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세계는 지금 조선의 역사에 주목한다
글 : 김봉석 / 작가 2022-04-18
지난 3월 25일 애플TV+에서 공개한 드라마 <파친코>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재미교포인 이민진 작가가 쓴 소설 <파친코>는 2017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전미도서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이미 화제의 작품이었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까지, 부산 영도에 살다가 31년 일본 오사카로 넘어간 선자와 미국 대학교를 나와 직장을 다니고 있는 손자 솔로몬까지 3대의 역사를 담았다.
<파친코>는 아직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에 비해 구독자 수가 많지 않은 애플TV+에서 강력하게 밀고 있는 작품이다.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즌1의 제작비는 약 1천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애플TV+는 넷플릭스처럼 모든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공개하지 않는다. <파친코>는 3월 25일, 3개의 에피소드를 공개한 후 매주 금요일마다 에피소드 하나씩을 공개한다. 1화는 누구나 볼 수 있게 유튜브에서도 공개했고, 4월 10일 기준으로 1449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영화에 대한 정보와 리뷰 등을 제공하는 ‘IMDB’에서는 10점 만점에 8.6점을 받았고, ‘로튼 토마토’의 신선도는 평단 98%, 대중 94%다.
언론과 평론가도 찬사를 보내고 있다. 문화잡지 <롤링스톤>은 ‘<파친코>는 예술적이고 우아한 방식으로 주제를 다룬다. 원작의 촘촘함과 영상물 특유의 장점이 완벽하게 결합한 가족 대서사시’, <할리우드 리포터>는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라고 높게 평가했다. <더 플레이리스트>는 ‘2022년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고, <글로브메일>은 ‘올해의 위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지난 몇 년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
<파친코> 시즌1은 선자의 젊은 시절과 손자인 솔로몬이 1989년 일본에서 겪는 사건을 교차하며 진행된다. 선자의 아버지 훈이는 장애인이었다. 자식은커녕 결혼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변에서 수군거렸다. 남보다 못하다고 여겨졌던 훈이는 딸인 선자를 누구보다 강하고 자유롭게 키웠다. 장애인의 설움을 알기 때문에, 여자인 선자가 받을 차별과 고난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선자는 일본에 건너가 부자가 되어 돌아온 한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한수는 이미 일본에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 선자는 목사인 이삭을 만나 결혼하고, 함께 오사카에 가서 정착한다.
선자의 젊은 시절은 일제강점기를 관통한다. 선자는 1910년대에 태어나, 1931년에 일본으로 간다. 일제의 쌀 수탈, 강제노역, 위안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등의 역사적 사건들이 배경으로 나온다. 그동안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수없이 나온 내용이지만 해외에 많이 알려진 역사는 아니었다. 요즘 한국, 한국문화가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서양인에게 친숙한 아시아는 중국과 일본 한정이었다. 일본의 사무라이와 기모노는 알아도, 한국의 한복과 유생은 알지 못했다.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의 풍경은 동남아의 시골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파친코>가 ‘미국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역사인 1910년대에서 시작된다.’고 말했고, <뉴스위크>에서는 ‘일본은 한국문화를 말살하려 했고, 거의 72만 5천여명의 한국 남성을 일본과 그 영토에서 일하도록 강요하고 수 천명의 한국 여성을 ’위안부‘, 즉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도록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파친코>가 아니었다면, 해외 언론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의 역사를 이토록 자세하게 말해주는 경우는 여간해서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고, 지금 한국의 중요한 경쟁력이다.
<파친코>는 미국 드라마다. 소위 ‘한류’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파친코>의 프로듀서이며 각본에도 참여한 수 휴는 한국계다. 프로듀서 테레사 강 로우와 연출을 맡은 코코나다와 저스틴 전도 한국계다. 프로듀서 세바스찬 리는 한국과 미국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 리메이크작인 <굿 닥터>를 제작했다.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는, 원작을 유지한다는 애플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각본 작업에도 일부 참여했다. <파친코>는 단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 드라마가 아니라, 한국을 잘 알고 있는 제작진이 만들어낸 글로벌 드라마다. 깐느 그랑프리와 아카데미 작품, 감독상을 수상한 <기생충>, 넷플릭스 시청자수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 한국의 좀비물을 알린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과 넷플릭스의 <킹덤>의 대성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글로벌 프로젝트이고, 한국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은 예술작품이다.
한국적이라는 것만으로 <파친코>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주제와 정서를 건드린 수작이기 때문이다. 작년 아카데미영화제애서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를 보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직접 겪은 경험을 정이삭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미나리>는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 미국에서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문화를 가진 이민자들은 어떻게 미국에 적응하고 또 동화하며 살아가는가.
<파친코>의 제작진은 기획 초반에 이탈리아 이민자의 역사를 담은 <대부> 시리즈를 참조했다고 한다. <대부> 1편은 돈 콜레오네가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대부’ 역할을 하다가, 마피아 조직의 분열이 생기고 막내아들 마이클에게 보스를 물려주는 내용이다. 1편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2편은 돈 콜레오네의 젊은 시절과 마이클의 현재를 교차로 보여준다. 주류사회에서 차별받는 이민자가 어떻게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보여준 작품이다. 코코나다 감독은 <파친코>가 ‘생존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많은 이민자 가정,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현재진행형 스토리.’라고 말했다.
<파친코>는 한국과 미국, 일본을 넘나드는 이민자 3대의 역사를 보여준다. 중심에는 선자가 있다. 즉 <대부>의 남성 중심적 서사를 여성으로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다. <대부>에서 여성은 돈 콜레오네와 마이클의 가정을 꾸리며 뒷받침하는 역할로 한정되어 있다. <파친코>에서 선자의 행동과 결정은 단지 남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한계에 갇혀있으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 현재를 결정하고 행동한다. 1989년 손자인 솔로몬이 일본에 왔을 때, 선자의 말과 행동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과거는 단지 지나간, 흘러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행동을 규정짓고,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1931년, 1989년 그리고 지금을 이어주는 동시대성이 <파친코>에는 존재한다.
윤여정을 비롯하여 김민하, 정은채, 진하, 이민호, 아라이 소지 등 한국, 미국, 일본의 국적을 가진 배우들이 연기하는, 코스모폴리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역사. 바깥의 시선으로, 다시 생각하고 들여다보는 우리의 이야기. 그것이 바로 <파친코>의 중대한 의의다. 세계인이 공감하고, 우리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문화의 힘이다. <파친코>는 한류의 확장이며, 지금 한국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한 예술작품이자 문화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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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작가
전 「시네필」, 「씨네21」, 「한겨레」 기자, 「ME」, 「ACOMICS」편집장. 저서로는 『클릭! 일본문화』(공저), 『18금의 세계』(공저)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과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좀비사전」 등이 있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J-pop 등 일본 대중 문화를 지속적으로 즐기면서, <한겨레>, <중앙일보> 등의 일간지에 TV 비평, 대중음악 비평과 영화음악 칼럼을 써오고 있다. 그리고 YES24 「채널 예스」에 만화 비평, 「씨네21」에 문화 비평 등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의 글들을 쓰고 있으며, 스릴러, 미스터리, 공포, SF 등 대중문학의 해설을 쓰고 책을 엮는 등의 출판 활동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