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에도 매력철철, 비결은?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2-05-13
요즘 70대 중반 배우, 윤여정(1947년생) 씨의 활약이 눈부시다. 사실 그의 활약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최근에 큰 상을 받았을 뿐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기가 할 일을 줄기차게 열심히 한 사람이다.
언젠가 노희경 작가가 그에 대해 “정말이지 예쁘지도 않은 얼굴과 좋지도 않은 목소리로, 게다가 아첨할 줄도 모르는 성격”으로 어떻게 그렇게 오래 일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식으로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그는 실력은 물론 매력까지 갖춘 ‘늙매녀(늙었지만 매력 있는 여자)’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늙매남’도 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다. 100세 시대라서 그런가. 모든 분야에서 실력과 매력이라는 두 가지를 갖춘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는 느낌이다. 앞으로는 더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즉 영화배우나 감독 같은 유명인사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매력남, 매력녀가 많아질 것이다. 내 주변만 봐도 실감할 수 있다. 실력과 능력, 심지어 창조력까지 갖추고 매력을 뽐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70대나 80대에도 매력을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펼치는 데 70년, 80년의 세월이 필요하구나, 생각한다.
문제는 실력이나 능력을 가지는 것도 어렵지만 매력적인 사람으로 늙어가는 것도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재력이나 창의성을 가졌다고 늙매남, 늙매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력 혹은 운만으로 매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라. 실력 좋고 아는 것 많고 큰 부자라고 해서 저절로 매력이 생겨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그가 가진 능력, 재력이 크면 클수록 인간적인 매력은 떨어지는, 한마디로 실력과 매력이 반비례하는 사람도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늙매녀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매력을 갖춘 사람으로 늙어갈 수 있을까? 매력적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 내 주변 사람들을 자세히 둘러보았더니 다행스럽게도 ‘매력 남녀’와 ‘비매력(?) 남녀’가 반반쯤 섞여 있었다. 비교하기 딱 좋은 비율이었다.
먼저, 매력적인 사람들은 자기만의 스토리, 자신만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수십년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인생 스토리가 있는 것 아닌가? 의외로 그렇지 않다.
겉으로는 가진 것 많고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렇다 할 삶의 스토리, 이야기 거리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남들에 관한 이야기, 정치인이나 연예인에 관한 뒷이야기,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차고 넘치는데 막상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는 사람들 말이다. 그냥 남들이 가진 건 다 가지고 싶었고, 남들한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그래서 이것도 열심히 잘하려고 했고 저것도 열심히 잘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 이만큼 많은 걸 가질 수 있었다는 식의 자랑 섞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글쎄,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이 부러운 건 사실이다.
그런데 솔직히 매력은 없다.
반면에 늙매남, 늙매녀들은 자기다운 삶이 쌓여 자기다운 매력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구불구불한 삶의 역사가 녹아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랜 세월 동안 이들이 무얼 추구하면서 살아왔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관한 진솔한 내용이 저절로 드러난다. 돋보이려고 하거나 멋있는 ‘척’하지 않아도 그가 중요시 여겼던 삶의 철학이랄까, 원칙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이다.
물론 과거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건 우여곡절과 풍파를 겪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실패와 좌절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픔도 슬픔도 죽음도 없었던 것처럼 말쑥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겪은 인생의 굴곡과 아픔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힘들 때마다 예전의 슬펐던 기억, 실패했던 일을 떠올리며 ‘그 힘든 시절을 잘 견뎠구나, 나 참 대단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지하자원 말이다.
얼마 전에 만난 L씨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칠십 가까운 나이인데도 해맑은 인상을 간직하고 있는 그가 젊었을 때 쌍둥이 아기들이 분유를 어찌나 많이 먹는지 분유 값을 댈 수 있을까 걱정했던 일, 그때 분유 열 통을 한꺼번에 선물했던 사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는 등등의 얘기를 특유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을 때, 난 L씨가 온갖 세파에 휩쓸리면서도 고유의 에너지, 고유의 향기를 잃지 않은 비결이 뭘까 새삼 궁금해졌다.
늙매남, 늙매녀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아, 이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반드시 외형적으로 대단한 성공이나 성취를 이루어서가 아니다. 가진 것 많고 성공적인 사람이라도 고정관념이 심하고 특권의식에 취해 있는 사람들,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사람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옳은 말도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은 매력이 없다.
매력적인 사람들은 ‘성장마인드셋’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으며, 호기심이 많고,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삶의 모델을 실험한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후배들에게 희망을 준다. 나도 이런 사람들 보면서 기운을 낸다. 성장하는 것, 잠재력을 발휘하여 성과를 내는 건 나이와 무관한 일이구나, 새삼 실감한다.
앞으로 매력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100세 시대에 아무리 가진 것 많고 아는 것 많아도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슬슬 피하기만 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겠는가? 이왕이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점에서 앞으로는 매력도 부동산이나 주식, 연금만큼이나 중요한 ‘자산’이 되리라고 본다. ‘매력 자산’이라는 말이 자주 쓰일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건강이나 우정 같은 ‘활력 자산’과 아울러 ‘매력 자산’이라는 걸 꼭 가지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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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경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책임 연구원과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의 저서를 통해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가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써온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의 저서로는 본 사이트에 연재하고 있는 ‘나의 은퇴일기’ 내용을 토대로 한 <은퇴의 맛>, 저자가 진행하고 있는 ‘자기 역사 쓰기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기꺼이 오십, 나를 다시 배워야 할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