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우리는 분명히 조용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글 : 김봉석 / 작가 2022-06-16
지난 6월 2일에서 5일까지 무주산골영화제에 다녀왔다. 무주구천동으로 유명한 무주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올해로 10회가 되었다. 국제영화제가 아니고, 이미 개봉했거나 다른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좋은 영화들도 볼 수 있는 작은 영화제다. 자연으로 유명한 무주답게 등나무운동장에서 보는 음악 공연과 야외상영도 매혹적이다. 올해는 선우정아, 십센치, 데이브레이크가 공연을 했다. 밤이 되면 영화를 상영하는데, 올해는 신상옥 감독의 <불가사리>에 MC메타가 콜라보한 힙합 공연도 볼 수 있었다. 자연을 좋아한다면, 최고의 경험이 될 수 있는 장소가 무주산골영화제다.
작년에 갔을 때는 일정이 맞지 않아, 덕유산 숲속의 대집회장에서 열리는 영화상영을 보지 못했다. 가장 아쉬운 일이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가야 한다, 생각하고 일정을 잡았다. 덕유산 캠핑장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를 타고 한참을 올라갔다. 울창한 숲속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기분이 들었다.
버스에 내려 조금 올라가니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10분 정도 늦었다. 작은 언덕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큰 화면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자리를 깔고 편하게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도 있고, 텐트를 치고 안에 들어가 편하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구석에 자리를 깔고 맥주 캔을 깠다. 영화를 보다가 힘들면, 누워서 검은 밤하늘을 보고는 했다. 이미 본 <드라이브 마이 카>였기 때문에, 일부 장면과 대사를 놓쳐도 괜찮았다. 집중을 해서 영화에 몰입하자면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야외상영의 즐거움은 자유로움에 있다. 영화를 봐도 좋고, 영화의 대사와 음향을 배경으로 대화를 하거나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도 좋다. 영화가 있는 공간에서 휴식을 한다는 느낌이다. 덕유산 숲속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는 경험은 최상급이다. 영화도 좋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요즘 해외영화제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2021년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2021년 12월 23일에 개봉하여 약 7만 7천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블록버스터가 아닌 영화로서 7만명이 넘는 관객은 대단히 높은 숫자다. 신작인 <우연과 상상>은 지난 5월 4일 개봉하여 지금도 상영 중이다. 21년작 <해피 아워>, 19년작 <아사코>는 왓챠 등에서 볼 수 있다.
연극 연출가이며 배우인 가후쿠와 작가인 오토는 중년의 부부다. 여전히 뜨거운 애정을 보이는 가후쿠와 오토이지만 비밀이 있다. 오토에게는 늘 애인이 있고, 가후쿠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서로의 애정은 굳건하다. 어느 날 갑자기, 오토가 병으로 쓰러지고 바로 사망한다. 2년 후, 가후쿠는 히로시마 연극제에 초청을 받아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연출하기로 한다. 오토가 녹음한 대사를 차에서 들으며 연출 준비를 하는 버릇이 있는 가후쿠는 히로시마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숙소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한다. 연극제 측에서는 이동 중에 안전한 운전을 위해 드라이버를 고용한다. 20대 초반의 미사키와 40대의 가후쿠는 매일 두 시간여 동안 ‘드라이브’를 함께 하면서 소통하기 시작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상영시간은 179분, 거의 3시간이다. 특징이라면 <바냐 아저씨>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오랜 시간 보여준다. 오디션 과정, 대본 읽기와 연기 등등. 가후쿠가 연출하는 <바냐 아저씨>의 특징은 다국적이라는 점이다. 단지 배우가 다국적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대사의 언어가 모두 다르다. 일본인은 일본어로, 한국인은 한국어로, 중국인은 중국어로 대사를 한다. 무대 위에는 상단 스크린에 번역이 되어서 나온다. 배우들이 상대의 언어를 모두 아는 것이 아니기에, 처음 연기를 할 때는 제대로 감정을 잡지 못한다. 상대의 대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감정이 나오고, 리액션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왜 이렇게 번거로운 형식을 택한 것일까. 영화 초반부에는 가후쿠가 <고도를 기다리며>의 배우로 출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실주의에 반대하는 부조리극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두 남자가 나와 끝없이 대화의 화제를 바꿔가며 고도를 기다린다. 그러나 끝내 고도가 누구,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고, 오지도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도 그럴 수 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영원히 오지 않는다. 하지만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우리는 살아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금 현재 살아가는 의미가 생겨날 수 있으니까.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의 배우이 모여 각국의 언어로 말한다. 소냐는 수화로 이야기한다. 그들의 언어는 정확한 의미로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언어를 알지 못하면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거듭하면, 반복하면 알게 된다. 정확하게 의미를 알고,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가 어떤 의미의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어떤 마음이고, 어떤 감정인지, 어떤 상태인지 느끼게 된다. 소통이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부를 이해하지 못해도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하다. 모호한 상태에서도 믿음은,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다.
미사키도 상처가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술집에서 일을 했다. 미사키와 엄마는 홋카이도의 시골에 살았다. 도시에서 일했던 엄마는 매일 새벽 기차로 돌아왔고, 미사키는 중학교 때부터 차를 운전하여 엄마를 역에서 집까지 데리고 왔다. 피곤했던 엄마는 차가 심하게 흔들리면 깨어나 미사키를 욕하고 때렸다. 미사키가 운전을 잘 하게 된 이유다. 길이 아무리 험해도 고요히 운전하는 법을 익힌 것이다. 사고로 엄마가 죽은 후, 혼자가 된 미사키는 히로시마로 내려왔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혼자 지내기 위해.
가후쿠는 아내를, 미사키는 엄마를 사랑했다. 하지만 상처를 받았다. 끝내 서로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미처 말하지 못한 아쉬움, 슬픔이 쌓여 있었다. <바냐 아저씨> 공연이 좌초 위기에 놓이면서, 가후쿠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드라이브’를 한다. 미사키와 함께, 그녀의 고향까지 달린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서로의 상처를 위로한다. 딱히 서로를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기보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치유한다. 끝내 이루지 못한 아내, 엄마와의 소통을 그들이 죽은 후에 이루게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영화는 <바냐 아저씨>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하마구치 류스케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외로운 우리는 어떻게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소냐의 말을 빌어 하마구치 류스케는 말한다. ‘운명이 가져다 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도록 해요.......그때가 오면 우린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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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작가
전 「시네필」, 「씨네21」, 「한겨레」 기자, 「ME」, 「ACOMICS」편집장. 저서로는 『클릭! 일본문화』(공저), 『18금의 세계』(공저)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과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좀비사전」 등이 있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J-pop 등 일본 대중 문화를 지속적으로 즐기면서, <한겨레>, <중앙일보> 등의 일간지에 TV 비평, 대중음악 비평과 영화음악 칼럼을 써오고 있다. 그리고 YES24 「채널 예스」에 만화 비평, 「씨네21」에 문화 비평 등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의 글들을 쓰고 있으며, 스릴러, 미스터리, 공포, SF 등 대중문학의 해설을 쓰고 책을 엮는 등의 출판 활동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