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한 이불 부부가 아니라 한 창문 부부인가 봐
글 : 조민희 / 작가 겸 칼럼니스트 2021-09-15
“이것아. 부부란 그저 한 이불 덮고 살아야 진짜 부부인거야. 쯧쯧.” 어머니는 딸의 생각이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미연 씨는 피식 웃음부터 났지요. 20년 전, 그녀가 결혼식을 하루 앞둔 밤에도 어머니는 사뭇 진지하게 그 말을 했거든요. 부부가 살다보면 다투기도 하고, 뜻이 안 맞기도 하지만 절대로 ‘각방 거처’는 하지 말라고, 부부는 모름지기 한 이불을 덮고 살아야 부부라고 말입니다. 그러던 어머니가 일흔 살이 넘은 지금, 오십을 바라보는 딸에게 또 그 말씀을 하십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평생을 데면데면 보내온 어머니의 결혼관이 뜻밖에도 ‘한 이불론’이라니…. 겉으론 무심해보이던 어머니 아버지도 한 이불 속에서 는 두 분만 아는 뭔가를 만들어왔던 것일까요? 미연 씨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누가 아니래요? 그래서 엄마 딸도 신랑이랑 악착같이 한 이불 고수하고 살고 있는데 무슨 말씀이셔?” “너 요전에 니 동생한테 그랬다며. 애들 내보내고 나면 집 한 채씩 각각 구해서 강 서방이랑 따로 살기로 했다고.” “아, 그거….” 미연 씨는 어머니의 말을 금방 알아들었습니다. 한 달 전 쯤이던가요? 의뢰인의 집을 대신 보러 다니는 예능 프로그램의 애청자인 미연 씨 부부가, 그날은 어째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TV를 보다 말고 옥신각신 했었지요. 언젠가는 서울을 떠나 넓고 조용한 전원주택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남편과, 도심 속의 작고 편리한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미연 씨는 상대방의 생각이 의외로 확고하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점점 더 의견차를 벌리며 자기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우리 그럼 한 삼 년 따로 살아볼까?”
맑은 공기와 근처의 숲을 원한다는 남편과, 늙을수록 병원 가까운 입지와 익숙한 지리가 중요하다는 아내. 도시생활이 지겹지도 않느냐는 남편과 당신이 지금껏 화분 하나라도 키워보고, 문짝 하나라도 고쳐봤느냐고 묻는 아내. 그러다 어느 순간 미연 씨 입에서,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지요. “우리 그럼 한 삼 년 따로 살아보면 어떨까? 애들 다 떠나보내고 각자 원하는 집에 살아보는 거야.” 미연 씨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파격적인 말에 스스로도 놀라 남편의 기색을 살피는데, 그는 오히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들은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었습니다. “나는 근교의 전원주택에 살고, 당신은 시내의 작은 아파트에 산다? 일주일에 한 번씩 데이트 하듯 만나고. 그거 나쁘지 않은데?"
남편의 즐거운 표정에 뒤질세라, 미연 씨는 한 술 더 떴습니다. “한 번씩 서로 초대도 하고 말야. 그런데 당신, 혼자 밥 해먹고 살 수 있겠어?” “배우면 되지. 그렇잖아도 언제든 여유가 생기면 요리도 배우고 살림도 해보고 싶었어.” 미연 씨는 남편의 쿨한 반응에 조금 놀랐습니다. 나 혼자 어찌 살라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이러다 아예 졸혼하자는 소리 나오겠다며 언짢아 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이렇게 선선하게 나온다면, 가끔 꿈만 꿔보던 ‘노년의 별거’가 실현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살짝 가슴이 설레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서운한 감정도 들었습니다. 혹시 이 남자도 그동안 마누라랑 따로 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던 거 아닐까? 나야 살림 살며 식구들 뒤치다꺼리 하는 일이 힘겨워 그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지만, 남편이야 무슨 이유로 혼자 살고 싶은 걸까? 표정을 보니 아주 즐거워 죽는구만. “얘, 준우야. 엄마 아빠는 너희들 집떠나면 각자 원하는 집에서 따로 살아보기로 했단다. 그런 줄 알고 있거라.” 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들을 보고, 미연 씨는 불쑥 그렇게 말해버렸습니다. 아들은 분명 뜨악해하며, 반대할거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의 반응도 의외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헤헤. 그러시든지요. 그래도 가끔 우리 네 식구 밖에서 만나기는 하는 거죠?” “그야 당연하지. 그런데 네 동생 생각은 어떨까?” “걔야 뭐, 엄마 아빠 간섭 안 받고 밤새 게임 할 수 있으면 좋아하겠죠.” “하하하….” “하하하….” 한바탕 웃음으로 그 얘긴 그렇게 대충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십년 쯤 후엔 부부가 각자의 집을 가지고 살아보는 것으로 말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더 세우지는 않았지만 그날 이후 미연 씨는 한 번씩 그 생각을 되짚어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정말 우린 늙어서 따로 지내게 될까? 삼 년이라도, 아니, 일 년이라도? 어쩌면 그 기간이 꽤 길어질 수도 있어. 처음 시도가 어렵지, 일단 새로운 생활에 맛을 들이면 서로가 만족할지 모르지. “어머, 부럽다, 언니! 형부는 생각보다 참 생각이 깨인 분이 시네. 우리 유진이 아빠 같으면 어림도 없어. 내가 왜 늘그막 에 혼자 살며 고생해야 하냐고 할 걸?”
“엄마들 걱정에 둘이 데이트도 맘대로 못 할 걸?”
며칠 뒤 미연 씨의 동생에게 그 얘기를 했고, 동생 미진은 언제나 그렇듯 형부와 남편을 비교하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사이가 나빠서 별거하는 거 아니고, 각자의 공간을 갖고 제 2의 연애를 해보겠다는 거 아니야?” “연애는 무슨 주책맞게. 그냥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 생각 하면서 살아보자는 거지. 형부나 나나.” “어쨌든 멋져 보여. 이런 건 법으로 정해야 돼. 누구나 결혼 30년 차에는 3년 정도 안식년을 갖는 걸로.” “좋은 거면 세상에 이미 퍼졌겠지. 그런데 안 그런 걸 보면 뭔가 부작용도 있는 거야.” “어떤 부작용?” “뭔지는 나도 모르지만….” 미연 씨는 생각해보았습니다. 늘 꿈꾸어 오던 독립이건만, 현실적으로 따져보기 시작하니 꺼려지는 마음도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삼십여 년을 함께 지낸 남녀가 각자의 공간을 갖고 친구처럼 지낸다는 것은 듣기에 너무도 달콤하여서 비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당장 아이들 거처는? 우리 소유의 이 집은? 생활비 문제는? 그때 동생 미진이 뜬금없는 한 마디로 미연 씨의 생각을 끊습니다. “하긴…. 어머니들 때문에 안 되겠다.” “어머니들?” “십 년 뒤엔 여든 살이 훌쩍 넘으실 양가 어머니들 말야. 아마 언니가 사는 집엔 우리 엄마가 밀고 들어오고, 형부가 사는 집엔 언니 시어머님이 밀고 들어오실 걸? 아무래도 혼자 사는 자식이 만만하잖아. 언니랑 형부는 독신의 자유를 얻는 게 아니라, 양가 어머니들 관리를 도맡게 될 것 같아.” “하하, 그건 생각 못했네.” “엄마들 걱정에 둘이 데이트도 맘대로 못 할 걸?” “하하하….”
그날 여동생과의 대화 또한 그렇게 웃음으로 끝났습니다. 그래놓고 미연 씨는 동생의 뼈있는 농담을 하룻저녁 천천히 생각해 보았지요. 그래, 맞아. 현실이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아이들은 어설픈 대로 세상에 내보낸다 해도 늙으신 부모님에 대한 마지막 의무로부터 벗어날 순 없지. 이래저래 꿈은 꿈으로 끝나는 거구나. 어쩌면 남편은 그런 점까지 미리 내다보고, 어차피 가능하지도 않은 이야기라 생각한 걸까? 그래서 오히려 반색하며 환영했던 걸까? 여자의 마음은 참 미묘한 것이었습니다. 실현가능한가 싶으니 꺼려지고, 안 될 일인가 싶으니 아쉬웠지요.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만의 공간을 가져보고 싶었는데…. 평생 맞춰살기 힘들었던 남편과 쿨하게 떨어져서 내 멋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었는데…. “글쎄 그게 다 헛바람이지 뭐냐. 평생 나한테 충성한 신랑 각시 은공에 서로 보답할 생각을 해야지. 늙어도 남자 여자는 어쩔 수 없어. 눈에 안 보이면 마음이 뜨고, 곁에 없으면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헛바람이. 쯧쯧.” 어느새 여동생에게 미연 씨네 계획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혀를 차며 전화를 걸었던 겁니다. 반쯤은 장난 섞인 얘기인 줄 알면서도, 행여라도 훗날 졸혼이니 뭐니 하는 허튼 생각으로 이어질까봐 어머니는 미리부터 단속을 하려는 것이겠지요. 그건 농담일 뿐이었다고, 한번쯤 상상도 못 해보냐고 말대꾸하려다 말고 미연 씨는 다소곳이 어머니의 잔소리를 받아들였습니다. 맞아, 엄마.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나하고는 너무 다른 사람하고 수십 년 맞춰 살려니, 가끔은 멀미가 나서 그랬나봐. “한 부모 밑의 형제도 서로 안 맞는데, 남남끼리 저절로 맞아 들어가겠니? 그래도 이십 년이나 한 이불 덮고 살았으면, 이미 천생연분이고, 내게 맞는 짝이다. 서로 다른 점만 보지 말고 닮은 점을 찾아봐라. 기막히게 들어맞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니까.” “네, 네. 명심할게요."
부부의 마음 하나로 모아주었던 것은 ‘전망 좋은 창’
어머니와의 전화를 순순히 끊고 미연 씨는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린 정말 잘 맞는 짝일까? 그렇다면 어째서 매사에 이토록 의견과 취향이 다른 걸까? 노후의 마지막 집 하나만 보더라도, 극과 극의 서로 다른 모습을 원하고 있으니…. 이십 년 세월을 살아왔으면 지금쯤엔 저절로 마음이 한 방향으로 모아져야 하지 않나? 문득 미연 씨는 지나간 과거의 집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신접살림을 차리고 첫 아이를 낳아 키우던 00동의 그 비좁은 전셋집. 남편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둘째가 태어났던 00동의 그 낡은 아파트. 맞벌이를 하며 유독 부부싸움도 잦았고 별난 추억도 많은 00동의 그 신축 아파트….
그 중 어느 하나도 처음부터 완벽히 그녀 마음에 들었던 집은 없었습니다. 좁고, 낡고, 춥고, 멀고…. 불만인 채로, 불편한 채로 어찌어찌 살다보니 ‘우리집’이 되었을 뿐이지요. 그러고 보니 신기합니다. 이토록 의견이 다른 남편과 그녀가 새로 이사 갈 집을 고를 땐 어찌하여 큰 충돌 없이 매번 합의에 이르렀던 걸까? 미연 씨는 남편과 함께 집을 보러 다니던 때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가진 돈은 빠듯하고, 원하는 조건은 복잡한데, 중개인이 보여주는 집은 늘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지요. 아내는 허술한 주방을 보고 한숨을 쉬고, 남편은 너무 좁은 아이들 방을 보고 고개를 가로젓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기한 내에 새 집을 못 구해 낭패를 본 일은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이 집은 아니다’를 연발하던 그들이 열 몇 번째 집에 이르러 마침내 ‘이 집으로 하자’고 합심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래. 바로 그거야.” 미연 씨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들 부부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었던 것은 매번 ‘전망 좋은 창’이었다는 것을 말입 니다. 00동 빌라도, 00동 꼭대기 층도, 00동 신축 아파트도 모두 전망이 기가 막혔습니다. 거실 창 앞에 서는 순간, 그 모든 우려와 실망이 싹 잊혀지는 그런 집들이었지요. 미연 씨도 남편도, 전망의 매력 앞에서는 유독 사족을 못 썼습니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반짝이는 야경을 내려다보는 넓은 창을 위해서라면, 다른 조건들을 쉽게 양보했지요. 그 창 하나를 보고 그 집에서 함께 살아냈던 겁니다. 미연 씨는 차를 한 잔 끓여서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 자리에 앉으면 뒤 쪽 베란다의 넓은 창을 통해 인왕산의 푸른 숲과 힘찬 바위가 손에 잡힐 듯 마주보입니다. 이 창이 너무 맘에 들어서, 수납이 부실하고, 주차가 불편한 집인 줄 알면서도 그들은 이 집을 선택했지요. 그리고 삼 년째 살아오면서, 그들 부부는 자주 창밖의 푸른 인왕산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때론 같이, 때론 말없이…. 오늘도 미연 씨는 인왕산 푸른 나무들이 바람에 출렁이는 것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합니다. “우린 한 이불 부부가 아니라 한 창문 부부인가 봐.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살아온….”
조민희 작가 겸 칼럼니스트
대학 영문과 졸업 후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소설 부문 '우리들의 작문교실'에 당선돼 등단했다. 현재 조선일보에 연재중인 인기코너 '별별다방으로 오세요'의 안주인인 '홍여사'로 많은 이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들을 전해듣고 글로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