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노인의료센터장 “젊어서 ‘건강 투자’ 해야 늙어도 늙지 않습니다”
글 : 노철중 / 인사이트 코리아 기자 2022-03-22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은 ‘초고령사회’로 나타났다. 초고령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를 뜻한다. 현재 추세라면 2025년께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태어난 아이의 기대수명은 83.5세로 2011년(80.62세)보다 3년가량 늘었다. 앞으로도 기대수명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아픈 곳이 많아진다. 병원을 찾는 횟수, 복용해야 할 약이 늘어난다. 자신에게 찾아온 신체적 변화들에 대해 노인 환자들은 ‘나이 탓이려니’ 하며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난 여전히 젊다”며 스스로를 관리하고, 질병 예방을 위해 노력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광일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노인의료센터장은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광일 교수는 최근 펴낸 저서 <늙어도 늙지 않는 법>을 통해 노인들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노인성 질병 증상과 예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김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순환 기내과 전공의와 전임의 수련을 받았다. 2003년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이 개원하며 노인의료센터가 설립되자 당시 개척 단계나 다름없던 노인병학으로 전공을 과감히 바꿨다. 16년여 동안 노인환자 맞춤형 진료를 위해 애써 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인의료 전문가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현재 아픈 곳이 어디냐에 따라 일반 진료과를 찾는다. ‘노인병내과’라는 진료 클리닉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선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는데 따른 자연적 현상이라는 인식이 강해 ‘노인병’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노인 환자를 효과적으로 진료하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게 ‘노인병학’ 전문가의 일반적인 견해다. 노인들은 복합적으로 병을 앓는 경우가 많아 여러 진료과를 통합한 진료시스템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노인포괄평가’를 개발했고, 노인의료센터에서 복합적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 환자들을 위한 노쇠평가 및 협진 모델 개발, 혈관 노화와 노인성 질병 연구, 노인병학 전문 의료진 양성 등 노인의학 개척에 앞장서고 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이외에 전남대학교 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 등도 노인전문 진료과를 운영 중이다.
“노인은 단순히 나이만으로 정의하기 어려워”
<투자와연금센터>는 노인병과 노인의학에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외에서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광일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엄중해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노인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서 노인병, 노인병내과, 노인의학 등은 아직 낯설다.
김 교수는 “노인병은 영어 ‘Geriatrics’를 의미하는 단어로 한국과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다. 의학회에서 인정받은 대한노인병학회가 1968년에 창립됐으니 역사가 꽤 오래된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노인 인구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서구 의학에서 노인병학 또는 노인의학은 1906년 코렌체 프스키가 노인들에게 일어나는 많은 병리학적 변화를 관찰하고 노화 과정을 알면 노인들의 질병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면서 노년의학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요즘 60대는 노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에 대한 정의도 변했다. 김 교수는 노인을 어떻게 규정할까.
“노인은 단순히 나이만으로 정의하기는 어렵고 신체적·정신적·기능적 상태를 반영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현재 65세 기준은 100여 년 전 복지 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해 정한 것인데, 현재 평균수명이나 건강 상태를 고려하면 적절한 기준은 아니다. 노인의학에서는 75세 이상에서부터 노화로 인한 변화가 나타나고, 노인의학적 특성을 고려한 의학적 접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노인의료센터는 노인병내과·신경과· 재활의학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노인 전문 간호사, 영양사, 약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팀이 환자 개개인의 특성과 상황에 맞는 개별화된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어떤 분들이 이곳을 찾으면 좋을까.
“치매, 예방 가능하고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노인병내과는 노인에게 흔한 복합질환에 대한 포괄적인 관리와 노쇠, 근감소증 등 노인에게만 주로 문제가 되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평가와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노인 환자가 여러 진료과를 다니고 있지만 통합적인 관리가 되지 않거나 복용 약물 수가 많아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 비특이적인 증상이 해결되지 않지만 기존 질병 위주의 검사와 진료에서는 특별한 문제를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 내원하면 포괄적인 평가와 통합적인 진료를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치료 계획을 수립해 다면적인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 고령 환자 중 복합질환으로 진료가 필요하고, 기능이 저하돼 있거나 기능 저하 위험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수행하고 있다. 수술이나 항암치료가 예정돼 있는 고령의 환자들이 이러한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는지, 문제가 발견되면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평가하고 진료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입원환자는 주로 인근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계시던 분 중에서 갑자기 상태가 악화된 분들을 대상으로 치료를 수행하면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진단이 명확하지 않은 환자를 대상으로 포괄적 접근을 통해 진단하고 치료를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진단이 명확하지 않거나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받아도 되는지 검사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게 ‘노인포괄평가’다. 김 교수는 이를 직접 개발했다.
“노인포괄평가는 노인 환자를 질병 위주의 접근이 아니라 포괄적인 평가를 통해 기능적·신체적·정신적 문제를 포함한 문제 항목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으로 해결해 나가는 도구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노인의료센터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환자 진료를 하고 있으며, 차츰 다른 병원에서도 그 유용성을 인정받아 확산되고 있는 상태다.”
노인병이 존재하면 노인병 치료제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제약사 파이프라인을 열심히 찾아봐도 노인병을 적응증으로 하는 파이프라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인병내과에서만 특별히 처방되는 약이 있을까.
“30~40년 전에 수행된 암에 대한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현재 표적항암치료제가 사용될 수 있듯이 노화를 타깃으로 하는 치료제는 조금 더 시간이 있어야 사용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기존 치료제의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으로 노화를 억제하고 노인성 질환에 대한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시도들이 진행 중이고 당뇨병 치료제인 메트포민, 고혈압 치료제인 로자르탄 등이 대표적인 약제다.”
김 교수의 저서 <늙어도 늙지 않는 법>은 TV·인터넷·유튜브 등을 통해 유통되는 검증되지 않은 의학 정보를 믿고 고생하거나 불필요한 검사를 받는 노인 환자들을 위해 정확한 지식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래서인지 의학 지식을 담은 책인데도 생각보다 쉽게 읽힌다. 책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오해들, 노년에 걸리는 7대 질병 예방법, 건강한 노년 생활을 위한 필수 지식, 노년을 위협하는 생활 속의 위험 등 노인에게 필요한 지식들을 담았다.
치매를 걱정하는 노인들에게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하는 대목은 흥미를 끈다. 이유는 영국·미국 등에서 최근 치매 발생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치매도 예방이 가능하고 앞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늙어도 늙지 않는 법>은 노인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읽어도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담지 못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다른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노화 및 노인성 질환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넘쳐나지만 정확하지 않거나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건강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다. 건강한 노년 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비법이 있다기보다 너무나도 상식적인 것들을 꾸준하게 잘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차이는?
노후 준비는 미래를 위한 장기 투자라는 말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 노후에 건강하게 살기 위해 젊을 때부터 주의하고 준비해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중년 이후의 건강은 젊었을 때 건강 투자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젊었을 때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생활습관을 피하는 것이 필요하고, 노년 시기에는 저하될 수밖에 없는 근골격계 건강을 위한 투자를 잘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늙어도 늙지 않는 법>에서는 부록으로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차이 등을 소개하고 있다. 부모님을 모시는 30~50대에게도 요양원·요양병원은 관심의 대상이다. 요양병원은 의사 또는 한의사가 의료를 행하는 곳으로, 요양환자 30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을 말한다. 요양원은 치매·뇌졸중 등 노인성 질병으로 장애가 발생해 도움이 필요로 하는 노인을 입소시켜 돌봄을 제공하는 시설로 정의된다. 김 교수는 질병에 맞게 시설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국내 요양시설은 간혹 공포영화에서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인지 안 좋게 보는 시각이 있다.
“미디어에서 극단적인 내용 위주로 보도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3차 의료기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재활치료를 수행하고 노인 환자의 상태에 맞는 전문적인 치료를 해주는 곳도 많다.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경우에는 추천을 받고 미리 방문해 확인해 보는 것이 좋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김 교수는 시니어 건강·생활 전문 매체 ‘백세시대’의 금요 칼럼에서 노인을 위한 새로운 의료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노인 환자를 위해서는 지역사회 기반의 의료시스템이 확립돼야 하며, 의료기관은 급성기 진료-회복기 진료-만성기 진료로 세분화하고 상호 간 유기적인 연계가 수행돼야 한다. 또한 질병 위주의 접근이 아닌 기능 위주의 포괄적인 평가와 다면적 접근이 이루어지는 것이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도 효과적인 진료 모델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노철중 인사이트 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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