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Morning? Good Mourning?
글 : 양준석 /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연구원 2022-05-17
며칠 전, 지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음의 이유가 무엇이든 그 또한 수많은 번민과 갈등 속에서 그 길만이 고통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은 가족들이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지, 다시 일상에서 평온을 얻을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에 한동안 그를 떠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상실의 경험에서 빗겨나는 사람은 없다는 삶의 진리에 숙연해졌다.
영어에서 죽음에 대한 애도를 Mourn이라고 하는데, 아침을 말하는 Morn(morn-ing)과 어원이 같다고 한다. 해가 뜨는 것을 Morning, 해가 저무는 것을 Mourning이라고 하니 뜨는 해와 지는 해는 하나의 어원에서 나온 셈이다. 생명의 시작인 아침과 생명의 마무리인 저녁이 동전의 앞뒤 면처럼 ‘본성이 같다’는 것을 의미하니, 좋은 아침 ‘Good Morning’은 좋은 애도 ‘Good Mourning’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지만, 특히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죽음을 당하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부정이 있는 듯하다. 자연스레 생명이 다하여 죽는 것을 가장 좋은 죽음으로 여기는 ‘Good Death’라는 말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성인들의 죽음을 돌이켜보면 평온한 죽음과는 사뭇 다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붓다의 죽음, 예수의 죽음, 간디의 죽음이 그렇다. 그런데도 그들을 성인으로 기억하며 추앙하는 이유는 그들이 맞았던 ‘죽음의 순간’ 때문이 아니라 ‘삶의 궤적’이 주는 통찰과 위로에 있을 터이다.
현대인이 겪는 삶의 비극을 일러 누군가는 ‘공간이 없는 삶’이라고 비유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자극에 노출되는데, 자극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며 화를 내거나 슬퍼한다. 그야말로 ‘자극-반응’을 습관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달리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몸에 익은 즉자적 반응이 아니라 멈추고 알아차리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자극-반응에서 벗어나 질문하는 사피엔스(sapiens)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애도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많은 노력과 인내, 그리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상실을 수용하고 드러내고 작업하기 위한 시간은 물론 상실 후 자기 자리로 되돌아오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 그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울 때가 있으며 웃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상실과 애도를 위한 안내서 《굿 모닝(Good Mourning)》의 저자 알렌 휴 콜 주니어(Allan Hugh Cole Junior) 박사는 좋은 애도를 위해 ‘상실을 받아들이기, 상실을 감내하기, 상실에 적응하기, 상실을 재배치하기, 상실과 함께 머물기’라는 5가지 사항을 제시했다.
'상실을 받아들이기’는 죽음을 인지하고 수용한다는 것이다. 상실을 감내하기는 상실의 상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말처럼 상처가 자신을 치유자로 만든다. 상실에 적응하기는 상실은 변화를 수반하기에 내적 변화나 외적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실을 재배치하기는 변화된 환경에 새롭게 적응하는 과정으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고인과의 관계에 감정적 거리를 두는 것과 동시에 삶의 새로운 측면에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다. 상실과 함께 머물기는 그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새롭게 의미짓는 것으로 그가 남겨준 것을 통해 의미와 성장의 모멘텀을 만드는 것이다.
꽃이 만개하는 계절이다. 5월과 6월 즈음이 되면 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슬픔을 느끼곤 한다. 역사의 광풍 앞에 스러지는 인간의 연약함에 허무함을 느낄 때도 있다. 전쟁이라는 잔혹한 참사의 기억으로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만물은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눈앞의 이 아름다운 봄도 곧 여름으로 변하고 여름은 가을, 겨울로, 겨울은 다시 봄으로 변할 것이다. 계절의 순환이 멈추지 않듯, Good Mourning이 Good Morning을 위한 충분한 휴식과 변화의 시간임을 기억하기를.
양준석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연구원
생사학 연구 철학박사. 심리상담 전문가로 상실치유를 위한 '애도상담 웰바이' 집단상담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에서 생애주기 사별 경험과 애도 프로그램 관련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다.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과 노력으로 삶에서 상실을 겪은 분들을 치유하는 일에 기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