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출신 경비원 이충남 “처음엔 이 일이 싫었는데 지금은 천직 같아요.”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언론인 출신 경비원 이충남 “처음엔 이 일이 싫었는데 지금은 천직 같아요.”

글 : 이필재 / 인물 스토리텔러 2021-12-16

“평생 화이트칼라로 살았다면 인생 2막에 육체노동을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서 하는 비질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저는 노동이 아니라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재능 기부 삼아 봉사도 할 수도 있는데 이 나이에 보수도 받아요.”

팔순을 바라보는 기자 출신 경비원 이충남 선생은 “경비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적당한 스트레스도 생각하기에 따라 삶의 활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943년생인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으로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로 40여 년 근무했다. ROTC 5기로, 장교 생활을 마친 후 입문한 언론계에서 정년퇴직한 뒤 아파트 경비원으로 8년여 근무했다. 지난 1월 고령이라고 해고됐지만 한 달여 전 다른 아파트에 재취업했다. 그는 ‘인생 3막’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봄 그는 <너는 뭘 했냐-어머니의 실망 어린 꾸중에 이제야 백발 되어 답합니다>란 자전적 가족사를 책으로 냈다. 이 책엔 ‘어느 신문기자 출신 아파트 경비원의 자전적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너는 뭘 했냐?"는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그에게 던진 질문이다. 2004년 12월 중순 막내아들을 장가보낸 날이었다. 치매 초기의 어머니를 예식장에 모시고 갔다.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에게 그가 장관 두 자리를 역임한 고교 동기를 자랑스럽게 소개했을 때였다. 그를 돌아보며 어머니가 대뜸 물었다.

"너는 뭘 했냐?"

어머니의 ‘돌직구’ 질문에 둘러선 친구들이 한바탕 웃었다. 정작 그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자나 깨나 6남매의 장남인 제가 무언가 되기를 바라셨던 것 같아요. 반면 아버지는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셨죠.”


-경비원에 대한 일부 주민들의 갑질 뉴스가 끊이지 않습니다.

“갑질 하는 ‘갑돌이’도 있지만 주민들은 대부분 인정 많은 ‘양돌이’입니다. 주민 갑질에 경비원이 투신했다는 뉴스도 접했지만 저는 경비원 동료들과 돈을 모아 전임 주민 대표에게 식사 대접과 함께 감사패를 드린 일도 있어요.”

지난해 봄 증정한 이 감사패에 그는 이렇게 새겼다.

‘회장님께서는 아파트 단지 회장을 맡으신 4년 동안 저희 경비원들의 고충을 세밀하게 보살펴 주셨습니다. 초소에 방충망을 달아 주셨고 재래식 화장실을 좌변기로 바꾸셨으며 재활용 분리수거 때 사용할 천막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해주셨기에 힘든 줄 모르고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 서울 강북구 oo아파트 o단지 경비원 일동’




교육 공무원 출신인 이 전임 회장은 과거 대통령 표창도 받은 일이 있지만 열여덟 명의 아파트 경비원들에게서 받은 이 감사패를 가장 영예롭게 생각하더라고 그가 귀띔했다.

“경비원들이 증정한 감사패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랐는지도 몰라요. 동 대표인 회장은 아파트 관리소장도 자를 수 있는 힘 있는 자리에요. 마음만 먹으면 그에게 경비원은 파리 목숨이죠. 현 회장에게 감사패를 증정하면 아부이지만, 우리는 일일이 경비 초소를 찾아 이임 인사까지 한 고마운 전임 회장에게 드렸습니다.”


그는 경비원 가운데도 다른 신참 경비원이나 배달원을 상대로 갑질 주민 뺨치는 갑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는 경비원이 하는 갑질을 ‘을질’이라고 불렀다. 신문·우유를 배달하는 ‘병’을 상대로 한 갑질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번동주공아파트 406동 A조 경비원을 타의로 그만뒀을 때의 일이다. 그는 감사편지를 써 집집마다 우편함에 넣었다. 거기에 이렇게 적었다.

“게으른 근무, 부족한 작업 성과에도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아 그동안 참 행복했습니다. 그 답례로 저는 고작 마당의 낙엽 하트로 감사를 표시했을 뿐입니다.”

그 편지를 받은 주민이 지금 직장과 연결해 줬다. 올해 초 아내에게 “혹시 모르니 경비복을 버리지 말라”고 한 것은 선견지명이 됐다.


첫 출근을 하니 공기 좋고 조용한 새 직장이 경비원이 투신한 아파트 바로 옆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그는 그 아파트에 근무하고픈 충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얘기인가요?

“오징어게임에서 일남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은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그런 안타까운 일이 있었던 아파트 현장에서 근무하면 느낌도 있고, 재밌잖아요?”


명문대 나온 전직 동아일보 기자인 그가 정년퇴직 후 경비원으로 전직한 건 사기꾼에게 당한 동생 빚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동생 다섯 중 넷을 서울로 불러 공부시킨 그였다. 노후 대책으로 장만한 건물도 매각해야 했다.




기자 시절엔 교열·편집기자로 내근을 했다. 신아일보 시절 외근으로 빠질 기회가 있었지만 보수가 높은 한국일보로 옮기면서 꿈을 접었다. 동아일보 시절 그는 결혼을 앞두고 예비 처가에 가는 길에 전태일 열사 분신을 목격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린 곳에 그가 있었다. 다음 정류소에서 내려 달려가니 물들인 작업복과 군화 차림의 그의 몸에서 퍼런 불길이 솟았다. 주변에 취재하는 기자는 없었다. 본사에 연락한 후 처가로 향했다.

“기사를 썼어도 보도는 할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남아 기자정신을 발휘했더라면 어쩌면 외근 기회가 주어졌을지도 몰라요.”


-언론에 대한 소회를 들려주시죠.

“요즘 기자들은 기본기가 약합니다. 단적으로 ‘반려견이 사망했다’고 쓰면 안 됩니다. 사망은 사람의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죠. 인터넷 시대에 속보에서 밀리는 종이 신문은 심층 취재를 하고 오피니언란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너는 뭘 했냐>는 1000쪽에 육박하는 ‘대작’입니다. 자서전 쓰기를 주변에 권하시겠습니까?

“저 세상 가기 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제 책을 받은 친구 중 다수가 써 보겠다고 했고, 교수 출신인 친구는 요즘 ‘자서전 학원’에 다닙니다.”


-만일 ‘이충남의 인생사용 설명서’ 같은 것이 있다면,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을까요?

“학창 시절엔 범생이였습니다. 사회에 나와선 가늘고 길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강하면 부러질까 봐 물처럼, 바람처럼 살았습니다.”

1969년 보병 중위 시절이었다. 제대를 앞둔 그에게 연대장이 장기 복무를 권했다. 임관 당시 ROTC들이 선호하는 정훈 병과를 배정받았지만 그는 친구와 바꿔 보병 장교가 됐다.


“그때 장기 복무를 지원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당시 군대생활을 재밌게 했고, 만일 군에 남았다면 지금 경비 일을 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가 경비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구순의 아버지에게 어느 날 새벽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자 슬며시 그의 손을 잡았다.

“1년도 안 돼 노동자 손이 다 됐구나. 고단하지 않냐?”


애처로워하는 아버지에게 그는 “오히려 몸이 건강해지고 손도 튼튼해졌다”고 대꾸했다. 이듬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검소하고 겸손했던 아버지, 평생 돈보다 인정을 중시했고 무엇보다 진솔했던 아버지였다.


-은퇴 후 경비원 생활을 하면 좋은 점이 뭡니까?

“주민들에게서 인정을 받는 것이죠. 바람 부는 가을 날 낙엽을 쓸다 주민에게서 ‘A급 경비원’ 소리도 들었어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낙엽을 쓸어 쓰레받기에 담으면 바람 없는 날보다 오히려 수월해요. 바람이 도와주기 때문이죠. 아까 이 인터뷰 기사용 사진을 여러 컷 찍었는데, 제 삶이 나름 인정을 받은 거 같아 오늘도 기분이 좋았어요.”




그는 ‘꼰대’ 소리를 듣는 게 싫지 않다고 했다.

“늙었으니 당연히 꼰대이고, 어떤 점에서는 거리감 없는 호칭이라고도 할 수 있죠. 사람들이 꼰대를 우러르지는 않잖아요? 꼰대가 저지르는 웬만한 실수에 대해서는 젊은이들도 관대합니다.”


그의 경비원 생활은 어언 9년째 접어든다. 처음 시작할 때 스스로 ‘노숙자 전 단계’라고 여겼던 이 일이 지금은 천직 같다.

“내 아들이 사는 집, 내 부모가 계신 곳이라는 생각으로 일합니다. 더욱이 지금 경비원으로 있는 아파트는 잘릴 일이 없는 곳이에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일을 할 겁니다.”


-인생 2막을 앞뒀거나 현재 2막을 사는 동시대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시겠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병상에 누워 있거나 지하에 잠든 것보다는 나아요. 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승사자가 찾아오면 바로 따라나설 수 있도록 다 내려놓고 빈 몸, 빈 마음으로 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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