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여자의 아름다움
글 : 김동선 / 조인케어 대표/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대우교수 2021-03-30
봄이 오고, 두터운 겨울옷을 벗어버릴 때가 됐다. 거의 1년 만에 수영장에 갔다. 한 달 자유 수영권을 끊으려고 보니, 지난번에 비해 요금이 비싸다. 만 55세 미만 여성에 대한 할인 혜택이 더 이상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당시에 경로 할인은 이해가 되는데 왜 55세 미만 여성에게도 할인이 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한 달을 채우고 나니, 수영장의 방침이 이해가 됐다. 이제는 한 달 내내 중단 없이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
나이가 들면서 여성들은 점점 여성성을 잃어간다. 달걀형 얼굴은 점점 사각형 얼굴이 되고 펜더곰처럼 눈 밑으로 반달 주머니가 생긴다. 몸매는 콜라병에서 델몬트 주스 병으로 변신하고 머리카락은 부스스해진다. 여자에게 있어 나이 드는 것은 마냥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친구들끼리 피부과 정보를 교환하고, 새로운 시술에 대해 검색을 해 본다. 7억 성형으로 젊었을 때의 몸매를 되찾은 데미 무어의 사진도 찾아보지만, 희망이 되지 않는다. 7억 원이 없기도 하거니와, 그 효과는 일시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젊어지고 싶은 안간힘은 시간의 법칙을 이기지 못한다. 평행우주에서의 시간은 어떨지 모르나, 지상에서의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지 뒤로 가는 법이 없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젊은 얼굴과 몸매는 그 사람의 공허감을 드러낼 뿐이리라. 자신의 나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공허감, 차곡차곡 쌓인 자신의 삶에서 자랑거리를 찾지 못하는 공허감. 그래서 데미 무어의 성형은 감탄보다는 안쓰러움을 자아낼 뿐이다.
나의 지금 모습을 편안하게 느껴보도록 하자.
IT업계에서 일하는 내 친구 한 명은 젊음의 문화를 포기하고 50대 나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녀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20대, 30대의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가상하다. 피부과와 에스티살롱에 월급의 상당 액수를 갖다 바치고 찢어진 청바지와 징이 박힌 부츠, 때로는 러블리한 스타일로 자신의 나이를 숨기기에 바빴다.
그 덕에, 자식 같은 직원들로부터 '누나'호칭을 듣고, ‘라떼족’으로 취급당하지 않는단다.
그러던 어느 날, 굽높은 구두 때문에 넘어지고 발가락 골절까지 입어 자리에 드러누운 그녀, '젊어 보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인지'곱씹어 보았다. '대학교 때 남학생들로 우글거리는 캠퍼스에서 여자답게 보이는 것이 약점 잡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남자처럼 차려입고 남자처럼 말하고 행동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은 젊은 그들과 달라서 차별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스스로 젊음을 찬양하며 자신의 나이를 거부했던 것이 어리석었다며, 이제는 그동안 혹사한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했단다.
물론, 아름다움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할머니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은 ‘예쁘다’는 말이고, 가장 좋아하는 일과가 손톱을 예쁘게 물들이는 것이다. 요양원 입소 노인들도 외모에 관심을 두고 모양 내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수록 우울증에 덜 시달리고 삶의 의욕을 가진다는 연구도 적지 않다.
다만, 아름다움의 기준을 바꾸는 것은 어떨까? 검고 풍성한 머리채 대신, 짧게 자르고 화사한 칼라로 염색한 헤어스타일, 잡티 하나 없이 하얀 피부 대신 주름살까지 건강한 피부, 굵지만 꼿꼿한 허리와 다리.
그래도 여전히 아쉽다면, 미용업계에 퍼지는 새로운 분위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그동안 나이 든 여자들의 고민을 잘 알아챈 화장품업계는 'Anti-aging', 'Revitalization(재생)', 'Re-invent'라는 마법의 단어들을 휘두르며 전 세계 여성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하지만 몇 년 전 화장품 업계의 귀족 '디오르'가 새로운 링클프리(주름살제거)크림의 모델로 25세의 카라 델러빈을 기용했을 때, 유감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주름살 크림이 필요 없는 모델을 내세워 중년 여성들에게 미의 기준을 내세웠던 디오르의 연령차별주의가 전 세계 여성들을 자극한 것이었다. 여성들을 존중하여야 마땅할 이 업체야말로 나이 든 여성들을 가장 차별하는 곳이었음을 통렬하게 비난하는 댓글들이 디오르의 홈페이지를 달궜다.
언젠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글로리어 스타이넘을 만난 사람이 '우와 당신이 70세라고요? 그 나이로 보이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 내 모습이 바로 70세의 모습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은연중에 60세가 넘으면 더 이상 여자가 아니거나, 70세이면 쭈글쭈글한 할머니를 기대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 않다. 50이 넘은 김희애도 예쁘고, 70 넘은 윤여정도 아름답다.
급기야 2017년 미용 잡지 Allure에서는 더 이상 앤티에이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Anti-라는 말은 연령과 연관해서 써서는 안 된다. Anti-war(반전反戰), Anti-corruption(반부패), Anti-drug(항약물), Anti-establishment(반체제)라는 말은 있지만, Anti-sky, Anti-nature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나이가 드는 것은 받아들이고 만끽해야 할 사실이다.
화장품 업계만이 아니다. 중년과 노년의 여성들은 사회에서 충분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 스스로 중년과 노년의 아름다움과 힘, 역량을 믿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나의 신념은 그다지 강하지 못해, 어느 날 큰 맘 먹고 피부과를 찾았다. 그런데 그 곳 대기실에는 꽃같은 젊은이들이 몰려있었다. 젊음 자체가 발광인데…. 혀를 차는 나에게 그들의 항의가 들리는 듯하다. ‘제 피부가 하루하루 늙어간다고요.’ 젊음과 늙음은 상대적 개념이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하루이다.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대우교수
한국일보 기자로 일했으며, 초고령국가 일본에서 공부한 뒤 노인문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을 썼으며 최근에는 치매케어, 돌봄기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사람중심케어(PCC)실천네트워크를 통해 요양서비스문화를 바꾸는 데에도 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