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깨달은 돈의 가치
글 : 이근후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2021-05-20
"돈을 돌 보듯이 하라"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특히 청년들은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 같다. 돈은 돈이고, 돌은 돌인데 왜 귀한 돈을 돌 보듯이 하라고 했을까라는 한 점의 의문도 없이 확고히 믿고 있었던 한 사오정이 있었다. 누구냐 하면 그게 바로 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아니면 어른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듣고 자랐기 때문에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고 확고한 확신을 하고 자랐다. 그러니, 사오정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확고한 생각을 믿고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모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고 확신을 가졌다. 두 번째는, 내가 어릴 때니까 내가 필요한 돈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많지 않은 용도의 돈도 만져 보지 못하고 성장했다. 이유는, 공책을 다 쓰고 나면 새 공책을 사야 한다. 공책을 사기 위해서 돈을 달라고 하면 돈 대신에 공책을 준다. 이런 식으로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돈이 아니라 실물로 공급받았기 때문에 돈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돈은 돈이고 돌은 돌이다." 이런 정도의 통찰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경제적인 몰락으로 내가 가장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처지라서 돈과 돌이 다르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물론 이 말은 더 깊은 뜻이 있었겠지만, 당시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는 돈은 돌이 아니라 나에게 아주 소중한 것이었다.
돈이 왜 귀하냐 하면, 돈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옛날에 코미디언 서영춘이라는 분이 노래를 불러 히트한 곡이 하나 있다. 그분의 코믹한 연기도 재미있지만 히트한 노래의 가사도 재미있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구워 먹지..." 생각해보자 빈대떡은 돈 안들 여도 하늘에서 떨어지는가. 빈대떡 구우려면 빈대떡을 만들 재료를 사야 되는데 돈이 없으면 어떻게 살수있을까?
그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살아가자면 돈이 없이는 한시도 살아 갈 수 가 없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내가 누울 한 평 땅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주장한 고대의 선현들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현이 아니라 나 같은 사오정이다. 나물은 돈 안 주고 살 수 있는가, 물도 공짜로 마실 물이 있는가다. 돈이 들어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누울 땅 한 평? 지금 강남의 땅 한 평 값이 얼만데... 그러니, 돈이 돌이 아니라 귀중한 돈이다. 내가 지금 와서 돈이 귀중하다는 통찰을 늦게나마 느끼게 된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2013년 내 수필집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가 공전의 히트를 쳐서 수십 만권이 팔리며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것을 보면 나한테는 대박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전국에서 많은 강연 요청을 받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한번은, 내 강연 시간보다 한 시간쯤 일찍 가서 주최 측과 담소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내 강연을 소개하는 현수막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 돈도 벌고,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사는 법 " 참 기발한 카피라이터이다. 내 마음에 쏙 든 것은 "돈도 벌고 " 라는 용어다.
나는 그때까지 내 강연의 주제는 경제적으로나, 건강상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분들에게만 적용되는 강의 내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적인 개념이나 내 행동에서 내 세울만한 것이 없는 사오정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주제 강연을 "돈도 벌고……. "라고 했으니 저 주제를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강연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불안 해졌다. 주최 측 이야기를 들으니 오늘 강연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재테크 전문가가 돈 버는 법을 강의한다고 한다. 두 사람의 강연을 한 마디로 현수막에 적자니 그렇게 적었단다.

나는 불안을 가라앉히고 그분이 하는 강연장에 들어가 처음으로 경제에 관한 강연을 들어 보았다. 그분은 재테크의 전문가라 그런지 어려운 이론보다 쉽고 현실적이고,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였기 때문에 나 같은 사오정도 공감하고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 나는 “아 그렇게 하면 돈을 버는구나!" "그런데 왜 나는 지금까지 몰랐을까?"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돈을 돌보다 나쁜 것이라는 교육의 영향이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이 재테크의 이야기를 내가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말을 했더니 자녀들이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지른다. " 아빠가 진작 그런 생각을 했으면 우리 집이 굉장한 부자가 되었을 건데…." 듣다가 보니 경제에 관한 한 사오정임을 그들도 잘 알 텐데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꼭 나를 조롱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내가 조롱받은 만큼 자녀들을 조롱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가 오래 생각한 일인데 그 사업을 시작해 볼까 한다." 재테크 강사로부터 들은 내용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아빠, 제발 참으세요" 앞에 했던 말과 지금 하는 말의 반응이 다르다. 앞에 말을 들었을 때는 아빠…. 하고 나를 순하게 부르더니 뒷말을 듣고는 아빠!!! 라고 강한 어조로 질책하는 투다. 아마도, 내가 나이가 많으니 치매기라도 생겼나 보다 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조롱하는 투로 일부러 얘기했으니 치매와는 다르다. 그래도 재미있다. 잠시라도 자녀들에게 깜짝 놀라게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잠시의 즐거움이었다.
이제사 "나는 왜 어른들이 돈을 돌처럼 보라" 알아차렸으니 늦둥이 치고는 큰 지진아다. 늦었지만, 내가 머리로 생각해낸 돈에 대한 공식이 있다. '돈은 귀한 돈이다.- 돈은 돌이 아니다- 돈은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적정한 양 만큼 가지면 된다-앞가림은 최대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이면 좋겠다.-그리고 노년(老年 )은 그동안 모은 돈을 즐겨 쓰는 시기이다.'라고 정리해 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내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돈의 최소한의 기준이 어느 정도일까"에 대한 내 생각은 없다. 없는 것이 아니라 모르겠다. 아쉽기는 하지만 늦게나마 이 정도의 통찰을 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다.
이근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퇴임 후 아내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하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요 저서로는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