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개그가 재미 없는 이유
글 : 박한선 /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2020-11-02
일순 정적이 흐른다. 박 상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제발 좀…' 그때 넉살 좋은 김 과장이 총대를 메고 크게 웃는다. 사람들이 모두 따라 웃는다. 불과 0.5초의 정적. 하지만 박 상무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무도 재미있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래 웃기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교부장을 도맡아 했다. 재능은 대학을 이어 군대에서도 빛을 발했다. 선배도, 간부도 모두 좋아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박 대리의 유머는 금세 집단적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이웃 부서에서도 회식이면 박 과장을 찾았고, 이사회는 박 부장을 원했고, 즐거운 박 이사의 개그는 사장단에서도 통했다. 박 상무가 되었다.
위보다 아래가 많아진 박 상무. 그러나 기쁘지 않다. 이제 부하직원은 그의 농담을 즐기지 않았다.
웃음의 진화적 의미
흔히 인간은 유일하게 웃는 동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잘못된 상식이다. 침팬지도 웃고, 고릴라도 웃는다. 심지어 쥐도 웃는다. 웃음은 적응적으로 이득을 주는 형질이다.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라는 책에서 영장류의 웃음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한 바 있다.
웃음은 그 진화적 역사가 제법 길다. 태초 이래 수많은 동물이 웃었다. 아마 기초적인 신경계를 가진 생물이라면 '나름의 방식으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웃음과는 달라 좀처럼 판별하기 어렵겠지만……
물론 웃음의 질과 양은 인간이 월등하다. 웃음 활동은 사회적 동물에서 두드러진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는 자신을 상상해보자. 혼자 보고 있어도 가끔은 빵 터진다. 하지만 대개는 속으로만 웃고,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은 밋밋하다. 다른 사람과 같이 본다면? 분명 훨씬 자주 웃을 것이다. 시시한 개그에도 깔깔거리고, 바닥을 치고, 웃고 있는 서로의 표정을 확인한다. 웃음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교류의 수단이다.
그러니 기분이 울적하면 혼자서 넷플릭스로 코미디 영화를 볼 것이 아니다. 북적거리는 영화관에서 보는 편이 훨씬 낫다. 다른 이와 함께 덩달아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웃음은 원래 같이하는 활동이다. 혼자 골방에서 킬킬거리며 웃고 있으면, 왠지 좀 괴기스럽다.
웃음의 사회학
웃음은 단지 즐겁고 유쾌할 때만 터지는 것이 아니다. 침팬지를 관찰해보니, 유쾌한 웃음 외에도 다양한 웃음이 있었다.
일단 반가움의 표시. 친한 상대를 만날 때, 웃는 것이다. 인간도 그렇다. 가족과 친구를 보면 얼굴에 미소가 자연스레 지어진다.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는 것은 '당신을 가깝게 여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영업사원은 늘 활짝 웃고 다닌다. 가까운 사이라고 착각하게 하면, 아무래도 계약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손님에게 인상을 북북 쓰고 다닌다면, 영업왕이 되기는 좀처럼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화해의 표시. 웃음은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 싸움이 크게 벌어져도, 어쩌다가 웃음이 시작되면 급작스럽게 상황이 반전된다. 서로 당장이라도 이혼하겠다고 물건을 내던지던 부부. 하지만 화를 벅벅 내던 상대의 콧구멍에 코털이 살랑거린다. 느닷없이 터진 웃음… 갑자기 싸움이 중단되고 서로 웃기 시작한다. 부부싸움을 할 때, 왠지 먼저 화해를 청하면 분한 마음이 든다. 그렇다면 그냥 웃자. 맹렬하게 덤비던 상대도 금방 싸움 의지를 잃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종의 표시. 높은 사람 앞에서는 웃어야 한다. 물론 깔깔대고 웃는 것은 아니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공손하게 미소를 짓는다. 당신을 한편으로 존경하고, 한편으로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권력을 가질수록 주변에 자신을 보고 웃는 사람이 많아진다. 늘 '뚱'한 표정을 한 직원은 아무래도 비서실이나 전략기획실에 발령받기 어렵다.
아재 개그의 숙명
요즘 아재 개그를 둘러싼 사회적 이슈는 세 번째 웃음과 관련된다. 서열이 높은 자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웃음을 흘리는 것은 조류나 포유류에서 널리 관찰되는 현상이다. 복종 행동이다. 침팬지의 비굴한 웃음은 상당히 정교한데, 인간에 이르면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

평생 높은 분을 모시던 중년이 퇴직 후에 심각한 우울감을 호소했다. 늘 윗분 앞에서 경쾌하고 즐거운 표정을 지으려다 보니, 마치 자신의 기분이 진짜 그런 줄 알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미소를 지으며 웃어드려야 할' 윗사람이 없다. 곧 마음도 울적해지고 우울해졌다. '회장님'을 모실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부류다.
하지만 수평적 협력을 강조하는 시대다. 기업은 복잡한 직급체계를 파괴하고, 서열을 단순화하고 있다. 층층이 만들어진 계단식 구조가 현대 사회에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영리 추구가 목적인 집단이므로, 이득이 되지 않으면 오랜 전통 따위는 하루아침에 내다 버린다. 장기적 이득이 될 때만, 전통도 전통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그렇잖으면 다 구습이다. 웃어드려야 할 윗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재 개그를 하는 상사에게 '웃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젊은 세대는 갈등한다. 속없이 웃어준다면, 왠지 앙시앵 레짐에 굴복하는 것 같다. 하지만 웃지 않으면… 아직 공고한 기성세대에게 '찍힐까?' 두렵다. 이런 긴장 속에서 ‘개그’가 재미있을 리 없다. 당신의 개그가 정말 유치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이 '높은 직급'이기 때문에 '아재' 개그가 되는 것이다.
아재 개그는 원래 재미있다.
'이제 내 개그 본능은 한물간 것일까?' 박 상무의 고민이다. 하지만 개그가 어색해진 것은 '상무'라서 그렇다. 이 땅의 수많은 사장님, 교수님, 이사님의 공통된 처지다. 높은 서열은 타인의 웃음을 강요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아무리 '난 격의 없이 지내고 싶어'를 강조해도 소용없다. 인류가 서열과 계급으로 사회를 쌓아 올린 이후 끝없이 반복된 생존의 규칙이다. '격의 없음'을 주창하는 윗사람이야말로 '아랫사람'을 정말 힘들게 하는 부류다. '격의 없이 소통하는 윗사람'이라는 느낌마저도 아랫사람이 어떻게든 공급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그는 원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광대는 가장 낮은 계층에 속했다. 숙명이다. 왜 그럴까? 그래야만 웃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지위에 억눌리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긴장된다.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다. 유능한 코미디언이 사회적 감투를 어떻게든 사양하는 이유다. 일류 코미디언의 유머는 그가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아재 개그로 전락해버린다.
회장님이 농담할 때, 모든 사람이 얼어붙는 이유다. 개그 욕심은 이제 접어두자. 당신은 이제 개그를 하기에는 너무 큰 권력을 가진 것이다. 아재 개그를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젊은이와 소통하고 싶은 중년이 많다. 그러나 당신이 주어야 할 것은 웃음이 아니라 감동이다.
싸구려 개그 욕심은 동창회를 위해 남겨두자. 정 아쉬우면 피에로 코를 붙이고 동네 유치원 일일 봉사를 나가자. 엔터테이너의 타고난 욕구를 자제할 수 없다면, 다른 청중을 찾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당신은 박 상무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코미디언이니까 말이다.
대신 부하직원에게는 업무의 지혜, 사회관계의 진실, 삶의 의미를 들려주자. 당신이 존경받기 시작하면, 슬슬 당신의 웃음을 사려는 부하직원이 나타날 것이다. 이제 박 상무는 그들의 젊은 개그를 관람할 때다. 마치 젊은 시절 박 상무가 그랬듯이 말이다.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정신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 경희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호주국립대학교(ANU) 인문사회대(CASS)에서 석사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신경인류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강사, 의생명연구원 연구원,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강사 및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 왜 지금처럼 진화했는지, 특히 아픈 마음은 어떻게 나타났는지 관심이 많다. 정신과 의사로서 겪은 임상 경험과 신경인류학자로서 찾은 인간 마음의 진화적·문화적 설명을 통해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탐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재난과 정신건강(공저)’,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등이 있다.




