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80%를 잃었던 투자 대가의 실패 극복법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재산 80%를 잃었던 투자 대가의 실패 극복법

글 : 이상건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장 2022-06-22



일류 투자가라 해도 매년 빼어난 수익률을 기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위대한 스포츠 선수들이 전 경기에서 승리 할 수 없듯이 위대한 투자가들도 패배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누구는 실패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다. 반면 에 어떤 이는 그 속에서 좌절하고 주저앉는다. 패배를 디딤돌로 삼느냐, 아니면 걸림돌로 여기느냐에 따라 그 다음의 투자 성패가 갈린다. 그래서 때로는 투자 이론이나 개념 혹은 방법론을 공부하는 것보다 위대한 투자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유용하다. 특히 실패에 직면해 있을 때, 그들이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한 과정을 살피는 일은 살아 있는 교과서 역할을 한다.


투자 자산의 5분의 4를 잃다


현대 증권 분석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에게도 엄청난 시련이 있었다. 그레이엄은 30대에 이미 백만장자가 되었다. 경제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문학과 예술을 더 사랑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성과에 도취 돼 더 많은 레버리지를 활용했고, 자신감은 팽배했다.


대공황이 발발하기 전인 1926년 그레이엄은 자신과 지인들의 돈을 모아 벤저민 그레이엄 컨소시엄을 출범시켰다. 그는 성과에 따른 성과 보수만 받았다. 6% 이상 수익률을 올리지 못하면 그는 한 푼도 보수를 받을 수 없는 구조였다. 6%룰을 그의 제자인 워런 버핏도 그대로 따랐다. 그레이엄이 은퇴하고 투자회사를 청산하자 더 이상 뉴욕에 머물 의미를 느끼지 못했던 버핏은 고향 오마하로 돌아와 지인들의 돈을 모아 투자조합을 만들었다. 버핏은 매년 수익률6% 이상을 달성하지 못하면 보수를 받지 않았다.


그레이엄 컨소시엄은 연평균 25.7%라는 탁월한 수익률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레이엄도 대공황의 어두운 그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전설적인 개인투자자 버나드 바루크는 대공황으로 증시 붕괴가 일어나기 전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모두 정리했지만 그레이엄은 그러지 않았다. 열광에 도취된 시장이 곧 붕괴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레이엄은 방어적인 포트폴리오로 대응했다. 1929년 1차 증시 붕괴가 일어났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 20%의 손실을 입었지만 다른 투자자들에 비해서는 탁월한 성과였다.


투자자들로부터 ‘투자 천재’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1930년대 중반 증시가 더 큰 폭으로 폭락하자 그레이엄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격변하는 시장 상황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조정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 결과는 참혹했다. 그레이엄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30년은 33년의 펀드매니저 경력에서 최악의 해였다. 1930년 우리는 50.5%의 손실을 입으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1931년에 손실률은 다시 16%로 완화되었고, 1932년 초의 손실률은 겨우 3%에 불과했다. 이것은 실로 승리나 다름없는 성과였다. 그러나 1932년 말이 되자 원금은 22%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레이엄의 인생에서 이때는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 삶은 괴로움 그 자체였다.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든 건 돈보다도 ‘미래의 불확실성’이었다. “나의 괴로움은 재산이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리한 장기전과 함께 시장이 돌아섰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추락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실망, 대공황과 손실이 언제 끝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완전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여기에 자신을 믿고 투자한 친척과 친구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 괴로움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하나는 생활 방식, 다른 하나는 투자 철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절약과 안전 마진


적지 않은 사람이 큰돈을 잃으면 그 돈을 벌충하기 위해 더 큰 수익률을 노린다. 더 투기적인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생활 방식도 그대로 고수한다. 그레이엄은 이 두 가지 모두와 결별했다. 먼저 씀씀이를 확 바꾸었다.


“나는 물질적인 행복에 이르는 참된 열쇠는 어떠한 경제적 상황 아래서도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검소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내 자신에게 재빨리 확신시켰다.”


이전까지는 그레이엄이 돈을 빨리 많이 벌어서 펑펑 쓰는 게 성공의 징표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엄청난 손실을 겪으면서 이런 가치관을 버렸다. 그는 극도의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푼돈에도 몸을 사리는 사람이 되었다.


투자 철학에 있어서는 ‘안전 마진’이라는 개념에 깊이 천착하게 된다. 안전 마진은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음을 전제하고 있는 개념이다. 자신이 제대로 가치분석을 했어도 잘못할 수 있기 때문에 원래 가치보다 더 싸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레이엄은 안전 마진 개념을 통해 투자 리스크에 관심을 기울이고 돈을 잃지 않는 것이 버는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철학을 정립할 수 있었다.




자산의 재산 5분의 4를 잃은 경험을 한 후 그의 포트폴리오는 더욱 안정적으로 운용됐고 수익률도 좋아졌다. 드디어 1935년 12월에는 그동안의 손실을 모두 복구할 수 있었다. 그 이후 1936~1941년 의 기간 동안에는 연평균 11.8%, 1942~1945년에는 17.6%의 실적을 거두었다. 이 수익률은 대공황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는 기간 동안 이뤄진 성과였다.


우리에게 그레이엄의 실패가 던지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선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레이엄도 큰 손실 앞에 당황하고 언제 시장이 좋아질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 실패를 두 가지 방식으로 이겨냈다. 하나는 검소함이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검소함을 가장 훌륭한 재무 전략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가장 단순하고 중요한 물질적 풍요의 법칙을 알게 되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수많은 부침을 겪고 난 뒤였다… 가장 뛰어난 재정 전략이란 그 사람의 수입 범위 내에서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패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다. 그레이엄은 평생 공부를 사랑했던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오직 하나의 지속적인 교육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이고, 그것이 즐겁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공부는 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는 일생 동안 실수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던 증권시장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투자자들은 상처를 입고 고통스럽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투자란 고스란히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그레이엄과 같은 천재 소릴 듣던 투자자도 큰 손실을 입었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 결과에 매달리지 말자. 과거는 과거일 뿐 미래가 아니다. 그레이엄의 실패와 극복 과정을 교과서 삼아 우리의 삶과 투자를 재정비해 보자. 요즘과 같은 시기에 이 책을 통해 벤저민 그레이엄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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