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출신 표재순 前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제 성이 표씨라 표시 안 나게 살려 했는데…”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PD 출신 표재순 前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제 성이 표씨라 표시 안 나게 살려 했는데…”

글 : 이필재 / 인물 스토리텔러 2021-09-30



“재미와 감동입니다. 연극이든 TV 드라마든 보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어야죠.”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이자 독보적인 문화예술 기획 전문가인 표재순 전 문화융성위원장은 자신의 연출 철학에 대해 “공연마다 관객들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감동을 안겨주려 했다”고 말했다.


“만 원짜리 공연이면 관객이 2~3만 원어치는 뽑고 돌아서야죠. 만 원 주고 1000원밖에 못 건지는 공연도 있습니다만….”


현재 중랑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표 전 위원장은 방송인 출신이다. JTBC의 전신인 TBC(2년), MBC(20년), SBS(8년)에서 만 30년 간 드라마 PD로 일했고, 마지막 4년 간 SBS프로덕션 사장을 지냈다. 그 후 대학으로 옮겨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와 이 대학 영상대학원의 교수로 있었다.




-공연예술에서 이른바 예술성과 대중성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나요?


“예술 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재미와 감동이 있을뿐더러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드라마를 만들어야죠.”


그는 연세대 연극동아리인 연세극예술연구회 시절 연극에 입문했다.


“처음엔 배우가 되고 싶었고 무대에도 섰어요. 당시는 ‘애수’(원제 워털루 브리지)의 로버트 테일러, ‘자이언트’의 록 허드슨 같은 미남들의 시대였죠. 그런데 저는 키가 작고 코는 납작한 데다 목소리가 짱짱했어요. 애당초 배우의 꿈은 착각이었죠. 스태프로 뛰다 대학 3학년 때 윌리엄 홀든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동명의 미국 영화가 원작인 ‘제17 포로수용소’를 첫 연출 했습니다.”


당시 극예술연구회 연극은 해마다 두 번 봄가을에 연세대 신촌캠퍼스 노천극장에서 했다고 한다. 많을 땐 관객이 8000명가량 몰려 백양로가 미어터지다시피했고 특정 대학 연극 동아리 공연인 데도 특이하게 일간지에 연극평이 실렸다고 했다. ‘연극이 끝난 후’ 원시성이 살아 있던 야외 극장 잔디엔 관객들이 남긴 신문지 등 종이 조각들이 흩날렸다. 관객이 빠져나간 후 연극 공연의 열기가 식을 즈음 “광대들의 향연이 시작됐다”고 그가 회상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시작으로 시들을 낭송하고,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아리아 ‘별이 빛나건만’ 등을 요즘 말로 ‘떼창’ 했어요. 노래하고 춤 췄고, 새벽이 되도록 ‘트링켄(trinken·마셔라), 트링켄’… 밤새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죠. 한마디로 낭만의 시대였습니다.”


그는 연극에 미쳐 군 입대도 미뤘고 결국 서대문로터리서 불심검문 당한 끝에 군에 입대했다고 했다.


그의 대학 은사인 사학과 이광린 교수는 그가 대학원에 진학해 교수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연극에 빠져 살던 그는 “딴따라 할래요” 하고 뿌리쳤다. 30년 만에 방송계를 떠난 그는 서울예술대학을 거쳐 연세대에 몸담았다. ‘딴따라’로 성공해 박사학위 없이 모교 강단에 선 것이다.




-그동안 연출하신 작품 중 대표작으로 무엇을 꼽으시나요?

“허준의 동의보감을 다룬 ‘집념’, ‘대원군’, ‘타국’, ‘간양록’(이상 TV 드라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옛날 옛적 훠어이 훠어이’, ‘천사여 고향을 보라’(이상 연극), ‘피터팬’(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록오페라) 등입니다.”


-사극을 많이 연출하셨는데 사학 전공하신 게 도움이 됐겠습니다?


“사극 전문이었지만, 대학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해 사극 만들면서 공부했습니다.”


표 이사장은 88서울올림픽 당시 개폐회식 총연출 및 제작단장을 맡았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개폐회식 총연출, 2002년 월드컵 전야제 총감독도 했다. 초대 세종문화회관 이사장도 지냈다.


-한국의 문화·예술에 어떤 족적을 남겼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족적이랄 게 있나요? 다만 열심히 했고, 앞으로도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장도 지내셨는데 K 드라마, K팝을 비롯해 K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것을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K 드라마는 가족애, 효, 생명 존중 등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룹니다. 우리 문화 저변의 보편성을 드라마에 담아낸 것이 주효했다고 봐요. 한국 문화 콘텐츠의 잠재력은 거의 무한하다고 봅니다. K 시리즈의 원조는 단연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이에요.”


-아이디어가 많으신데 영감의 원천이 뭔가요?


“남다른 호기심과 열정입니다.”


-연출가 지망생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주시겠습니까?


“첫째, 긍지를 갖고서 하고 싶은 작품을 당당하게 만들어 보세요. 남들 따라하면 2등밖에 못합니다. 둘째, 온 가족이 함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 주세요. 단적으로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함께 봐도 민망하지 않은 드라마죠. 자라나는 세대에게 ‘한국의 얼’을 일깨우는 정통 사극도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드리는 프로그램을 부탁합니다.”




-살아오시면서 승승장구만 하신 거 같은데 크게 좌절한 적도 있나요?


“88 올림픽 후 안티 올림픽 바람이 불면서 친정부파로 몰려 20년 몸담은 MBC를 떠나야 했습니다. 제가 뽑은 후배들에게 등 떠밀려 퇴사한 후 ‘다시는 방송 안 한다’고 미국으로 떠났죠.”


이순을 앞두고 맞은 질풍노도의 시절이었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SBS 사장이었던 윤세영 SBS미디어그룹 창업회장이 그를 불러들였다. 안 돌아간다는 그에게 전무 자리를 제안했다.


“‘전무’면 아무것도 없는 거네요 했더니 웃더라고요.”


SBS가 태어난 산실은 요원이 다섯뿐인 사무실이었다.


2002년 월드컵 전야제 총감독을 맡았을 땐 비가 억수같이 내렸고 리허설까지 한 서울시향 단원들이 연주 전 퇴장을 했다. 그 바람에 생방송 도중 20분 간 공백이 생겼다. 그에 앞서 주최 측에 우천에 대비해 천막을 쳐달라고 그가 그날 아침까지 요구했지만 경비 문제 등으로 수용이 안 됐다.


“저로서는 일생일대의 실수였죠. 이 일로 공황장애까지 겪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88 올림픽 개폐회식을 총연출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7000만 한민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성공적으로 치른 평화의 제전으로, 직간접으로 관여했던 사람들뿐 아니라 전 국민의 가슴에서 빛나는 자랑스런 영광의 훈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세상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문화의 힘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구 선생이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하신 대로, 우리 자신이 행복하고 나아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문화 선진국이죠.”


-때 이른 이야기지만, 묘비명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제가 성이 표씨(表氏)라 표시 안 나게 살려 했는데 방송에 종사하다 보니 표가 좀 났습니다. 이름이 재순이다 보니 한때 여성인 줄 알고 팬 레터 보낸 분들도 있었어요.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살다 가면 됐죠. 묘도 안 만들 생각인데 묘비명이 필요하겠어요?”


미수를 바라보는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지난해 여름부터는 중랑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관내의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온리 원’의 명품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포부다.


“문화예술적 관광지로 만들 겁니다. 여기엔 유관순 열사, 시인 한용운, 화가 이중섭,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조봉암, 개화기에 종두법을 보급하는 등 감염병 퇴치에 앞장선 예방의학자이자 의학교육자 지석영 선생, 시인 박인환, 가수 차중락 등 60여 명의 유명인사들이 묻혀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가 뭔가요?


"망우역사문화공원을 명품으로 만드는 한편 강원도 고성 땅에서 바그너 페스티벌과 셰익스피어 축제를 여는 겁니다. 고성군은 바그너오페라축제극장이 있는 독일 바이로이트시와 이미 몇 년 전 자매결연을 했습니다. 국내에 노벨문학관을 만드는 꿈도 꿉니다."


-원로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저도 교회 원로장로지만, 지금은 종교계에도 원로가 없습니다. 혼돈의 시대, 남루한 세상이에요. 가치가 전도되고 정신세계가 빈곤해진 탓이죠. 경제와 문화 면에서는 대단한 나라가 됐는데 정치적 갈등이 너무 심해요. 진영을 떠나 정치 하시는 분들이 좀 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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