톰 크루즈 같은 멋진 육체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차피 극소수만이 가능한 일이다. 매버릭이 여전히 해군에서, 파일럿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탑건:매버릭>은 단순하게 ‘매버릭’을 찬양하지 않는다. 지금 장년층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정형화한다면, 조직을 운영하는 관리자의 길이냐, 실무에 뛰어난 전문가냐, 라고 할 수 있다.
매버릭은 관리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타입의 인간이다. 불합리한 명령을 받는다면 어떻게든 거부하거나 피할 방법을 생각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상사의 명령을 못 들은 척하고 마하 10에 도전한 매버릭은 결국 시험기를 부수고 만다. 현실이었다면, 아마 군법회의에 넘겨졌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는 매우 필요하지만, 태평성대의 조직에서는 문제가 많은 타입. 그래서 <탑건:매버릭>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위험한 임무를 내세운다. 매버릭이 없었다면, 애초에 성공의 가능성이 없는 작전이다. 매버릭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드는 인간이다. 실전에서는, 시시각각 상황이 바뀌는 순간에는 반드시 임기응변이 필요하고 결단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식적인 관료라면, 위험한 임무에서도 반드시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막무가내로 규칙을 지키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
요즘 세상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승진하다가 정년퇴직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됐다.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직업 자체가 두세 개는 필요하다. 정년이 60살로 늦춰졌다고 해도, 이후에 80살 아니 90살을 넘어 100살까지 사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70살까지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나의 직장에서 관리자로 지내다가 퇴직을 하는 것보다는,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개인으로서 퇴직 후에도 살아남는 것이 지금 시대에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매버릭 같이 사는 것도 이제는 좋은 선택이 된다. 군대를 나오더라도 매버릭은 항공사, 연구소 등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일할 수 있다. 체력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소형 비행기를 몰며 조종사로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고, 곡예비행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별을 달고 많은 연금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매버릭은 자유로운 인간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한다. <탑건>에서 매버릭의 라이벌이었고 이후 친구가 되는 아이스맨은 그의 가치를 인정한다. 어떤 조직에서건 가끔은 돈키호테가 필요한 것이다. 개인으로서는 돈키호테 이전에 확실한 무기를 갖춘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하고.
<탑건:매버릭>은 장년층의 대리 욕망을 채워주지만, 청년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매버릭과 아이스맨은 과거의 세대다. 그들은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고, 노년을 준비해야 한다. 과거의 시대에 매버릭은 돈키호테였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조직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 말썽꾼. 그러나 조직의 의미 자체가 바뀌고 있다. 피라미드형의 수직적인 조직에서 네트워크 중심의 수평적인 조직으로 변해가고 있다. 전문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평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해졌다. 그런 점에서 매버릭을 기성세대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규칙을 지키면서 어떻게 자유롭게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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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작가
전 「시네필」, 「씨네21」, 「한겨레」 기자, 「ME」, 「ACOMICS」편집장. 저서로는 『클릭! 일본문화』(공저), 『18금의 세계』(공저)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과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좀비사전」 등이 있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J-pop 등 일본 대중 문화를 지속적으로 즐기면서, <한겨레>, <중앙일보> 등의 일간지에 TV 비평, 대중음악 비평과 영화음악 칼럼을 써오고 있다. 그리고 YES24 「채널 예스」에 만화 비평, 「씨네21」에 문화 비평 등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의 글들을 쓰고 있으며, 스릴러, 미스터리, 공포, SF 등 대중문학의 해설을 쓰고 책을 엮는 등의 출판 활동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