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7080잡아라! 시니어 사원 모시기 경쟁 뜨겁다
글 : 김웅철 / 지방자치TV 대표이사,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2022-06-20
코로나19 전염병이 한창 기세를 부리던 올 3월 초. 일본의 한 유명 생명보험회사 입사식이 현지 언론의 화제를 모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열린 입사식에 참석한 ‘신입 사원’들의 면면이 보통의 입사식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신입사원들의 연령은 모두 60세 이상. 정년 후 ‘스페셜리스트’라는 직책으로 활약하는 시니어 사원들의 새 출발을 기념하는 ‘또 한 번의 입사식’이었다.
스미토모생명보험은 2021년부터 정년퇴직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했다. 정년 연장과 함께 60세 이후 근로 형태로 ‘스페셜리스트’라는 직책을 신설했다.
일본에서는 정년 후 재고용 제도(임금피크제 해당)를 통해 65세, 길게는 70세까지도 일할 수 있다. 고령자고용촉진법으로 기업의 고령자 고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에서 재고용 후 임금은 현역 때보다 크게 낮아진다. 재고용 임금 삭감이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하지만 능력 있는 시니어 사원들에게 임금 삭감은 일할 의욕을 크게 떨어뜨린다. 기업들은 자칫 우수한 시니어 인력을 빼앗길 수 있다.
이 같은 폐단을 걱정한 스미토모생보가 고안해 낸 시니어 고용 제도가 스페셜리스트라는 직책이다. 스페셜리스트는 이른바 잡(JOB)형 일자리다. 일본에서는 직무와 역할을 명확히 하고 보수는 직책과 성과에 연동하는 일자리를 ‘잡(Job)형’ 일자리라고 부른다. 스미토모생보는 시니어 스페셜리스트에게 기존의 재고용 때와 비교해 최대 1.5배의 임금을 지급한다. 사내 복지 등 다른 처우도 현역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60대 사원의 일할 의욕을 자극해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 하도록 하려는 목적에서다. 동시에 인재 유출도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대형 유통매장 가전 코너에서 일하는 80세 할머니
요즘 노인 대국 일본에서 시니어 사원들의 몸값이 뛰고 있다. 현지 기업들은 다양한 당근 책을 흔들며 ‘귀하신 몸’을 유인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80세 넘어서도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게 정년 제도를 아예 철폐하는가 하면 급여, 상여금 등 처우도 적극 개선해 주고 있다. 유연한 근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 일 이외의 겸업(兼業)도 허용하고 있다. 시니어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근로 환경에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고 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복리후생 제도를 도입하는 회사도 늘어나고 있다.
사이타마현(埼玉県) 가와구치시(川口市)의 한 대형 유통매장 가전판매 코너.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곳에서 고객 접객을 담당하는 구마가이 에미코(熊谷恵美) 씨의 나이는 80세다. 가전 양판점 ‘노지마’의 80세 이상 시니어 직원 1호다. 구마가이씨는 2009년 70세 나이로 아르바이트에 채용돼 10년 넘게 일해 왔다. 2020년 회사가 고용 연령 상한을 80세로 끌어올렸는데 그 제도의 첫 수혜자가 구마가이 할머니 사원이다.
회사 측은 구마가이씨가 창업 초기부터 함께한 베테랑으로, 가전 코너 차원에서는 꼭 필요한 인재라고 강조한다. 노지마는 2021년부터 직원들의 희망에 따라 80세가 넘어서도 일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대응하는 등 사실상 정년 연령을 없앴다. 구마가이씨는 소형 오토바이로 통근하며, 주 4일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한다. 사정에 따라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회사 측에 따르면 젊은 직원들은 구마가이씨를 할머니로 호칭하며 고민을 상담한다고 한다. 매장을 찾은 시니어 고객들은 PC나 스마트폰 등에 대해 문의할 때 젊은 직원들보다 말하기 편 안한 구마가이 할머니 직원을 찾는다.
구마가이씨는 일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고 연금만으로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강조한다. 그는 “월급으로 계절마다 정원의 꽃을 구입해 심을 수 있는 것이 즐겁다” 고 이야기한다.
맨션 빌딩 관리회사 ‘도큐 커뮤니티’(도쿄도 소재)는 계약사원이나 아르바이트로 77세가 될 때까지 일할 수 있다. 종업원 1만1322명(2021년 3월 말 기준) 중 2320명이 70세 이상이다. 65세 이상 직원이 전체 직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이 회사는 단시간 근무로 수입이 적은 사람에게는 같은 업종만 아니면 겸업을 인정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면 5000엔 이상의 포상금을 지급, 재정적으로도 지원한다. 빌딩 관리는 몸을 움직이는 업무가 많기 때문에 안전 면에 대한 배려에도 신경을 기울인다. 안전화를 대여하고 위험을 동반한 사례를 매월 주시한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 회사 포인트를 지급하는 등 직원들의 건강을 배려하는 정책도 실시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5만 개 넘는 회사가 70세가 넘어도 일할 수 있도록 정년 기간을 연장하고 있 다(직원 31명 이상 작업장 기준). 일본 전역의 비즈니스 현장에서 뛰고 있는 고희(古稀) 현역들은 약 67만5000명. 지난 4년 동안 2배나 늘었다고 한다.
일본 기업들의 정년 연장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동안 일본 기업들은 정부 시책에 호응해 정년 연령을 단계적으로 높여 왔다. 2013년 일본 정부는 고령자 고용을 안정시킨다 는 취지로 65세까지 정년 연장, 65세까지 계속 고용제도(재고용) 도입, 정년 폐지 중 하나를 의무화했다. 지난해 4월에는 65세에서 연령을 높여 70세까지 고용을 노력의무로 하는 것 등을 규정한 개정 고령자고용안정법이 시행됐다. 70세 고용 연장은 물론이고, 창업을 희망하는 직원들에게는 일정한 지원을 명문화했다.
60세 직무정년제 폐지하는 日 기업들
하지만 지금까지 기업들의 정년 연장 정책은 정부 시책에 마지못해 따르는 양상이었다. 실질적 인 정년 연장보다는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재고용을 통해 형식적인 정년 연장을 해온 것이다. 실제로 퍼솔종합연구소(도쿄 미나토) 조사에 따르면 재고용 후 임금은 평균 32.5% 감소했다고 한다. 직무 변경이 거의 없는 기업에서도 평균 27.1% 줄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 기업들의 시니어 직원 모시기는 분위기가 과거와 사뭇 다르다. 예전과 질적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시니어 고용에 진정성이 느껴진다. 일본 기업들은 왜 이렇게 시니어 직원들에게 공을 들이고 있는 걸까.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2017년 추계)에 따르면 일본 전체 생산 연령 인구(15~64세)는 2040년 5978만 명으로 2015년과 비교해 1750만 명이나 줄어든다. 반면에 65세 이상의 고령화율은 35.3%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당장 투입 가능한 인력으로서의 시니어 활용이 기업에 있어 필수 과제로 부상한 것이다. 능력 있는 시니어 직원이 ‘진짜’ 필요해진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일손 부족이 시니어의 고용 확충을 재촉하고 있다. 노지마는 그룹 차원에서 2022년 봄 입사 시즌 때 870명 정도의 신규 채용을 계획하지만 약 700명 확보에 그쳤다고 한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마토바 야스코(的場康子) 수석연구원은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으로 일하는 세대의 감소는 불가피하다. 모든 업계는 아니지만 인력난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쓸 만한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수한 시니어의 유출은 회사엔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언론은 최근 기업들의 시니어 사원 모시기는 인력 유출을 막는 대응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다이와 하우스 공업(오사카시)은 최근 60세의 일률 직책 정년제를 폐지했다고 발표했다. 급여 등의 처우도 개선해 시니어 사원의 새로운 활약을 응원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2013년 4월부터 65세 정년제를 도입 했다. 2015년 4월에는 65세 이후에도 현역으로 고용하는 ‘액티브 에이징 제도’(상한 연령 원칙 70세)를 마련해 노동 의욕과 일정한 업적이 있는 시니어 사원의 활약의 장을 넓혔다. 그러나 급여·상여 지급 수준이 떨어지고 ‘직무 정년’도 60세인 채로 유지됐다. 이 때문에 시니어 사원의 의욕 저하와 전문기술을 보유한 우수 사원의 유출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이와 하우스는 먼저 60세 일률적인 직무 정년을 폐지하고 60세 이후의 직무 임용 및 승격도 가능하도록 인사제도를 바꿨다. 급여·상여 지급 수준도 60세 수준을 유지하는 형태로 변경했다.
야마토 하우스공업도 4월부터 60세 직무 정년을 폐지하고 급여 등의 처우를 개선했다. 종업원의 자율적인 커리어 형성이나 성장, 자기실현을 돕기 위해 부업(副業)을 중심으로 한 ‘월경(越境) 커리어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회사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 고도의 전문 자격을 가진 시니어 사원의 유출을 억제해 노동 의욕 향상을 도모하는 동시에 전직(轉職) 시장에서 커리어 채용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잡형(JOB) 일자리를 도입하는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요즘 일본에서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에서 탈피해 직무·성과형 인사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는데, 스미토모생보(生保) 의 시도는 이러한 흐름의 하나다.
고바야시 유지 퍼솔종합연구소 주임연구원은 시니어야말로 잡형 고용이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성과를 기준으로 활약에 따라 처우를 바꾸는 능력 가치 발휘형이 향후 시니어 고용의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시니어는 보람을 느낄 수 있고, 기업도 기여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고바야시 연구원은 “기업은 처우 본연의 자세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종래에는 연금 지급 연령 상향에 따른 복지 고용 측면이 있었다. 개별적인 능력이나 의욕을 고려하지 않는 일률적인 처우다. 그렇게 하면 우수한 시니어는 유출된다. 이러한 직장에서는 젊은이의 이직률도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김웅철 지방자치TV 대표이사,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同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를 받고 상명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 대학 연구원, 매일경제신문 도쿄특파원과 국제부장, 매경비즈 대표, 매일경제TV 국장, 경제tv EBC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법》의 저자로, ‘노인대국 일본’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과 책을 쓰면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초고령사회의 모습과 해법에 대해 연구했다. 《복잡계 경제학》, 《대공황 2.0》, 《2014년 일본파산》, 《똑똑하게 화내는 기술》 《아직도 상사인줄 아는 남편, 그런 꼴 못보는 아내》등 다수의 일본 서적을 번역했고, 《연금밖에 없다던 김부장은 어떻게 노후 걱정이 없어졌을까》, 《일본어 회화 무작정 따라하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