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심판] 처벌과 보호 사이, 소년범 문제를 다루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소년심판] 처벌과 보호 사이, 소년범 문제를 다루다

글 : 김봉석 / 작가 2022-03-22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소년심판>이 화제다. <오징어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이 기록한 세계 1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비영어권 작품 중에서는 한때 1위였고 한동안 10위 안에 머물렀다. 서바이벌 게임과 좀비 소재는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장르다. 넷플릭스에서는 장르적인 보편성을 가진 <오징어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의 홍보를 열심히 했고, 기대만큼의 흥행을 거두었다. <소년심판>은 한국 사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범죄와 제도적인 문제 등을 다루기 때문에 타국의 대중이 이해하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소년심판>은 소년범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촉법소년’이라는 단어가 있다.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로, 이들은 형사처분 대신 소년법에 의한 보호처분을 받는다. 즉 폭행이나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질러도 교도소를 가지 않는 것이다. 14세 미만의 아이들은 아직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보호처분이다. 그런데 14세 미만의 아이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점차 흉악해지고, 때로는 자신이 촉법소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마음껏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그래서 촉법소년을 더 낮추거나,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에서도 ‘촉법소년’ 문제가 심각했다. 1997년, 고베에서 초등학생을 살해하는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른 중학생이 체포되었다. 추가로 범죄를 저지른 것도 드러났다. 그러나 범인은 촉법소년이었고 보호처분이 되었다. 이후 일본은 형사처벌 대상을 16세에서 14세로 낮추었다. 지금은 연령을 더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촉법소년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등 유명 작가들도 촉법소년의 범죄를 다룬 소설을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청소년 범죄가 심각해지면서 ‘촉법소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고, <소년심판>은 정면으로 소년범 문제를 다룬 시리즈다.


‘소년범’ 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성인과 다르다. 가정의,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아이들이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들은 성인과 동일한 처벌을 받아야 할까. 학교에서 학원 폭력이 생겼을 때, 많은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변했다고 믿거나, 잠깐 실수를 저지른 것이라고도 하고, 그냥 아이들끼리 장난친 것을 왜 확대하냐고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아직 성인이 아닌 소년범은 성인 범죄자와 다른 방향에서 의도와 잘못을 생각하고, 처벌을 고민해야 한다.




<소년심판>에서 ‘소년형사합의부’에 새로 온 판사 심은석은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후배 판사인 차태주는 소년범에게 우호적이고,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언제나 노력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최대한 편의를 봐 주려고 한다. 부장판사인 강원중은 소년법을 더욱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지기 위한 제도적 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씩은 다른 입장을 가진 판사들이 함께 다루는 소년범 사건을 통해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소년범의 문제를 신중하면서도 예리하게 다루고 있다.


1화에서는 충격적인 범죄가 벌어진다. 중학생 소녀가 초등학생을 납치해 살해했다. 뒤늦게 고등학생 공범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누가 주범이고, 종범일까. 촉법소년인 점을 이용하여 중학생이 의도적으로 자백을 한 것은 아닐까? <소년심판>은 다루는 사건들의 무게가 크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취재를 통해서 실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픽션인 드라마 속에 적절하게 녹여냈다.


<소년심판>에서 다루는 사건들을 보면, 실제 있었던 사건들이 연상된다. 1화의 사건은, 2017년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이다. 중학생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초등학생을 납치하고 살해한 후 유기했다. 여고에서 시험지가 유출되어 학생들의 성적을 조작했던 사건도 재구성되어 등장한다. 미성년자가 자동차를 렌트하여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희생자를 낸 사건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과거의 사건으로 등장하는, 초등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벽돌을 던져 행인이 사망한 사건도 나온다. 어떤 사건은 작은 장난에서 시작했지만, 어떤 사건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계획적인 범죄다. 소년들이 저지른 범죄는 절대 하나의 잣대로 묶을 수 없다.




심은석이 당당하게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하는 말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을 배제하고, 언제나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하는 판사가 소년범을 혐오한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자신의 아픈 경험에서 출발하여 소년범을 혐오하는 심은석이지만 동정 없는 시선은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한다. 모든 사건을 철저하게 증거 위주로 바라보고,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동정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드라마, 영화는 감정이 흘러넘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과한 신파가 장점이라는 말도 있다. 서양에서는 잘 드러내지 않는 격한 감정과 행동을 해외 대중이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 개입되면 이야기가 흐트러지는 장르가 있다. 범죄물, 법정물이다.


히트작인 <비밀의 숲>에서는 주인공 검사 황시목이 어린 시절 받은 수술 때문에 감정을 갖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독특한 황시목의 캐릭터는 <비밀의 숲>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후배, 사적인 이익 등 종횡으로 얽힌 관계는 객관적인 판단과 결정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황시목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감정에 전혀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객관적인 사실만을 바라본다. 정을 앞세우는 한국에서는 너무나 특별한 존재라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진실을 향해서 앞으로만 나아간다. 심은석은 황시목에 비하면, 수많은 감정에 흔들리면서도 개인적인 상처 때문에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려 애쓰는 캐릭터다. 그런 점이 정이 앞서기 쉬운 소년범의 재판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강하게 끌어내게 된다.


하지만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새로 부임한 부장판사 나근희는 일체의 감정을 지워야만 올바른 재판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피해자의 호소도 듣지 않고, 눈앞에 있는 증거만으로 판단하려 한다. 하지만 나근희의 속도전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재판을 하는 이유는 범죄가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다. 피해자의 상황,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범죄 자체에만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그저 순간의 잘못이나 실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하거나 끝장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가해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타인에게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죄책감이다. 그래야만 갱생이나 교화도 가능하다. 길 가다가 돌을 찼는데 벽이 무너진 정도와 타인을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범죄가 같은 무게일 수는 없다. 둘 다 정이 없어 보이지만, 심은석과 나근희의 차이는 아주 크다.


<소년심판>은 현실에 존재하는,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다룬다. 그래서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함께 고쳐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현실에 기반한 드라마가 더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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