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가 심할수록 기뻐하라!
글 : 김용전 / 작가 2022-06-20
이직한 뒤 텃세에 시달린다는 고민 상담은 거의 연중 365일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 구인 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2019년 5월에 실시한 텃세 관련 설문 조사에 보면 조사 대상자의 70%가 이직 후 텃세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텃세를 견디지 못해 다시 이직한 경험이 있는 직장인이 48.5%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두세 번 이직이 일반화된 요즘 이쯤 되면 ‘직장도처유텃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조사에서 텃세의 세부 유형은 ‘업무 자료·절차를 공유하지 않음’(53.8%, 복수 응답)이 가장 많고, 계속해서 ‘내 업무 스타일이나 방식을 무시함’(50.3%), ‘작은 실수도 확대해서 말함’(40.5%), ‘처음부터 과도한 업무를 부여함’(29.1%), ‘대화에 참여시켜주지 않음’(26.6%), 등의 순으로 나왔는데 필자는 이 텃세의 유형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왜냐면 텃세는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든 그 바탕은 ‘나와 익숙하지 않음’이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와 익숙하지 않은 데다 상사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면 그 감정은 ‘배 아픈 정도’가 아니라 증오로 번진다. 고로 이직 후 텃세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새로운 사람들과 가급적 빨리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빨리 익숙해질 수 있을까? 다섯 가지 정도를 권한다. 첫째는 길게 보아야 한다. 이는 교육학에서 말하는 준비성(Readiness)의 개념과 비슷한데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칠 때 아무리 의욕이 넘쳐도 때가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즉, 갓 태어난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건 불가능하다. 이처럼 새로운 사람들과 아무리 빨리 익숙해지고 싶어도 번갯불에 콩 볶듯이 1~2주 안으로 되는 게 아니다. 아키야마 스스무라는 일본 저자가 쓴 ‘이직 후 1년’이라는 책을 보면 이직 후 한 달은 견습기, 3개월은 스트레스의 절정기, 6개월이 되면 초보 운전 시기, 1년이 되어야 비로소 시민권이 주어진다고 한다. 이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3개월이 지나면 스트레스가 현저히 줄어든다고 하니 질문자에게는 앞으로 한 달이 고비라고 본다.
그 다음 두 번째는 그 회사의 언어를 빨리 익혀야 한다. 회사가 다르면 상품과 문화도 달라서 각종 용어, 시스템, 표현 등이 다 달라진다. 이민해서 그 나라에 동화되려면 그 나라 말을 가장 먼저 배우는 게 급선무이듯 직장도 그렇다. 회의나 대화를 할 때 어딘지 생경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세 번째는 이전 회사와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용어가 다르고 시스템이 달라지면 자꾸 이전 회사와 비교하게 되는데 대부분 ‘어? 이전 회사에서는 이러지 않았는데?’라고 말한다. 즉 이전 회사를 기준으로 지금 회사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데 그럴수록 텃세는 오래 간다.
네 번째는 ‘우리 회사’라는 말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 회사’라는 표현이 왜 문제인가? 이직 초기에 동료들과 대화를 할 때 부지불식간에 ‘우리 회사’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 ‘우리 회사’가 사실은 ‘이전 회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회사를 우리 회사라고 빨리 부를 수 있도록 노력하라.
마지막 다섯 번째는 조직의 큰형님을 빨리 잡아야 한다. 여기서 큰형님이란 간부나 권력자를 뜻하는 게 아니다. 어딜 가나 그 조직의 소속원들이 한 수 접어주는 선임이 있다. 여성의 경우는 왕언니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런 사람과 빨리 친해져서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알리는 게 가장 좋다. 내가 좋은 사람이다, 내가 잘 났다는 걸 내 입으로 말하면 듣는 동료들이 싫어한다. 그러나 큰형님이나 왕언니 입으로 ‘어 그 친구 사람 괜찮네’ 이렇게 한마디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여 준다. 동료들을 일일이 다 이해시키려 하지 말고 큰형님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게 좋은 전략이다.
끝으로 텃세를 강하게 느낄수록 속으로는 반겨라. 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업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계단에 주저앉아서 떨고 있는 업햄에게 독일군은 눈길도 안 주고 지나쳐 버린다. 상사나 동료들이 나를 경계하고 견제하는 건 그만큼 나를 업햄이 아닌 ‘강호의 고수’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김용전 작가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이후 동 대학 경영대 최고 경영자 과정을 밟았으며, 보성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주)재능교육 창업 멤버로 참여, 17년간 일했다. 조선일보 및 서울교육 편집위원으로 일한 경력도 있다. 오랜 직장 경험을 바탕으로 <토사구팽 당하라>(2006), <회사에서 당신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법>(2007),<남자는 남자를 모른다>(2008), <직장 신공>(2012),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2014)등 다양한 저서를 통해 직장생활의 노하우를 담아왔으며, KBS의 '아침마당', ‘스펀지’를 비롯해 다수의 방송에서 강사로 출연했다. 현재는 헤럴드 경제 신문에 ‘직장신공’이라는 고정칼럼을 쓰고 있고, KBS 1라디오의 '성공예감 김방희'에서 '성공학 개론'을 맡아 고정 출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