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공부상처, 알고 계신가요?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내 아이의 공부상처, 알고 계신가요?

글 : 박재원 / 행복한 공부연구소 소장 2022-04-25

진정 아이들 편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상위권의 성공사례를 가지고 학부모들을 유혹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중위권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저자인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김현수 교수가 2013년에 출간한 <공부상처>가 소중하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도 부모 마음에 들게 공부하는 아이를 찾기는 쉽지 않다. 마치 공부를 원수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공부상처’는 매우 유용하다. 늘 강조하지만 부모가 아이 마음을 있는 그대로 공감하느냐에 따라 부모역할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현수 교수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7가지 공부상처를 찾아냈다. 


첫 번째가 관계의 상처이다. ‘공부 파업형’이라고 부연 설명한다. ‘공부만 빼면 정말 사이가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자신을 낳아준 정말 소중한 존재인 부모와 늘 갈등하게 만드는 공부가 아이들에게도 기피대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나친 스트레스는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일단 스트레스 상태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관심을 기울인다.


자신과 별 관련이 없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냥 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늘 일상을 같이 하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유발되는 스트레스는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감싸는 안개와 같다. 안개에 갇힌 아이들은 우선적으로 짜릿한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된다. 부모가 아무리 뜯어말려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계속 스트레스 상태에 머물게 되면 몸도 마음도 견디지 못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야속하겠지만 어찌 보면 아이들은 게임이나 SNS을 통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공부시키기 위해 애를 써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부모가 입버릇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 때 닥쳐올 인생의 시련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늘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당연하다. 공부 때문에 아이와 잦은 갈등을 겪고 있다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의 평소 생각이 공부의 필요성에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 스트레스는 아이의 공부동기와 상극이다.


두 번째는 돌봄의 상처인데 ‘만성학습경험 결핍형’이라고 설명한다. 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를 말하는데 부유층에서도 비슷한 상처가 있는 것 같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결핍이 적지 않은 아이들을 흔히 본다. ‘저 자식에게 쏟아 부은 돈이 얼만데 하는 짓이 왜 저 모양이야!’ 평소 부모의 시선과 표정, 말투에서 아이를 무시하는 느낌이 뚜렷하다. 결국 가정에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래도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해주는 사이버 세계 또는 위기학생 집단에 매달리기 마련이다. 부모의 존중이 부족한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할 턱이 없다. 아이가 느끼는 행복감은 의욕이 되고 존중받은 만큼 동기가 강해진다는 사실을 아는 부모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과잉의 상처가 세 번째다. 어른들이 일 하는 시간은 많이 줄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월화수목금금금’ 공부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국제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자랑하지만 학습효율은 바닥권이라는 사실은 외면한다. 장시간 저절 학습노동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하루하루 감당해야 할 학습량에 늘 부담을 느낀다.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공부, 과연 의욕적일 수 있을까? 조금만 틈이 생기면 공부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심정은 주어진 공부를 대충 해치우도록 하며 결국 공부의 질을 떨어뜨린다. 낮은 질의 공부는 장시간 학습노동을 요구하고 이는 다시 질의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학생들이 즐비하다. 어른들도 지치고 힘들 때는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듯이 아이들의 공부에도 여유가 절실하다.




네 번째 상처는 역할의 상처인데 나름 고생하고 있지만 그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희망과 계속 고생만 하다 끝날 것 같은 비관을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하루하루 바삐 살아가지만 문득문득 회의에 빠진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가끔 부모들에게 답답한 심정을 얘기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빤하다. “너 지금 죽으라고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그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는 거야!” 자신은 회의적인데 부모는 확신을 갖고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과연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꿈은 나중에 꾸거나 나중에 성공해서 취미생활로 즐기고 당장 시험공부에만 전념하라는 부모의 압력은 과연 아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부모가 아이의 성적에만 관심을 보일수록 아이들의 공부 에너지는 소진된다는 연구결과도 하루 빨리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노력의 상처를 알아보자. 문득 각성상태에서 결심한다. 그리고 나름 열심히 시험을 준비한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한다. ‘그래도 이번에는 성적이 조금 오르겠지!’ 하지만 이번에도 성적에 배신감을 느낀다. 특히 시험점수는 올라갔지만 오히려 등수는 내려갈 수도 있는 상대평가 방식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생각보다 깊다. 여기저기서 성공경험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떠드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아이가 실패의 쓰라린 맛을 보고 싶겠는가? 성적이라는 결과보다는 노력한 과정에 주목할 수도 있지만 결과가 나쁘면 오히려 노력한 과정까지도 의심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섯 번째는 평가의 상처이다. 아이가 성적이 올라 기쁜 마음으로 부모에게 말한다. “엄마, 나 이번 시험 잘 본 것 같아. 평균 80점 넘었어!” 아이는 나름 부모의 칭찬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반응에 할 말을 잃는다. “80점 넘었다고? 1등은 몇 점인데?”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에게 늘 꾸지람을 듣는 신세인 아이들의 마음이 어떤 편하겠는가? 어떻게 해서라도 부모에게 기쁨을 드리고 싶지만 여전히 ‘엄친아’와 비교하는 부모를 보면서 도저히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다고 절망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과연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자신을 의지박약아라고 자책하는 아이들을 자주 본다. 바로 일곱 번째, 실행의 상처 때문이다. 실행결핍증후군이라고도 하는데 나름 학습 플래너를 쓰고 이번에는 기필코 실천하리라 결심하지만 또 작심삼일에 그치고 만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고 성적까지 좋아야 사람 대접받는 현실에서 아이들도 자주 결심을 한다. 하지만 이미 깊어진 공부상처가 유발하는 공부에 대한 거부반응을 이겨내고 공부계획을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꾸 미루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고 책상에 앉아보지만 공부하는 순간의 부정적인 느낌에 그만 딴 짓에 빠져들고 만다. 공부상처라는 근본적인 원인을 알지 못하는 아이는 결국 자책하기 일쑤다.


공부상처 이야기를 들은 한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000 : 저희 아이는 위에 7가지 유형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어요. 좀 씁쓸하지만 사춘기 즈음해서 관계의 상처가 없는 가정이 몇이나 될까요? 또 대한민국에서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라면 과잉의 상처는 기본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중 가장 위험하고 치명적인 게 평가의 상처란 생각이 들어요. 줄 세우기 교육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1등과 꼴등이 나와 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이런 상처들 주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려고 노력하는데, 소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냉철하게 점검해봐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내 아이가 어떤 상처에 가장 곪아있을까? 그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지지만 소장님 말씀 들으니 아이 마음도 이해돼요.(<중위권 학부모를 위한 공부∙진로∙진학> 35쪽)




가끔 이렇게 말하는 부모님이 계신다. 


“아이들 공부상처는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요?” 참으로 안타깝다. 아이의 공부상처에 공감한 부모와 그렇지 못한 부모, 분명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물론 부모역할에도 큰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공감이 우선이고 방법은 나중이다. 그런데 방법부터 찾으려는 부모들의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아이를 다시 부모의 의도에 맞게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대부분 아이의 공부상처를 악화시킬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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