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L과 리둥성(李東生)의 40년 도전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TCL과 리둥성(李東生)의 40년 도전

글 : 샹제(商界) / 중국 경제지 2022-07-11



지난 4월 1일,삼성디스플레이는 쑤저우(蘇州)에 위치한 액정 패널 공장을 TCL 산하의 CSOT(China Star Optoelectronics Technology, 華星光電)에 넘겼다. 이 거래는 전 세계 대형 LCD 액정 패널 시장의 발언권이 한국과 일본에서 중국으로 이동함을 의미한다.


삼성디스플레이의 퇴장과 CSOT의 부상은 지난 10여 년 동안에 있었던 업계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긴 시간 동안 액정 패널의 제왕이었던 삼성을 따라잡겠다는 TCL그룹 회장 리둥성(李東生)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이번 ‘추월’은 TCL이 TV 분야에서 더욱 성장 속도를 높이는 동력이 되었다. 2020년 TCL TV의 전 세계 생산량 및 판매량은 세계 2위로 뛰어 오르며 삼성의 뒤를 추격했다.


2009년 TCL이 모든 자산을 쏟아 부어 설립한 CSOT는 오늘날 중국의 또 다른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BOE와 함께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의 양대 산맥이 되었고, 산업 업그레이드의 모범으로 여 겨진다. TCL은 올해 40주년을 맞이했다. 이는 중국 개혁개방 이후의 기간만큼이나 긴 시간이다. 오늘날의 TCL은 스마트 단말기, 반도체 디스플레이, 반도체 소재의 3개 사업군을 아우르며 4개의 상장 기업을 소유한 그룹이다. 리둥성 CEO 는 그 선봉에서 TCL을 이끌고 있다.


테이프 생산에서 액정 패널에 이르기까지 TCL은 중국 제조업이 품질과 효율을 높이고, 산업 가치 사슬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현재 CSOT는 8개의 패널 생산라인, 4개의 모듈 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투자금액은 2,400억 위안(약 44조원)을 넘어서 세계 최고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CSOT 설립’이라는 도전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쓸었다. 시대는 중국 기업들로 하여금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단계로 이동해 수익성을 높이고 산업 주도권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차세대 액정 패널은 중국 정부와 기업이 장악하고자하는 핵심 산업으로 떠올랐다.


TCL은 과거에 컬러TV가 주력 제품이었다. 중국 컬러TV 기업은 패널 핵심 부품을 자체 제작하지 않아서 사실상 늘 재료 부족을 겪었다. 이로 인해 치열한 가격 경쟁을 거치며 적은 수익만 겨우 남겼고, 심지어 적자의 수렁에 빠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본 도시바(TOSHIBA)의 한 관리자는 “중국 가전 기업은 과일 가게 같다.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팔면서 과일은 재배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실 가전기업들은 장기간 기술 정체를 겪으며 오랜 기간 조립 가공에 머물러 왔다.




기술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리둥성과 TCL은 자체 액정 패널 제작의 꿈을 꾸게 되었다.그러나 꿈은 현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투자 규모가 크고 투자금 회수 기간도 비교적 길다. CSOT의 첫 번째 투자액은 무려 245억 위안에 달했다. 이는 당시 TCL 그룹 전체 이익의 50배가 넘는 금액으로, TCL이 전 재산을 걸고 생산라인을 개설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손실이라도 발생하면 수십 년간 쌓아온 모든 것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리둥성은 전례 없는 고민에 빠졌다. 2~3개월 동안 리둥성은 온통 반도체 생각으로 가득 차서, 프로젝트의 각종 가능성을 매일 추론하고 저울질했다. 분골쇄신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재무 리스크도 분명했지만 차세대 산업의 제왕을 차지할 가능성도 숨어 있었다. 전진하지 않으면 리스크는 피할 수 있지만, 서서히 뒤처지며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 퇴보하고 만다. 리둥성은 “기존의 사업을 계속한다면 10년, 8년은 버틸 수 있지만, 분명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디스플레이 부문이 구축되면 다른 분야의 사업도 함께 전진할 수 있어서 미래 전망이 밝았다.


각 측면의 성패 요인을 평가한 후, TCL은 소재, 장비와 같은 업스트림 핵심 분야에서 근본적인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 정식 설립된 TCL 의 자회사 CSOT는 당시 최고 세대 라인인 8.5세대 패널 라인 구축을 목표로 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리둥성의 도박이라고 우려를 표했지만, 이 결정은 충분한 숙고와 종합적인 평가를 거친 끝에 내린 것이었다. 리둥성의 설명에 따르면 CSOT 설립은 70%의 성공 가능성을 예상하고 준비한 사업이었다.


기관인 선차오테크놀로지(深超科技)가 45억 위안을 출자해 주어 충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 은행권에서 TCL 그룹을 담보로 약 83억 위안을 차입, CSOT 건설 프로젝트에 필요한 245억 위안을 모두 마련했다.


영리한 생산 확대 리듬


인재는 CSOT의 두 번째 장애물이었다. LCD 생산라인을 구축하려면 못해도 200명의 경험이 풍부한 엔지니어와 관리자가 필요하다.


때마침 대만의 패널 산업 구도가 변해 ‘3자 대결’에서 ‘양자 대결’로 바뀌었다. 합병된 회사에서 퇴직한 엔지니어와 임원들은 인재를 갈망하던 리둥성에게 큰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CSOT는 선전시의 핵심 개발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시로부터 실질적인 지원을 대거 제공받았다. 예를 들어, CSOT 가 해외에서 구매한 고가의 노광기는 절대 먼지가 없는 운송 환경이 필요하다. 만약 일반적인 세관의 절차에 따라 포장을 풀고 검사를 받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이에 선전시 세관이 유연한 정책을 취할 수 있도록 소통 창구를 마련하여 CSOT의 프로젝트가 착실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왔다.


생산라인이 구축된 후에는 본격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계속 생겨났다. 무엇보다 기술 병목 현상을 빠르게 돌파하고 수율을 개선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거금을 쏟아 붓는 곤경 에 빠지게 되고, 큰 투자금을 유치한 리둥성과 TCL도 감당할 수 없었다.


2011년 8월 가동에 들어간 CSOT의 8.5세대 LCD패널 생산라인인 T1공장은 새로 입사한 직원의 노력 덕분에 생산 능력과 수율이 급상승하면서, 그해에 생산 목표를 실현하고 수익을 내는 기적을 만 들어냈다. 당시 CSOT 직원들의 배경은 천차만별이었다.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 직원들은 언어는 물론 같은 물건도 부르는 명칭이 모두 달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CSOT는 ‘단어 표준화 시스템’을 설계해 의사소통 문제를 점차 해결해 나갔다.


리둥성은 CSOT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판매를 TCL 그룹에 몰아주지 않았다. TCL 산하의 TV, 휴대폰 사업은 모두 패널 수요가 많았다. 그러나 리둥성은 내부적으로만 소비하는 상황이 CSOT의 생산능력과 제품 경쟁력을 약화시킬 거라고 생각했다. 이에 CSOT 제품은 최대 절반까지만 TCL에 판매하고, 나머지 절반은 반드시 외부에 판매한다는 규칙을 세웠다.


패널은 사이클 산업으로, 제품 가격은 3~4년마다 상승·하락 주기를 갖는다. CSOT는 전 세계 패널 분야에서 지금까지 연간 기준 적자를 내지 않은 유일한 기업이다. 이는 TCL의 생산 확대 리듬과 관련이 있다. 패널 생산라인은 기획에서 생산까지 대략 3년이 걸린다. 투자에 큰 비용이 드는 만큼 질서 있게 확장해야 한다. T1 생산라인이 가동에 들어간 후, TCL은 단 기적 성과에 빠지지 않고 순차적인 생산을 선택했다.


TCL은 신규 생산라인이 건설되는 주기를 1~3년으로 간격을 뒀으며, 기술적 세대교체가 뚜렷하다는 게 특징이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TCL은 이런 자신만의 리듬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2021년 기준, TCL 산하 CSOT는 총 8개의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최신 세대 액정 패널과 플렉서블 디스플레이(FlexibleDisplay)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CSOT가 선택한 주도적인 혁신과 자주 적인 조직, 유연한 생산라인 건설 방식은 수준 낮은 경쟁에서 벗어나 부가가치를 제고하는 중국 제조업의 성공적인 모범 사례로 떠올랐다. CSOT의 반도체 사업에는 산업 발전의 거대한 추세와 함께 나아가려는 리둥성의 의지가 새겨져 있다.


첫 해외 M&A


CSOT의 발전 과정은 중국 제조기업이 기존 루트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수용하는 한 편의 성장 스토리이다. 기술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열리는 ‘기회의 창구’는 후발 기업에게 선발 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설립 초기, CSOT 역시 경제위기 속 해외 반도체 산업 침체를 기회로 포착해, 빈틈없이 막혀 있던 과학기술 산업의 틈새를 파고들어 빠르게 부상했다.


그러나 TCL도 중요한 분기점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고, 이는 리둥성에게 큰 타격을 가해 평생 동안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리둥성의 지휘 속에 TCL은 단일 항목 두 개에서 우승을 얻는데, 하나는 컬러 TV이고 다른 하나는 휴대폰이다.


TCL이 컬러TV 업계에 진출했을 때, 중국 시장은 이미 춘추시대에 접어들었지만, 대형 모니터 컬러TV는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컸다. TCL은 이 블루오션을 정확히 파악하고 창청전자(長城電子) 와의 합자를 통해 대형 모니터 컬러TV를 생산했다. 1990년대에는 다양한 컬러 TV 브랜드가 소모적 경쟁에 빠져 여러 차례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그 후, TCL은 홍콩 투자기업 룩스 그룹(Luks Group, 陸氏)의 서커우(蛇口) 공장을 인수하며, 중국 본토 기업이 홍콩 기업과 합병하면서 본토 브랜드를 사용하는 최초의 선례를 남겼다. 이로써 TCL은 완전한 컬러TV 생산 및 제품 디자인 능력을 갖추고 치열한 가격 전쟁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리둥성은 이 협력이 TCL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강력한 윈윈(win-win) 효 과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2003년 말 TCL 휴대폰의 시장점유율은 9.3%를 달성하며 중국 1위, 세계 8위를 차지했다. 또한 연간 이익이 10억 위안을 돌파하는 등 거침없이 질주했다. 당시는 화웨이가 모바일 시장에 등장하기 전으로, 가히 TCL ‘천하’라고 할 수 있었다.


돈을 벌어들이자 TCL은 확장에 대한 무한한 열망이 생겼다. 중외합작기업으로 출발한 TCL에게 세계화는 TCL의 DNA라고 할 수 있다. 리둥성은 항상 TCL이 적절한 M&A 대상을 찾아 글로벌화 비전을 실현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2005년, TCL은 해외기업 두 곳의 인수합병안으로 인해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고, 생사조차 불투명한 어려움을 겪었다.


1893년 설립된 톰슨(THOMSON)은 ‘컬러TV의 시조’이다. 글로벌 최대의 컬러 TV 제조업체로, 컬러TV 및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3만 4천 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2002년 톰슨의 매출액이 약 1,065억 위안 이었을 때, TCL의 매출은 319억 위안으로 톰슨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이 M&A 제안은 과한 욕심이라 할 수 있었다.

TCL 내부에서도 손실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리둥성의 원대한 포부는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그는 “이는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글로벌 전자산업 재편의 일환이며, 앞으로도 이런 조건으로 글로벌 업계 1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2003년 리둥성과 톰슨은 M&A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2004년 1월 공식적으로 M&A 절차에 돌입했다. 당시 마침 중국의 우주선 선저우(神舟)가 하늘로 떠올랐는데, 이는 대국의 부상을 한층 더 부각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양해각서에 서명한지 불과 한 달 만에 톰슨이 컬러TV 사업에서 1억 2,400만 유로의 손실을 입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6억여 위안에 불과했던 TCL 컬러TV 사업의 수익으 로는 손실의 절반밖에 메꿀 수 없었다. 인수 계획이 긴급히 조정되었다. 톰슨이3억 유로의 자금을 투자해 합자기업 지분의 33%를 보유하고, TCL은 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컬러TV 사업가격으 로 지분의 67%를 보유하게 되었다.


합병 완료 후 TCL은 삼성을 누르고 글로벌 컬러TV의 제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해 이 합병안은 상하이자동차그룹 (SAIC)의 한국 쌍용 인수, 레노버(Lenovo)의 IBM PC 사업 인수와 함께 중국기업의 글로벌화 선구자로 여겨졌다. 리둥성도 ‘CCTV가 선정한 올해의 경제 인물’에 선정되었다. 그날 리둥성은 “순국선열이 될 용기가 없으면 선구자가 될 수 없다!”며 뭉클한 감정을 드러냈다.


톰슨을 인수한 지 3개월 만에 TCL은 프랑스의 단말기 제조사 알카텔(Alcatel) 을 인수하고 휴대폰 합작법인 설립에 착수했다. TCL은 5,500만 유로를 투자해 55% 지분을 확보했으며, 알카텔은 전체 자산을 4,500만 유로로 평가해 45% 지분을 확보했다. 그러나 급변하는 비즈니스 세계는 이 새로운 기업에 정면으로 타격을 가했다. 노키아, 모토로라, 에릭슨 등 당시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이 국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중국 시장에서는 짝퉁 휴대폰이 활개를 치고 있었기 때문에, TCL의 휴대폰 사업은 사방에서 공격을 받았다. 2004년 TCL과 톰슨 합자회사의 손실액은 8억 2천만 위안에 달했다.


더 참담했던 것은 톰슨 컬러TV 사업 인수로 인해, 전체 TCL 경영상태가 점차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2005년 3분기 손실액이 놀랍게도 11억 4천만 위안에 달하고, 순자산 수익률은 -27.84%였다. 2006년 TCL 그룹은 19억 위안의 막대한 손실을 입고 상장폐지 경고도 받으면서 돌연 전례 없는 겨울을 맞이했다.


당시 리둥성은 37인치 정도였던 허리 둘레가 33인치로 줄어드는 등 10kg이나 살이 빠졌는데, 심각한 우울감에 빠져 기력이 없었다. 리둥성은 그렇게 멍한 상태로 2년을 보냈고, 심지어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을 때는, 부하로부터 유럽 사업의 손실 관련 보고 전화를 받고 화가 나서 책상 위 휴대폰을 내던진 적도 있었다. 리둥성은 당시 5, 6개의 휴대폰을 부쉈다고 고백했다. 이후 리둥성은 이 두 건의 M&A로 큰 좌절을 겪었다고 설명하면서 “주된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며 과오를 인정했다. 그렇지만 해외 확장이라는 큰 방향성은 절대 옳았다고 말했다.


복기와 분석


손실의 핵심은 리둥성이 기술 전환의 교차점에서 잘못된 방향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TCL은 인수를 통해 업계 영향력을 높이고 컬러TV 및 휴대폰 산업의 핵심 기술을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형성하 려고 했는데, 이론상으론 모든 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TCL의 의사결정권자들은 매우 중요한 업계의 변화를 간과했다. 컬러 TV 분야는 2003년 이후로 중대한 산업업그레이드를 겪었다. 즉 LCD, 플라즈마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이 전례 없는 속도로 기존 CRT 컬러TV 시장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TCL이 높은 가격에 인수한 기존 컬러TV 분야의 기술은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밖에, 모토로라, 노키아 등 세계적 대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전략을 바꿔 저가형 휴대폰을 출시하고 채널 개혁을 시도하며 매출이 급성장했다. 중국 휴대폰 진영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던 TCL 은 알카텔과 통합하기도 전에 다른 브랜드에 포위되고 있었다. 또한 리둥성은 해외 M&A 이후 찾아 올 진통의 시간을 과소평가했다.




M&A전, TCL 모바일(TCL Mobile)의 경영진은 알카텔 모바일 회사의 직원이 1천 명이 채 되지 않고, 공장도 없으며 연구개발과 마케팅 시스템만 있다고 생각해, 인수가 간단할 것으로 예상했다. 컨설팅 비용이 수백만 유로가 절감된 것 같았지만, M&A 이후 2004년 4분기에 는 3천만 유로의 적자가 발생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M&A를 통해 첫 해외 진출을 시도한 TCL은 경험 부족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특히 문화와 업무 방식이 완전히 다르고 통일된 핵심 리더가 없어서 문제 처리도 신속하고 단호하게 이뤄지지 않았 다. 능력과 목표의 불일치는 M&A가 좌절된 주요 원인이었다.


“분야나 환경 문제가 아니라 조직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리둥성은 해외 M&A는 시작부터 조직개편과 재정비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또한 큰 수술의 고비용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두려워서 과감하게 개혁하지못해 발생하는 매몰비용은 반드시 원금에 이자까지 되받아 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외에서 배운 이 교훈들은 모두 TCL이 피와 눈물로 맞바꾼 것이었다.


중국 사업 다각화 실패와 교훈


TCL은 중국에서도 암울한 시기를 겪었다. 2000년을 전후해 명성을 떨치던 TCL은 다각화 전략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국을 휩쓴 인터넷 붐에 TCL도 많은 준비를 거쳐 인터넷 업계에 진출 했지만 3년 만에 퇴각했다.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6억 위안이라는 거액을 투자했지만 조직 능력 문제로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2001년 리둥성은 TCL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TCL의 전략적 실수 중 하나가 다각화이며, 그룹 경영진은 전체 사업 가운데 51%가 적자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화웨이와 같이 통신업계에서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고, 엉뚱한 행보를 보임으로써 소탐 대실한 것이 문제였다.


오늘날 많은 MBA에서 TCL의 글로벌 화를 여전히 실패 사례로 가르치고 있다. 현재 리둥성의 지휘로 TCL은 다시 힘을 내고 있으며, 보다 강력한 기업 관리체제를 시행해 그간의 손실을 서서히 줄여가 고 있다. 사업은 활발하게 추진될 때도 있고 격랑 속에 가라앉을 때도 있다. 이런 패배를 딛고 일어나 다시 정상 궤도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은 실패 사례만큼이나 중요 한 비즈니스 지혜일 것이다.


40년간 TCL은 중국 민간기업으로서 장기적인 성장의 본보기를 보여주며 업계의 해외 진출 길잡이가 되었다. 현재 확고한 글로벌화 전략으로 TCL의 해외 매출은 전체의 52%를 차지한다. 전 세계 42곳의 R&D 센터, 32곳의 제조 기지, 10 곳의 공동연구소를 설립하고, 1만 2천여 명의 R&D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스스로 쇄신하기 위해서는 배수의 진을 쳐야 한다. 2017년부터 TCL은 사업적 매력과 전략 적합도를 기반으로 3년 간 비핵심사업 회사 110곳에 대한 구조 조정, 분리, 중단, 매각을 단행했다. 이러 한 고강도 개혁을 통해 TCL은 조직 구조를 최적화하고 전략적 명확성과 실행 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제 TCL은 스마트 단말기와 반도체 디스플레이라는 두 가지 사업에 포커스를 두었다.


사실 성찰과 변혁은 TCL의 핏속에 흐르는 문화이며, 이는 리둥성 개인의 특징과 관련이 깊다. 2006년 인생 침체기에 리둥성은 TCL의 비즈니스 전략을 깊이 성찰하며 ‘독수리의 재탄생’(鷹的重生)이라는 글을 썼다. TCL을 다시 태어나려는 독수리에 비유하고, 스트레스와 무력감에 물든 깃털을 하나씩 뽑아내며 투지와 희망으로 상처를 아물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직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2천 자 남짓한 글에 TCL 인트라넷에는 수만 개의 댓글이 달렸고, 산업계 전반에 걸쳐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40년간의 갖은 고생과 단련을 거쳐, 오늘날 TCL은 단말 제품 제조에서 하이테크, 대규모 자산 및 장기 사이클의 핵심 기초 기술 산업으로 전환했다. 이는 전통 기업이 기존 경로에서 벗어나 자신 의 기존 유전자를 바꿔가며 자기 쇄신을 이룬 스토리이다. 또한 잦은 변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혁신가의 딜레마’를 벗어난 스토리이기도 하다.


1970년대 고향을 방문한 리둥성은 자신이 살았던 초가집에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을 때는 자신을 수양한다’(達則兼濟天下, 窮則獨善其身)라는 족자를 걸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났으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고,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여겼다.


리둥성은 “강력한 국가는 강력한 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하며, 중국 경제의 중추를 바로 세우려면 산업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산업만이 중국 경제의 주춧돌이 되어 대국 부흥의 거대한 장(章)을 지탱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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