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현장에서 본 케인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역사적 현장에서 본 케인스

글 : 박덕건 / THE SAGE INVESTOR 편집장 2022-04-04

케인스는 주지하다시피 지난 세기에 가 장 큰 업적을 남긴 경제학자다. 그의 업적은 학자로서 어떤 가설을 입증했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는 경제에 대한, 나아가서는 현실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바꾼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전기다. 그런데 보통의 전기와는 많이 다르다. 통상 부모로부터 시작해서 성장과정을 거쳐 교육, 친구관계 등을 둘러보며 시작하는 전기와 달리 이 책은 그냥 바로 31세의 케인스가 영국 재무부에 불려가는 시점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책 중간을 조금 지났을 때 쯤 화려한 인생이 종말을 맞는다. 하지만 책은 끝나지 않는다. 다시 또 300 페이지를 더 가야 비로소 끝이다.


이 책은 케인스의 인생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의 생각, 이론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추적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이론적 측면을 깊숙이 따지지는 않는다. 주로 그의 생각이 당대의 어떤 현상으로 부터 발원했는지, 혹은 거꾸로 그의 아이디어가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끈질기게 탐구한다. 서술 범위를 1910년대부터 거의 100년에 걸치도록 길게 잡은 것은 케인스 사후에도 소위 케인스주의가 계속 살아남아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은 경제학, 나아가 사회과학이 역사적 맥락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물이 100도에서 끓는 것은 고대에나 현대에나 변함이 없지 만 사회적 개념은 역사적 변화에 따라 뉘앙스도 달라지기 십상이다. 이 책을 보면 케인스주의도 예외는 아니다.


케인스는 한평생 급진파였던 적이 없었다.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은 적도 없었 다. 오히려 학생 시절에는 보수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에드먼드 버크를 좋아해서 장문의 논문을 쓴 적도 있었다. 그렇게 점진적인 변화, 안정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고장난 현실에 대한 파격적인 해결책을 궁리했다.


지은이는 케인스의 이런 이단아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동성애와 자유연애를 거리낌 없이 실천했던 블룸즈버리 클럽 친 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우선 그렇고, 1차대전 후 배상문제, 적자재정 등에 대한 케인스의 논리가 그렇다.


 케인스는 언제나 상식적인 해결책을 거부했다. 전쟁에서 졌으면 배상을 해야 한다는 상식을 내세운 연합국의 지도자들에게 그는 배상금 때문에 독일이 불황에 시달리게 된다면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이 자랄 것이니 배상은 없던 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설득했지만 정치가들은 대중의 상식을 외면하지 못했고, 이후 경과는 우리가 아는로다.


불황이 닥치면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상식에 대하여 그는 그럴 때일수록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고, 심지어 아무 의미 없는 공공사업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주장 했다. 근검과 절약의 건전한 시민의식에 어긋나는 이런 주장에는 아직도 저항이 극심하다.


실용주의자 케인스


또 하나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은 케인스의 실용주의적인 면모다. 나중에 케인스주의라고 종합되기는 하지만 기실 케인스의 모든 주장은 사실 어떤 거대한 체계적 이론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케인스는 궁극적인 원리 따위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일찍부터 19세기 식 자유주의를 내다 버렸고, 필요하다면 자유무역을 제한할 수도 있다고 했으며, 물가 통제도 서슴치 않았다.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죽기 마련이니 당장 지금의 인생이 중요하고, 현재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기에 필요하다고 보이는 일은 아무리 선생님에게 야단맞을 생각이라도 괜찮다는 사고 방식의 소유자가 케인스였다.




앞에 말했다시피 이 책은 케인스 사후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서 케인스주의가 미국 정치와 상호작용한 모습에 대해 상세히 서술한다. 특히 예산 적자를 둘러 싼 공화, 민주 양당의 공방에는 늘 케인스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특히 갤브레이스, 그리고 새뮤얼슨, 하이에크, 프리드먼 등이다. 갤브레이스는 일급 경제 학자라기보다는 작가에 가까운 사람이 지만 “풍요한 사회” 같은 대중적 저술로 케인스주의를 대중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그려진다. 케인스주의는 전후 미국에서 부침을 겪었다. 때로는 한물 간 이론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사람들은 케인스에게서 조언을 구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또 한번 화려하게 컴백했다.


케인스 경제학은 현대 경제학에서 정교한 모델로 거듭 태어났지만 사실 케인스는 그런 정교한 수학적 모델에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불확실한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모델만 정교하다고 해서 뭔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케인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 해서는 수학적 추론보다도 역사적 이해 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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